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축제의 오월을 만들자
정양주 시인·오월문예연구소 운영위원
입력 : 2025. 05. 29(목) 18:20
정양주 시인·오월문예연구소 운영위원
3월에 광주천에서 시작한 신록이 5월이 되자 서석대에 도착했다. 사월 초에 산자락 아래 도시에서 피었다 진 벚꽃이 누에봉에는 아직 몇 잎 남은 오월이다. 일주일에 한 두 번씩 무등산을 오르내리다 보니 신록이 오르는 시간이 한참 길다는 것을 보게 된다. 증심사의 신록은 보름이 지나고 비가 두세 번 오고 나서야 겨우 장불재에 오르고 서석대까지는 또 기다려야 했다.

이천이십오년의 봄은 정말 더디게 왔다. 겨울이 너무 길고 추웠기에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더 강했다. 느닷없는 계엄령으로 시민들은 눈이 오고 칼바람이 부는 광장에서 서로의 손을 잡고 입김을 나누며 겨울을 버텨야 했다. 머릿수라도 채워주자고 그 광장에 서 있다가 돌아오는 밤은 울분과 불안으로 쉽게 잠들 수 없었다.

이 겨울을 이겨내고 나면, 눈사람이 되어서라도 광장을 지켜내고 있으면, 대통령을 파면한다는 소식이 금방 들려오고, 가벼운 마음으로 봄꽃을 맞으러 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번번이 빗나갔다. 산수유가 다 지고, 목련꽃도 다 떨어지고 벚꽃이 피어나서야 탄핵이 인용되었다.

이성부 시인의 시 ‘봄’처럼 올봄은 그렇게 더디게 왔다. 헌법재판소는 한눈을 팔고 썩은 물웅덩이를 기웃대며 애를 태우다가 겨우 탄핵을 인용하고, 공수처와 경찰은 내란범의 체포를 첫 번째는 무산시키고, 다급한 민중들이 몇 날 밤 눈 맞으며 언 몸으로 응원봉과 촛불을 들고 트랙터를 몰고 나서야 한참 지나 두 번째에 겨우 구속했다.

그런데 법원은 얼마 지나지 않아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해괴한 법 적용으로 내란범을 풀어주니 내란범은 얼씨구나 보리밥 먹고, 한가하게 개를 끌고 한강 가를 어스렁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느릿느릿 와도 봄은 왔고, 역사는 굽어지더라도 늘 한 걸음씩 앞으로 나가고 있음을. 겨우내 얼어 있던 집 앞의 논은 쟁기질이 끝나고 물을 잡아 모낼 준비를 마쳤고, 방방하게 물이 찬 논에는 낮이나 밤이나 개구리들이 우렁차게 울고 있다. 곧 여린 모들이 환한 녹색의 바람을 만들어 낼 시간이 오고 있다.

올해 오월은 광주민중항쟁 45주년이다. 살아남은 사람으로서의 부끄러움과 아픔을 쌓아 온 45년이 흐르는 동안, 역사는 오월 광주가 우리의 민주주의를 다시 시작하게 하고, 서로 지켜주고 나누는 사람 사는 세상을 열어주었다는 사실을 각인시키고, 군대를 동원한 계엄령이 다시는 성공할 수 없다는 교훈을 새롭게 깨우쳐 주었다.

그래서 이제 오월광주는 민주주의의 축제를 시작할 시간이 왔다. 김남주 시인이 말한 대로 ‘무등산이 일어서면 만파가 일어선다’ 이번 오월에는 각 부문마다 ‘고마운 광주정신’으로 지난 사십오 년 이루지 못한 개혁과제들을 해결해 나갈 새로운 사회를 세우기 위해 다시 어깨를 거는 축제를 펼쳐야 한다.

문학은 증언과 수용이라는 면에서 지난 겨울 계엄부터 지난한 봄을 맞기까지 광장과 거리와 담벼락 앞에서 외치고, 선결제와 집회 성금과 따뜻한 차를 나눈 사람들, 집회를 준비하고 열심히 소식을 퍼 날라 주면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애썼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깊숙한 내면부터 힘찬 목소리까지 기록해 나가야 한다.

이 기록들은 폭력으로 민주주의를 짓밟으려는 자들을 응징할 것이고,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새로운 사회를 고민하면서 함께 세워나갈 소중한 힘이 되리라 믿는다.
광남일보@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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