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남시론] 광복 80년, 독립운동가 마라토너 남기룡
박찬용.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정치학 박사
입력 : 2025. 09. 09(화)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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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용.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정치학 박사
올해는 대한민국이 일제로부터 광복을 맞은 지 80년이 되는 역사적인 해이다. 지난 100년 전 일제강점기 시절 조국광복을 위해 국내외에서 목숨을 초개로 여기고 독립운동을 힘차게 펼치신 분들이 많이 있다. 그중 스포츠 분야에서 1936년 개최된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과 3위 남승룡은 많이 알려져 있으나 남승룡의 친동생 마라토너 남기룡 선수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고 있다. 필자는 광복 80년을 맞이하여 전남 순천 출신 독립운동가이자 무명의 마라토너 남기룡에 대해 재조명해 보고자 한다. 다음 주 9월 20일 13시에 광주 빛고을시민문화관 공연장에서 ‘광복 80주년 기념, 스포츠 독립운동가 마라토너 남기룡 북토크 콘서트’가 AI 및 국악 컬레버레이션으로 화려하게 개최될 예정이다. 이 행사에 뜻있는 광주시민 및 체육계 인사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중요할 것 같다.

무명의 마라토너 남기룡은 1915년 6월 전남 순천에서 양조장을 운영하는 부친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남기룡은 1925년부터 1931년까지 순천초등학교에 입학하여 장거리 달리기, 체조, 테니스 등 다양한 스포츠 교육을 받고 일본어를 배웠다. 남기룡은 운동을 일제 제국주의에 맞서 민족 정체성을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 생각하여 초등학교 시절에는 한민족의 정체성과 민족의 혼이 담겨져 있는 씨름을 가장 좋아했다. 당시 남기룡이 다니던 학교에서는 검도, 유도, 가라데를 가르쳤지만 남기룡은 일본 무술을 배우는 것에 전혀 흥미가 없었고 대신에 학교교육과정이 아닌 씨름을 연습하는 것에 전념했다.

1928년 순천지역에 있는 일본 군대 주둔지에서 열린 마라톤에 참가한 외사촌 정종호 선수를 보면서 남승룡, 남기룡 선수는 마라톤 참가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정 선수가 이 대회에서 모든 일본인 경쟁자를 물리치고 우승한 후에 지역의 영웅이 되는 것을 본 남승룡, 남기룡 선수는 크게 감명을 받았고 마라톤 훈련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 시기에 많은 한국 마라톤 선수들이 스포츠 경기에 참여하여 한국의 민족성을 표출하려고 했고 남승룡, 남기룡 형제 또한 스포츠를 통해 한국의 상황과 정체성을 국제사회에 알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1933년 형 남승룡은 일본 도쿄로 건너가 메이지 대학교에 입학했다. 1934년 남승룡은 21번째 일본 선수권대회에 참가했으며 10,000m 장거리 달리기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형인 남승룡이 일본에 있을 동안, 동생 남기룡은 1933년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향 순천에서 훈련했다.

남기룡은 부친의 사업을 도우면서 홀로 연습을 했고 기회가 있을 때 마다 프로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2시간 29분 19초 세계신기록으로 우승한 손기정은 월계관으로 일본 국기를 가렸고, 메달 시상이 진행되는 동안 머리를 숙이고 있었고 월계관이 없는 남승룡 선수 역시 손기정과 같이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두 선수 모두 자신을 일본인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손기정은 올림픽 메달 시상식이 끝나고 한 인터뷰에서 “나는 한국인입니다. 일본인이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이 사실이 1936년 8월 10일 한국언론에 보도되었으며 많은 한국인들이 집에서 뛰어나와 ‘손기정 만세, 남승룡 만세, 조선 만세’를 외쳤다. 다음날 동아일보 이길용 스포츠 칼럼니스트는 두 선수의 메달 소식을 신문에 게재하는 과정에서 사진에서 일본 국기를 의도적으로 지워 버렸고 일본 정부는 이 사건에 격노하여 이강일 기자와 현진건을 체포하고 감옥에 구금했다.

이렇게 올림픽경기와 스포츠행사는 일본 식민지 통제하에 있던 한국인에게 스포츠를 통해 민족 정체성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일본에 대한 저항과 한국인의 자긍심을 불러 일으켰다.

일제 강점기하에 남기룡은 1940년 올림픽까지 일본 마라톤 팀에서 훈련한 유일한 한국선수로 한국인들에게 민족 정체성, 민족 자부심, 사회적 응집력을 증진 시키는 데 중요한 상징적 역할을 했다. 남기룡 선수가 훈련 중 한민족의 정체성을 표현한 예로 일상적으로 형 남승룡의 모교 한국 양정고 런닝셔츠를 착용했다. 일제강점기 시절에 양정고 팀은 한민족의 스포츠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 왜냐하면 양정고 팀은 전국 육상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손기정, 남승룡 선수와 같이 민족주의자이면서 뛰어난 장거리 마라톤 선수를 배출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마라톤 훈련 중 남기룡의 반항적 태도에 일본 코치와 일본 팀내 룸메이트들은 남기룡을 반역자로 낙인 찍었고 종종 한국인을 경멸하는 단어인 ‘조센징’으로 불렀다. 남기룡은 성실하고 꾸준한 훈련과 넘치는 자신감으로 최고의 기량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하여 1940년과 1944년 올림픽에 참가할 수 없었다. 올림픽에 참가하여 한민족의 정체성을 세계에 드높이려고 했으나 전쟁으로 점철된 어두운 시대는 마라톤 영웅의 도전을 좌절시키고 말았다. 남기룡은 일제강점기 시절 진정한 독립운동가 이면서 무명의 마라토너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과거 역사에서 남기룡과 같은 진정한 애국자 및 민족의 영웅들을 발굴해야 한다. 역사를 잊어버린 민족은 미래가 없다는 교훈을 다시 새겨야 할 것이다.
광남일보@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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