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이야기]김주술 신세계 구두수선 대표
20년간 온기나눔 실천한 ‘사랑의 구두천사’
2006년부터 수선비 30% 모금
광주 명예전당 1호 헌액 대상자
"힘 닿는 데까지 나누며 살고파"
입력 : 2025. 03. 20(목) 18:07
김주술(왼쪽)·최영심씨 부부가 KT그룹 희망나눔재단으로부터 희망나눔인상을 받았다.
한 서민이 큰 금액은 아니지만 꾸준한 기부로 광주시 명예전당 1호 헌액대상자, KT희망나눔인상에 이름을 올려 화제다.

그 주인공은 광주 동구 대인동에서 구두수선점을 운영하는 김주술 신세계 구두수선 대표(69).

그는 2006년부터 올해까지 20년 가까이 구두수선비 일부를 어려운 사람을 위해 써달라며 광주 북구와 동구에 기탁해 와 ‘사랑의 구두천사’로 불린다. 지금까지 기탁한 금액은 3000여만원 정도다.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 5시 가게 문을 여는 그는 가게 주변에 버려진 쓰레기를 주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이어 구두약, 미싱기, 압착기, 공구류 등을 점검한다.

그가 하루에 수선하는 구두는 7~8켤레. 간혹 개인손님도 있지만 대부분 광주는 물론 목포, 진도 등 전남지역 구두 판매업자들로부터 의뢰받은 물품들이다.

이렇게 해서 한달에 버는 돈이 150만원 정도여서 부인과 함께 사는 2인 가정을 꾸려 나가는 데 빠듯하다.

지금은 나홀로 사장이지만 예전에는 잘나가는 사업가였다.

해남이 고향인 그는 친형 지인으로부터 구두 수선 기술을 1년간 배운 뒤 1975년 광주 동구 충장로의 한 양화점에 취직해 경력을 쌓았다.

1984년 북구 서방시장 인근에 양화점을 냈고 9명의 직원과 함께 구두를 제작해 당시 호남백화점에 구두를 납품할 정도로 사업은 날로 번창했다. 하지만 유통업에 손을 댔다가 1999년 10억원 규모의 투자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잃었다.

모든 것을 잃고 실의에 빠져 있던 그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어렵사리 2005년 양동복개상가에 ‘구두수선소’를 차리게 됐다.

김주술 신세계 구두수선 대표(왼쪽 첫번째)가 광주시청 명예의전당에서 열린 ‘2021 명예의전당 헌액식’에 참석해 헌액 인증패를 받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 대표는 “투자사기를 당해 몇 년 동안을 멍하니 살아왔다”며 “세상과 등질 생각도 했지만 어렸을 때 배운 구두 제작 기술을 그냥 버리는 게 아까웠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당시 그는 어느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 새벽부터 부인과 함께 양동시장 인근을 돌아다니며 친절히 인사하며 인맥을 쌓아갔다. 수선이 필요한 구두, 신발이 들어왔고 특히 신발 판매업자에게 A/S 들어온 구두까지 위탁수리하며 끼니 걱정을 덜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 기부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이때부터다.

그는 가게 안에 빨간 돼지저금통을 준비했고 ‘구두수선비 수익 20~30%를 저금통에 넣는다’는 자신만의 약속을 세우며 2006년부터 차곡차곡 돈을 저금통에 넣었다. 저금통이 꽉 차며 자신이 다니던 교회 이름으로 광주 북구에 기부했다.

김주술의 이름 석자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2009년이었다.

당시 광주 북구 담당자는 교회 이름으로 기부를 해오던 김 대표에게 ‘한 할머니가 수술을 해야 하는데, 13만원이 없어서 못 하고 있다. 기부금을 할머니의 응급 수술비로 사용해도 되겠느냐’고 연락했다. 김 대표는 곧바로 승낙했고, 이때부터 김씨의 기부 내용이 알려졌다.

그 결과 김 대표의 구둣방은 찾는 손님이 많아졌고, 일부는 수선비보다 돈을 더 내거나 거스름돈을 받지 않는다고 자리를 떴다.

10년간 양동복개상가에 자리를 잡으며 안정적인 삶을 산 것도 잠시였다.

고객이 늘자 임대인이 임대료 인상을 요구했고 결국 이에 부담을 느낀 그는 2015년 광주 동구 대인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그의 기부 열정은 식지 않고 계속됐고 2018년부터는 동구에도 기부를 시작했다.

김 대표 가게의 구두 수선비용은 구두닦이 5000원, 미끄러움 방지 패드 부착 1만5000원~3만원, 밑창갈이 5만원, 수제화 제작 15만~30만원.

김주술 신세계 구두수선 대표가 빨간 돼지저금통에 돈을 넣고 있다.


그는 밑창교환과 수제화 제작 전문가로 유명하다. 매달 밑창갈이, 수제화 제작 의뢰가 각각 4~5개씩 꾸준히 들어올 정도다. 그 덕분인지 돼지저금통은 2~3달만 되면 꽉 찬다. 한번에 채워지는 돈이 100만~120만원이다.

김 대표는 “거리를 지나가다 모르는 사람의 인사를 받는 경우가 있다”며 “‘훌륭하십니다’, ‘대단한 일을 하시네요’ 등의 칭찬을 들으면 뿌듯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돈이 많이 있어 기부하는 것은 아니다. 어려웠을 때 주변의 도움으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처럼 나의 작은 성의가 어려운 이웃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그의 이같은 선행은 2021년 ‘광주시 명예의 전당’ 1호, 2024년 KT그룹 희망나눔재단에서 주관한 희망나눔인상에 등재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김 대표는 “예전에는 2~3달만 지나면 저금통이 제법 묵직했는데 요새는 계속되는 경기침체 등으로 4달 정도 지나야 겨우겨우 목표치에 도달한다”면서 “직장인의 복장 문화가 바뀌고 구두보단 운동화를 주로 신는 시대가 된 것도 이같은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사정이 이러다 보니 로 구두 수선가게도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며 “구두 수선 기술이 크게 돈을 벌진 못해도 상당히 매력적인 만큼 노하우를 전수할 후배를 양성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김 대표는 “이 세상에 나왔으니 삶의 흔적을 남겨야 하지 않겠냐”며 “소외되고 고통 받는 이들을 돕기 위해 힘이 닿는 데까지 저금통 기부를 계속하겠다”고 강조했다.

김주술 신세계 구두수선 대표가 “소외되고 고통 받는 이들을 돕기 위해 힘이 닿는 데까지 저금통 기부를 계속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최기남 기자 bluesky@gwangnam.co.kr
송태영 기자 sty1235@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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