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아시아에서 여섯 번째 살기 좋은 도시가 부산이다. 부산시는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2024 세계 살기 좋은 도시’에서 2년 연속 아시아 6위를 달성했다고 밝혔다. 이코노미스트의 경제분석기관인 EIU는 매년 세계 주요 도시의 안정성, 의료, 문화와 환경, 교육, 기반시설 5개 분야 30개 항목을 평가해 ‘세계 살기 좋은 도시 지수’ 보고서를 발간한다. 그 결과 올해 아시아 행복도시 순위는 일본 오사카와 도쿄가 각각 1위와 2위를 차지했다. 이어 싱가포르, 홍콩, 서울이 각각 3~5위를 기록했다.

그렇다면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는 어디일까? 오스트리아 빈이 3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이어 덴마크 코펜하겐, 스위스 취리히, 호주 멜버른이 2∼4위에 이름을 올랐다. 모두 인구 규모가 적당하고 범죄율이 낮은 곳이다. 도로와 대중교통도 크게 붐비지 않는 도시다. 공동 5위는 캐나다 캘거리와 스위스 제네바, 공동 7위 호주 시드니와 캐나다 밴쿠버, 공동 9위는 일본 오사카와 뉴질랜드 오클랜드였다. 10위 안에 아시아 도시는 오사카가 유일하다. 보고서는 일부만 공개해 서울과 부산의 세계 순위를 알 수 없으나 아마 세계 50~60위쯤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미국의 컨설팅 업체인 머서(Mercer)도 매년 ‘삶의 질 보고서’를 내놓는다. 미국 뉴욕시를 100점으로 기준 삼아 세계의 주요 도시들의 ‘살기 좋은 정도’를 점수화하고 순위를 매긴 보고서다. 글로벌 잡지 모노클도 순서를 매긴다. 중요한 기준들로는 주로 정치·경제적 안정성, 환경, 교육, 문화, 대중교통, 위생, 헬스케어 등이다. 선진국에서 만든 순위이니 유럽과 미국의 도시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시민에게 안전한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범죄율이 낮고, 주거지역과 공공장소 등에서 안전한 느낌을 줘야 한다’, ‘효율적인 교통 시스템과 편리한 대중 교통이 필요하다. 교통 혼잡이 적고, 자전거 도로와 보행자 공간이 잘 구축돼 있어야 한다’, ‘깨끗한 공기와 물, 그리고 풍부한 녹지를 제공해야 한다. 환경 보호와 지속 가능성이 고려돼야 한다’, ‘다양한 문화, 음식, 예술, 역사적 유산 등이 풍부해야 한다’, ‘일자리와 경제적 기회가 많아야 한다. 기업, 스타트업, 교육 기관 등이 활발하게 운영돼야 한다’, ‘고품질의 교육 시설이 제공돼야 한다. 가까운 거리에 학교, 대학, 도서관 등이 있어야 한다’, ‘의료 시설이 잘 구비돼 있고, 의료 서비스에 접근하기 쉬워야 한다’ 등 살기좋은 도시의 일반적 조건으로 7가지를 제시한다.

전문 기관에서 발표한 세계 순위와 실제로 그 도시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이 체감하는 온도는 크게 다를 수 있다. 시민의 일상생활에 밀접한 소득 수준이나 고용 안정, 세금과 물가 같은 항목은 완전히 배제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부 상위권 도시들은 세금과 물가가 엄청나게 비싼 데다, 평균 소득이 그걸 상쇄시킬 만큼 높지도 않다. 그만큼 빈부격차가 심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재력 있는 사람들이 생활하기 좋은 도시라는 얘기지, 수입이 상대적으로 적은 서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삶의 만족도는 낮게 나타날 수 있다.

그렇다면 광주의 형편은 어떤가? 과연 살기 좋은 도시라 할 수 있을까? 그간 광주시가 잘한 정책을 꼽아보자.

부도난 아시아자동차를 인수해 기아오토랜드 광주공장을 설립하고 광주영락공원(화장장) 조성, 광주도시철도(지하철) 개통,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건립, 푸른길 조성, 광주호 호수생태원 조성, 광주-KIA 챔피언스필드 건립, 광주글로벌모터스(GGM) 설립 등이 눈에 띈다. 이코노미스트의 다섯 가지 평가 분야 중 문화와 환경, 기반시설 분야는 잘 갖춘 것 같다. 안정성과 의료, 교육환경도 크게 나쁘지 않다고 본다. 그런데도 시민들의 삶의 만족도가 높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유는 코스피, 코스닥 상장기업이 상대적으로 부족해 양질의 청년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기 때문이다. 춘추전국시대를 살았던 맹자는 무항산(無恒産) 무항심(無恒心)이라고 했다. 즉 일정한 생업이 없으면 일정한 마음도 없다는 것이다.

선진국의 잣대가 아닌 우리의 기준에 맞는 살기 좋은 도시가 되려면 문화·경제적 안정이 가장 우선시 돼야 한다. 이코노미스트 상위 순위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시민들의 가처분소득이 높아 일상생활의 만족도가 높은 도시가 현실적인 살기 좋은 도시가 아닌가 싶다. 다가올 내일은 문화가 넘치고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광주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