“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홍익인간이라는 우리 국조 단군의 이상이 이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은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 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백범일지’ 중에서)

3월이 되면 마음은 벌써 섬진강 매화 밭으로 가 있다. 굽이굽이 굽이쳐 내려온 섬진강에 봄이 오면 강이 보이는 언덕에 매화와 산수유가 무더기로 피어 그곳을 찾는 사람들은 꿈길을 걷는 듯하다. 처음 광양 다압의 매화를 찾았을 때는 지금처럼 인파가 많지 않았다. 그날은 안개가 산 아래로 밀려와 마치 신선이 된 느낌이 들었다. 등걸이에 핀 매화는 백운산 물기가 묻어 있었다. 푸릇한 청보리 위에 어느 서예가가 휘갈긴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날의 나는 옛 화가가 그린 동양화 속을 걷는 선비가 돼 있었다. 이대로 매화 숲을 걸어가면 지금까지 가보지 못한 피안의 세계에 닿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었다.

산수유를 처음 찾던 날도 매화와는 다른 꿈길을 걷는 시간이었다. 개나리처럼 명료한 모양새나 산뜻한 느낌이 들지 않는 산수유가 은은함이 배어 있는 노란 빛을 지상에 뿌리고 있었다. 천공에서 무더기로 빛나는 은하수가 적당히 익은 노란 빛으로 땅에 내려와 기류와 섞여 노닐고 있었다. 이런 곳에 오면 누구나 꽃이 된다. 누구나 신선이 된다. 매화와 산수유는 모란처럼 한 봉오리로 화려하게 피어나는 꽃이 아니다. 수만 송이가 서로 섞여 조화를 이루며 피어난다.

백범 김구 선생의 문화국가론은 봄날 섬진강변에 핀 매화와 산수유를 닮았다. 문화란 무엇인가? 문화란 인간이 공유하는 정신과 삶에서 자연스럽게 표출되면서 형성된다. 사회 구성원들이 혼자만의 행복을 추구한다면 그곳의 문화는 시간이 갈수록 약육강식의 야만성을 띤 동물적 문화가 형성될 것이다. 백범은 우리 사회가 문화의 가치를 논하기 이전에 벌써 남의 것을 무조건 모방하지 말고 우리의 것을 만들자는 문화국가론을 펼치며 우리 국민 개개인의 문화정신에 대한 방향성을 설파하였다. 비록 그의 사상이 지금 우리사회의 치열한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적인 사상일지언정 인류가 공통으로 지향해야 할 중요한 정신이다.

지금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곳곳에서 숨 막힐 듯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지금처럼 서로에 대한 적개감이 지속되는 한 국민소득이 3만 불이 넘은들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진정한 선진국은 경제적인 안정과 더불어 국민 대다수가 정신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것에서 비롯될 것이다.

3월이 되면 매화와 산수유는 스스로 찾아와 기척도 없이 향을 피우며 서로 어울려 꿈길 같은 풍경을 만들어낸다. 매화 가지는 자라면서 옆에 있는 가지의 자리를 탐내지 않는다. 내 자리를 혼자서 독차지하지도 않는다. 서로 옆에 있는 가지가 눈치 채지 않게 살그머니 옆으로 고개를 돌려준다. 많은 시간이 지나면서 매화는 고매한 아름다움으로 자리 잡는다. 인간의 삶 또한 이러하면 얼마나 즐거우랴. 각박한 현실에서 꿈길을 걷는 듯한 이야기인가? 이 봄날에 처음 찾았던 매화 밭 꿈길을 다시 한 번 걷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