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춤은 여러 공연예술 중에서 우리의 삶을 가장 넓게 포용하는 예술이다. 연극이 일차적으로 언어에 기초를 둔 것이고, 음악을 언어 감각의 연장으로 본다면, 춤이란 인간의 머리가 아닌 심장의 박동을 기초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춤은 언어·민족·문화 감각의 차이를 뛰어넘어 원초적인 호소력을 가지며, 그 힘은 다른 무엇보다 강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전통예술 중에서 춤의 생명력이 그처럼 강인했던 것도 그 이유를 춤의 속성에서 찾을 수 있다.

1970년대 후반부터 무용 예술 전반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지고 있는 것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뉴욕에서는 ‘무용 기사가 야구기사보다 신문에 더 자주 난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였고, 무용 무대의 주역은 대중의 스타가 되고 있다. 무용가는 단순히 ‘춤을 추는 사람’이 아니라 ‘춤을 만드는 사람’이며, 인간이 표현 욕구를 가장 자유롭게 구사하는 예술가로 부상하고 있다.

오페라에 예속됐던 서양의 무용은 독자적인 발레 무대로 발전했고, 다시 발레의 예속을 떠나 연결시키면서 각종 무용이론을 만들어내고 있다. 동양의 무용은 서구인들이 보는 관심과 자체의 욕구가 겹쳐진 활기를 보이기 시작했으며, 전통을 발굴하고 그것을 오늘의 창작무대로 연결시키는 것은 오늘날 여러 나라의 공통 과제다.

동국예술기획이 지난 1990년부터 2024년까지 35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명무’(名舞)를 발굴하고, 신문 지면과 무대공연을 통해 소개해 온 작업은 오늘날 세계 무용계의 과제에 도전하는 뜻깊은 사업이었다. ‘명인 명무전’(名人 名舞傳) 기사가 1990년 11월에서 2024년 8월까지 전국 방송은 물론 월간지 및 일간지에 300여회 연재되었고, 82년~83년 세종문화회관에서 서울시립무용단 주최로 두 번의 ‘명무’ 공연이 있었으며, 한국일보 주최로 1983~84년 국립극장에서 13번의 공연이 열렸다. 그동안 사회 각계각층에서 골고루 일어난 폭넓은 호응은 일찍이 누구도 예상할 수 없을 만큼 열렬한 것이었으며, 어느새 ‘명인 명무’를 발굴하고 무대를 만들어가는 동국예술기획은 독자와 관중의 ‘신바람’에 휘말리게 됐다.

그동안의 112회 ‘명인명무전’은 공연예술계에서 춤을 이처럼 본격적인 차원에서 장기적으로 다룬 예는 일찍이 없었고, 사회 각층의 열렬한 춤 관객들이 날로 더 뜨거워지는 성원을 계속 쏟아준 예도 일찍이 없었으므로 ‘명인 명무전’ 35년은 참으로 보람 있고 감동적인 작업이었다.

그 춤 들은 명무(名舞) 자체일 수도 있고, 명무 원래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춤일 수도 있으며, 명무를 찾아 접어든 초입에 안내해줄 수도 있는 춤들이다. 이제 그 모든 것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 과거를 바로 알기 위해서, 우리 민족이 자의식 없이 지켜온 옛 춤의 맥을 찾아내기 위해 필요하며, 오늘을 지키고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많은 춤의 유산과 그 맥이 있다. 문화재로 지정돼서 전승되고 있는 춘앵무, 승무, 살풀이춤, 태평무, 한량무, 학춤, 검무, 승전무, 처용무, 진도북춤, 교방굿거림춤이 있고, 여러 곳의 탈놀이와 민속놀이 속에 춤이 있으며, 흩어져 있는 춤들도 많다. 크건 작건 완전한 모습이건 조각난 모습이건 모두 소중한 가르침의 재료로 볼만한 감상의 대상이다.

행여 오늘의 모습이 당당치 못하다거나 묻혀 있어 잘 눈에 띄지 않는다고 해서 외면하거나 묵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춤의 원래의 모습을 찾아내고, 그 춤을 지킨 사람들의 모습과 만나는 것은 춤이라는 하나의 명목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 외의 사람들에게도 자아(自我)의 확인과 재발견의 길을 열어주며 지난 1990년 서울 중앙에서 첫 공연을 올린 이후 국내외에서 제112회 한국의 명인 명무전과 제62회 한국의 소리와 몸짓은 전통의 뿌리 찾기와 전승이라는 색깔을 꾸준히 지켜왔다.

그것은 외국문화의 범람 속에서 엷으나 튼튼한 맥을 이어온 예술인들과 또 전통을 지키고 사랑하는 관객 여러분들이 튼실한 바탕을 다져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진실’이 ‘거짓’으로 둔갑하고, ‘거짓’이 ‘진실’ 인양 판을 여는 현시점에서 한국무용 무대의 현실이 진실함으로 승리하는 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