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치산 이끈 사령관 김선우" 행적 톺아보다
황광우씨 집필 인물조명서 ‘빨치산 리포트’ 선보여
전남인민유격대 총사령관…다년간 조명 작업 결실
자료·문헌·현장·관계자 망라…삶 족적·서사 복원
입력 : 2026. 07. 31(금)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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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 사진을 컬러 사진으로 변환한 전남인민유격대 총사령관 김선우
표지
“1954년 2월 김선우는 백운산의 폐광 굴에 숨어 있었다. 광양에서 지하사업을 하던 유상기가 군경들의 추적을 피해서 폐광 굴에서 김선우 위원장을 모시고 있었다. 그런데 그 굴의 소재가 군경에서 유출되었나 보다. 몰려오는 군경에 맞서 유상기는 맹사격을 가하면서 뛰쳐나왔다. 김선우의 탈출로를 확보하고 자신은 그 자리에서 적탄을 맞고 쓰러졌다. 이때 호위병 조병탁도 함께 전사했다. 위기를 모면한 김선우는 기요과 및 선전부 대원들과 함께 서골에 머물러 있었다.…중략…이튿날 88골짜기 양지 사면에 마련된 지하 비트에서 하루를 잠복했다. 그 뒷날 새벽에 호위병 박문상, 기요원 전덕례는 함께 백운산 주능을 이동하던 중이었다. 그때 잠복하던 침공군의 저격을 받고 김선우는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 1954년 4월 5일의 일이다.”

이는 전남인민유격대 총사령관 김선우의 마지막 순간을 소개한 부분(본문 253∼254쪽 일부)이다. 빨치산을 별도로 공부하지 않았거나 진보적 역사나 투쟁의 역사를 선호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김선우라고 하는 이름이 낯설 수 있다. 그러나 김선우는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이 널리 알려진 반면 대중들에게 강력하게 인식되는 이름은 아니었다. 이현상이 빨치산의 상징이었다면, 빨치산의 중심은 김선우 총사령관이었다.

모든 조명의 최일선이 이현상에 맞춰지다 보니 김선우가 그만큼 언급되는 경우가 많지 않을 수 밖에 없었다. 거의 묻혀 있다시피 한 김선우의 삶과 투쟁 족적을 하나 하나 더듬어가는 작업이야말로 고투의 일이 아닐 수 없을텐데 각종 자료 및 문헌들을 뒤졌을 뿐만 아니라 빨치산 출신 인사들이나 그 후손 및 관계자들을 만나며 축적된 김선우에 대한 사실과 비하인드 스토리 등까지를 허투루 다루지 않고 망라한 인물조명 단행본이 출간됐다.

저자는 늘 진보의 울타리 안에서 한 평생을 살아온 광주 출생 철학자이자 작가, 민중운동가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진 황광우씨(68). 그가 최근 인물조명서 ‘빨치산 리포트’(다큐북스 刊)를 펴냈다. 황광우가 아닌 정인이라는 필명으로 말이다. 정인은 그의 필명이다. ‘빨치산 리포트’는 저자가 말하고 있듯 “전남인민유격대 총사령관 김선우에게 바치는 헌사”다. 올해 타계 72주년을 맞은 김선우는 역사의 구름 속에 자취를 감춘 전설의 빨치산이라는 것이 저자의 인식이다. 이를테면 김선우의 서사를 쫓는 행적이 펼쳐져 있다.

김선우의 족적과 투쟁기를 추적하다보니 그와 관련된 빨치산 출신의 인사들이 호명되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이 인물조명서는 잊혀진 빨치산의 역사를 일깨우고 있는 셈이다. 역사의 심해로 가라앉아 있던 관련 인물들이 김선우를 중심으로 부채살처럼 펼쳐지고 있다. 널리 알려져 있던 빨치산 소년 돌격 부대 문화부 중대장 출신의 박현채(1934~1995·전 조선대 경제학과 교수)나 남부군 빨치산으로 활동했던 서양화가 오지호(1905∼1982·전 조선대 교수) 등까지 호출되고 있다. 김선우에 대한 조명은 실타래처럼 얽혀있던 빨치산들의 발자취를 생생하게 복원하는 작업이 되고 있기도 하다.

저자가 김선우에 주목하게 된 계기는 구례 출신 소설가 정지아의 ‘빨치산의 딸’ 속의 주인공 고상욱이 정운창으로, 정운창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빨치산의 딸’을 읽게 된 가운데 정운창이라고 하는 인물이 전남인민유격대에 소속해 김선우와 함께 활동한 빨치산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후에 저자는 전남인민유격대 총사령관 김선우의 발자취를 추적하게 된 것이다.

저자 황광우(필명 정인)
김선우 수용자 신분장
특히 빨치산의 명령서와 회의록, 빨치산이 작성한 자서전, 빨치산이 발행한 신문과 경찰 측이 작성한 토벌보고서를 포함해 빨치산에 관한 방대한 자료가 수록돼 있는 등 토벌대 경찰이 미군에게 올린 빨치산 보고서, 미국 워싱턴의 국립문서보관소(National Archives)에 보관돼 있다가 기밀이 해제돼 공개된 문헌이자 영문으로 작성된 한국경찰대의 일일보고서(전 3권) 등을 접한 것은 저자에게 큰 수확의 하나였다. 이런 자료들을 뒤적이다가 저자는 김선우가 쓴 편지를 발견하고는 “떨렸다”는 말로 당시의 소감을 전했다. ‘남부군’의 이태도 모르고, ‘태백산맥’의 조정래도 모르며,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정지아도 모르는 빨치산의 비밀이었기에 그것을 하루라도 빨리 공개하고 싶은 마음이 김선우의 서사를 한데 정리한 것이다.

이 인물조명서는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을 비롯해 고난의 빨치산, 이제야 말하는 한국전쟁의 실상, 해방구 백아산에서, 빨치산의 편지, 김선우의 최후 등 8부로 구성됐다.

저자는 서문에서 “나에게 빨치산은 불덩어리다. 빨치산만 생각하면 가슴에 분노의 불덩어리가 치밀어 오른다. 스무 살 어린 청소년들이 생쌀을 씹으며 토벌대에 쫓겨 다녔다. 여성들이 생솔가지를 꺾어 눈 위에 깔고 잠을 잤다. 아, 열흘을 굶으면서 산골짜기를 헤맸다. 굶어 죽고, 얼어 죽고, 총에 맞아 죽었다. 인류의 역사에서 이렇게 처참하게 죽어간 경우가 한국의 빨치산 말고 또 있었을까? 빨치산은 한 개인의 실존적 선택도 아니었고, 특정 집단의 전략적 선택도 아니었다”고 밝혔다.

이어 저자는 김선우에 대해 “1954년 4월 5일 백운산 상봉에서 최후를 맞을 때까지 빨치산을 이끈 이는 사령관 김선우였다. 백운산 정상이 늘 구름 속에 숨듯이 총사령관 김선우는 역사의 구름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고 덧붙였다.

‘빨치산 리포트’ 속 일부 사진은 김옥렬(다큐북스 대표)씨가 맡았다. 저자가 빨치산의 현장을 직접 답사한 것처럼 사진작가인 김 대표 역시 백아산과 백운산 구석구석을 뒤지며 카메라로 현장의 모습을 담았기에 추후 김선우의 삶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전망이다. 여기다 AI 도움을 받아 여러 장의 흑백사진을 컬러 사진으로 변환, 더 풍성하게 사실감을 극대화해 독자들의 김선우에 대한 이해를 꾀하고 있다.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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