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어린 시절, 산골 깡촌이었던 내 고향에서 통학을 위해 하루 몇 시간씩 오갔던 읍내는 당시만 해도 사람들로 북적이던 ‘서울’ 그 자체였다. 숨이 턱 막히는 만원버스에, 빡빡한 콩나물시루 교실... 서울이나 진배없었던 우리 읍내.

하지만 어느샌가 우리 읍내도 빈집이 늘어나고 너도나도 진짜 서울로만 향하는 요지경 세상이 되어 버렸다.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오랜 기간 서울은 우리 국민들에게 동경과 선망의 대상이 되어왔다.

급속한 산업화 속에 모든 인프라와 인적·물적 자원이 서울에 집중되며, 결국 전 국토의 11.8%에 불과한 서울 등 수도권에 인구 50.6%가 거주하는 세계적으로도 매우 이례적인 인구구조를 야기했다.

이러한 기형적인 사회에서 우리 청년들은 무한경쟁에 내몰려 연애·결혼·출산을 모두 포기하게 되었고, 합계출산율 0.78명의 심각한 초저출생으로 이어졌다. 저명한 인구학자는 현재의 인구추세가 지속된다면 대한민국이 국가소멸을 맞는 첫 번째 국가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제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청년에게 희망을 주고 국가를 살릴 수 있는 길이라면 정부, 지자체가 모두 나서 무엇이든 해야만 하는 벼랑 끝 위기에 서 있다.

지난 반세기에 걸쳐 서울 등 수도권에 차곡차곡 누적된 그 많은 사람과 돈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바로 전남을 비롯한 지방이다. 지방 청년이 서울로 향하고, 지방에서 창출한 가치들이 서울로 빠져나가는, 지방의 끝없는 출혈로 서울 등 수도권이 이토록 잘 살게 된 것이다.

일례로 우리 전남은 매년 8천여명의 청년들이 유출되고 있고, 경제적으로도 ‘21년 기준 전남의 지역내총생산(GRDP) 88조원 중 21조원이 역외로 유출되었다. 반면 서울 등 수도권은 지방의 각종 자원을 빨아들이는 거대한 블랙홀이 되어 연 82조원의 역외 유입이 이뤄지고 있다.

이러한 불균형을 뿌리 뽑고 대한민국이 세계적 강국의 지위를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지방 살리기 노력이 절실하다.

우선, 열악한 지방 재정을 확충해 지방이 스스로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2006년 이후 단 한 차례도 인상되지 않은 지방교부세율을 현 19.24%에서 24.24%로 상향해 균형발전의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1조원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지방소멸대응기금도 5조원으로 대폭 확대해 지방소멸 극복의 씨드머니로 만들어야 한다. 지역자율계정 규모도 현 20%에서 60% 수준까지 늘리고, 교육재정교부금에 대한 시도세 전출률도 현 3.6%에서 1.8%로 낮춰 지자체의 재정부담을 덜어줘야 한다.

또한, 중앙에 과도하게 집중된 권한을 과감히 지방에 이양해 지역별로 최적화된 지방행정을 펼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역 특성과 수요에 부합하는 자치조직권을 보장하고 특별지방행정관과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해야 한다. 지방 고유사무를 조례 등으로 정할 수 있도록 자치입법권도 확대해야 한다.

아울러, 경제성 논리만 내세워 수도권에 집중해온 재원을 이제는 지방에 투자해 선순환 경제 생태계를 만들어가야 한다. 지방은 B/C라는 경제성 잣대에 밀려 예비타당성 조사 통과도 어려운 실정이다. 지역발전의 마중물이 될 SOC가 갖춰져야 지방을 찾는 발길도 늘어날 수 있다.

무엇보다도, 국민 기본권으로서 대한민국 어디서나 동일한 건강권과 생명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의료 인프라가 갖춰져야 한다. 특히 의료수요가 높은 의료 최대취약지이자, 전국에서 유일하게 의대가 없는 전남에 반드시 의과대학을 신설해 진정한 균형발전과 지방시대의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

전남도 자체적으로도 지역을 살리고 국가를 살릴 획기적이고 혁신적인 대책 마련에 고군분투하고 있다. 최근에는 인구와 청년문제를 비롯해 외국인, 이민정책까지 종합적으로 추진할 인구청년이민국을 전국 최초로 신설했다.

전남에서 태어난 모든 아이에게 18년간 매월 수당을 지급하는 ‘출생수당 프로젝트’가 조례 제정 등 사전 준비 중에 있다. 청년과 신혼부부들이 집 걱정 없이 행복한 보금자리를 만들어갈 ‘전남형 만원주택’도 올해부터 본격 추진한다.

산업 현장의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지역 실정에 맞는 광역비자 도입을 적극 추진 중이며, 워케이션·한달살기 프로그램 등 생활인구를 늘리는 연계사업도 지속 발굴하고 있다.

햇빛, 바람 등 재생에너지 자원이 풍부한 자연여건을 십분 활용해 지역 안에서 에너지 생산과 소비가 이뤄지는 분산에너지 특화지역으로 지정하고, 에너지가 필수적인 데이터센터, 첨단 반도체 기업 등 청년들의 일자리가 될 핵심기업 유치에 매진하고 있다.

청년들의 삶이 안정을 찾고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연애, 결혼, 출산, 양육의 행복을 꿈꿀 수 있도록 지방 중심으로 정책의 대전환이 이뤄져야 한다.

국가와 지자체가 합심한 각고의 노력들이 더해진다면 지역 불균형과 인구소멸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반드시 끊어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지금이 그 골든타임이고 마지막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