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앙뜨발레단 구윤지 단원·노윤정 단장·김진이 단원.

33명의 무용수가 비단옷을 입고 돌아왔다. 제25회 전국무용제 4관왕에 빛나는 ‘뿌앙뜨발레단’ 이야기다. 창단 채 1년도 안 된 신생단체가 일으킨 파란이다.

발음마저도 귀여운 단체명 ‘뿌앙뜨’는 ‘포인트’(Point)에서 따 왔다. 발레계의 중심, 포인트가 되고 말겠다는 춤꾼들의 열망이 담겼다. 팀명을 따라, 그야말로 발레계의 ‘포인트’로 우뚝 섰다.

뿌앙뜨발레단은 창작발레 ‘프리뷰’로 대통령상을 거머쥐었다. 이와 함께 노윤정 단장이 안무상, 주역으로 활약한 구윤지씨가 연기상, 무대디자이너 유승룡씨가 무대예술상의 영예를 안았다.

뿌앙뜨 발레단의 수상으로 광주는 지난 25년간 ‘전국무용제 대통령상 9회 수상’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무향’ 광주의 저력을 보여준 뿌앙뜨발레단 영광의 주인공 노윤정(40), 구윤지(38), 김진이(37)씨를 만나봤다.

뿌앙뜨발레단은 창단 햇수로 치면 신생단체에 속하지만 속 사정은 그렇지 않다. 노윤정 단장을 비롯해 광주시립발레단 단원들이 함께했고, 조선대 무용과 졸업생들도 힘을 보탰다. 전국무용제 출전을 위해 꾸려진 ‘드림팀’이다.

광주 춤판에 에이스들이 속속 참여한 데는 노윤정 단장의 공이 컸다. 언젠가 자신만의 예술 색을 내보이고 싶었던 그는 5월 말 열리는 광주무용제를 위해 팀 결성에 나섰다.

“평생 무대에서 춤만 추다가, 한 단체를 이끌어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었어요. 안무를 하는 것도 익숙지 않은 일이었고요. 하지만 발레 장르로 전국무용제에 나가 좋은 결과를 내고 싶은 욕심도 컸죠. 뜻 맞는 친구들이 함께 도와줘서 뿌앙뜨발레단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뿌앙뜨발레단은 광주시립발레단 소속 14명과 조선대 무용과 졸업생·재학생 등 총 33명으로 꾸려졌다. 애초 전국무용제 출전을 바라보며 결성된 팀이지만 그에 앞서 통과해야 할 벽이 있었다. 광주무용제에서 먼저 실력을 겨뤄 1등을 해야만 광주를 대표해 전국무용제에 출전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올해 광주무용제에 발레 장르로 도전장을 내민 단체는 뿌앙뜨발레단이 유일했다. 무대·세트 등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수준 높은 작품을 선보인 뿌앙뜨발레단은 대상을 차지했다. 무향 광주의 위상을 알리면서, 신생단체인 발레단의 전국적 인지도를 쌓을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막상 광주의 대표가 되니 그 부담감이 노 단장의 어깨를 짓눌렀다.

“애초 전국무용제를 목표로 해 ‘큰 그림’을 그렸으면서도 지역을 대표한다는 게 부담으로 작용했죠. 대통령상·금상 등 전국무용제에서 광주가 따 온 상만 해도 20여개에 달했으니까요. 덜컥 상을 받고 나선 ‘아 나 어떡하지?’란 걱정이 앞섰어요. 광주무용제 수상 이후엔 정말 정신없이 지냈죠.”

우선 준비해야 할 게 태산이었다. 15분여에 맞춰 짜여 진 작품 ‘프리뷰’의 러닝타임을 36분으로 늘렸다. 작품 길이가 2배 이상 늘어난 만큼 무용수들은 물론이고 무대·세트·음악 모두 스케일을 키워야 했다. 그 중 노 단장은 음악작업에 골몰했다.

“오전에는 시립발레단에서 클라스를 마치고, 오후에는 음악작업을 하러 서울로 올라갔어요. 광주-서울 왕복을 한 달 이상 했죠. 머릿속으로 그려지는 안무와 구도, 음악이 있는데 이를 표현하는 게 정말 힘들더라고요. 마지막으로 음악이 완성됐을 땐 정말 눈물이 나더라고요.”

눈물의 대가는 톡톡했다. ‘어머니’를 주제로 한 작품 ‘프리뷰’는 관객들의 공감과 감동을 줬다. 노 단장이 꼼꼼하게 살핀 음악은 무대에 선 무용수들의 가슴을 울렸고, 이들의 진정성 있는 몸짓은 관객들에게 통했다.

이유는 프리뷰가 우리 모두의 보편적인 감성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노 단장은 발레가 어렵다는 편견을 깨고 싶어 하는 안무가다. 쉽고 간결한 메시지로 관객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그의 철학이 이번 작품에 오롯이 묻어나 있다.

프리뷰는 연일 매체를 통해 직면하는 가족 공동체의 해체를 발레극 형식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언제나 한 발 앞서 삶을 일궈온 어머니의 모습이 곧 가족 모두의 ‘프리뷰’임을 말하고 있다.

“누군가의 인생을 통해 앞으로의 시간을 미리 내다볼 수 있다면 어떨까. 이 같은 물음이 프리뷰의 시작이에요. 가족을 중심으로 한 사랑이야기를 녹여내고 싶었는데 그 중심이 바로 엄마이더라고요. 지금 존재하는 내가, 바로 젊은 시절의 엄마인 것이죠. 어머니의 시선으로 가족의 소중함, 그리움, 고마움 등의 다양한 감정을 담았습니다.”

공개된 심사표를 보면, 7명의 심사위원 중 단 한 명 빼고는 올 무용제 최고의 작품으로 ‘프리뷰’를 꼽았다. 어머니란 보편적 인물을 소재로 ‘공감’과 ‘감동’의 코드를 내세웠지만 동작·음악·무대 구성 등은 세련됐다는 평가다.

대통령상을 예상했었느냐는 질문에 김진이 단원은 ‘잘 몰랐다. 다만 최선을 다했다’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현장 분위기는 좋았다. 먼저 조명에 반사돼 ‘살아 움직이는 듯’ 한 무대세트가 여러 팀들의 관심을 받았다. 빛을 활용한 회상씬도 작품의 하이라이트였다.

“가족과 함께한 추억을 작품 속 작품, 즉 액자식 구성으로 표현했어요. 액자가 놓여지고, 그 안에서 무용수들의 연기가 펼쳐지죠. 삽화의 그림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표현돼 가장 많은 박수를 받았죠.”

이는 곧 무대예술상·연기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주역으로 활약, 연기상을 받은 구윤지 단원은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힘으로 안무자와의 끊임없는 소통을 꼽았다.

“어머니를 형상화 한 작품인 만큼 감정연기가 가장 중요하죠. 동작 하나 하나에 이야기를 실으려고 노력했어요. 감정의 원천은 함께 음악을 듣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동작들을 이야기하고. 안무자가 생각하는 그림과 저의 몸짓 간 괴리를 줄여나간 것이죠.”

소통의 접점에는 ‘기술력’에 앞선 ‘마음’이 있었다. 주역 무용수가 몇 바퀴를 돌 수 있는지 테크닉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작품에 완전히 녹아들었는지에 가치를 뒀다. 같은 곳을 바라보는 뿌앙뜨발레단 단원들의 에너지는 강렬했다. 단원들과 작품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면 할수록 ‘프리뷰’는 점점 나아졌다.

합을 맞춘 지 반년도 채 안됐지만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단원들의 끈끈함 덕이다. 노 단장이 단원들에게 특히 고마운 부분이다.

“모두 한 마음으로 해줬어요. 시립발레단 클라스를 마치고서, 밤늦게까지 남아 연습했죠. 처음에 농으로 ‘이러다 나 대통령상 받으면 어쩌냐’ 했던 것이 단원들을 보면서 ‘받고 싶다’는 욕심도, 확신도 생겼어요.”

뿌앙뜨발레단의 쾌거로 광주는 총 25회의 무용제에서 9번의 대통령상 수상이란 타이틀을 가져왔다. 서울을 제외한 15개 시·도 중 대전 팀이 4회, 충남과 대구 팀이 각 2회, 부산·충청·인천·전남 등이 한 차례씩 대통령상을 가져간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결과다. 타 지역에 시샘 어린 부러움의 시선도 한 몸에 받는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광주에서 프리뷰 공연 한 번 올려야죠”란 대답이 돌아온다. ‘지역대표’로 경연에 나갔는데, 당연히 광주 시민들에게 작품을 선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백번 옳은 말이나 실행이 문제다. 대통령상이니, 4관왕이니 떠들썩해도 수상작을 선보이는 갈라 공연을 볼 수 있는 무대는 없기 때문. 좋은 공연이 일회성 작품으로, 25회 전국무용제 4관왕이란 수식으로만 기록되지 않을까, 단원들의 조바심이 이해가 된다. 공연을 올리려거든 뿌앙뜨발레단이 사비를 털어야 하는 게 현실이다. 광주 공연은 잡힌 게 없지만 내년 9월엔 울산에서 열리는 전국무용제에, 11월에는 서울무용제에서 ‘프리뷰’를 선보인다.

그 전에 꼭 광주시민들에게 ‘프리뷰’를 선사할 수 있길, 노 단장을 비롯한 단원들은 바란다.

“‘우리 이렇게 잘했어요’라고 시민들한테 선보이고 싶어요. 감동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죠. 갈라 공연을 하고 나야 비로소 ‘잘 마쳤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이후엔 또 뿌앙뜨발레단 이름을 건 작품들을 내놓아야겠죠. 누구나 쉽게 공감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작품들로 또 한 번 감동을 전하고 싶습니다. ‘끈끈한’ 우리 단원들 모두 함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