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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현 시대의 음악
조가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예술강사

2024. 01.31. 18:07:26

조가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예술강사

[기고] 필자는 큰 취미가 없지만 유일하게 조금 마음을 달랠 수 있는 행위가 있다면 바로 피아노 연주이다.

변변치 못한 실력으로 요즘 푹 빠져 연습하고 있는 곡이 있는데, 프랑스의 작곡가 모리스 라벨의 대표작인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이다.

원래 피아노곡이나 라벨 본인이 관현악으로 편곡하기도 했다.

라벨의 작품 중에는 아마 ‘볼레로’ 다음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곡일 텐데, 그 멜로디가 매우 울적하면서도 아름답고, 애잔하면서도 몽환적이다. 거기에 라벨 특유의 변칙적인 화성들이 이 곡에 무게를 더한다.

필자가 이 곡을 연습하게 된 계기는 2019년에 서울 잠실의 롯데콘서트홀에서 봤던 한 공연 때문이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정기연주회였는데 협연자로 등장한 이는 프랑스의 피아니스트 ‘장 이브 티보데’였다.

메인 프로그램인 생상스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한 후 수 차례 커튼콜을 받고, 다시 피아노 앞에 앉고 앙코르로 연주한 곡이 바로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모든 관객이 정말이지 숨을 죽이며 6분여 되는 짧은 이 곡 하나에 어떤 이는 눈을 감고, 어떤 이는 눈물까지 흘리는 광경을 직접 목격했다.

롯데콘서트홀이 울림이 과해 사운드가 다소 벙벙댄다는 평이 있는 홀이지만, 그 벙벙대는 공기의 진동까지 컨트롤 해 버리는 듯한 연주였다.

그렇게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홀로 취미삼아 연습하던 중 문득 다른 피아니스트들은 이 곡을 어떻게 연주하는지 궁금해 여러 연주들을 찾아서 들어보고 그들의 해석을 참고했다.

작곡자인 라벨 본인이 직접 녹음한 연주가 있다는 사실을 늦게나마 알게돼 라벨이 직접 연주한 녹음을 들었다. 라벨 또한 작곡가이자 그 자체로 훌륭한 피아니스트였기 때문에 20세기까지 생존해있었던 그의 녹음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왜 하지 못했을까?

그렇게 라벨이 연주한 ‘죽은 왕녀의 파반느’를 듣게 됐으며, 필자는 또다시 엄청난 충격에 휩싸이게 된다.

이 곡은 전술했다시피 그 멜로디와 감성이 매우 애절하고 감상적이여서 어떤 피아니스트는 감정에 이입돼 눈물을 흘리면서 연주하는 이도 있고 대부분 얼굴을 찡그리며 극도의 감성으로으로 연주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곡을 작곡한 라벨은 현 시대하고는 거의 전혀 반대로 이 곡을 연주하고 있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피아노 학원에서 체르니 소나티네를 또박또박 연습하듯이 말이다. 셈여림 조절도 심하지 않고 정말이지 정말 투박하게, 한 음 한 음 정직하게, 때로는 퉁명스럽게 들릴 수도 있는 연주였다.

라벨이 직접 연주한 것과 현 시대의 연주 중 누구의 해석이 과연 더 맞는 것일까?

물론 음악에 정답은 없다. 작곡가가 ‘이렇게’ 연주하라고 했어도 연주자가 ‘저렇게’ 연주하면 그게 맞는 것이다. 하지만 오랜 생각 끝에 나는 라벨 본인처럼 연주하는 것이 조금 더 설득력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인데, 첫째는 작곡가의 의도를 파악하는데 있어 본인이 직접 연주한 것만큼 큰 참고자료는 없기 때문이다. 둘째는 라벨 본인이 직접 한 말 때문이다.

후에 라벨과 이 곡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자 인터넷을 여기저기 뒤져가며 이 곡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던 중 뜻 밖에 사실을 알 수가 있었는데, 라벨 본인이 스스로 이 곡을 연주하는 연주자들에게 ‘그렇게까지 슬픈 음악은 아니니, 제발 지나치게 슬프게 연주하지 말라’라는 조언을 했다고 한다.

더불어 이 곡은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지, 왕녀를 위한 죽은 파반느가 아니라고 했다고 한다. 이 두 사실만으로도 이 곡을 라벨처럼 연주해야 한다는 확신이 섰다.

음악은 시대가 흐를수록 변하고 그에 맞는 다양한 해석들이 나오기 때문에 100년전 음악과 지금의 음악은 어느 정도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접 녹음한 음반이 존재하는 작곡가의 경우 본인의 녹음을 최대한 참고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어찌 생각해보면 시대가 흐르고 그에 맞춰 음악과 연주의 방법론도 여러 형태로 꾸준히 발전하면서 음악가들의 과한 해석에서 비롯된 감정과잉, 즉, 작곡가들의 의도와는 다르게 연주되는 현상이 빈번하지 않나 생각을 해 본다.

100년 전 음악도 이러한데 어떻게 연주했는지를 전혀 알 수 없는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등 대부분의 유명 작곡가들의 음악은 우리가 과연 그들의 의도에 맞게 연주하고 있는 것일까? 과연 모차르트는 본인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했을까? 타임머신이 있다면 그 시대로 돌아가서 모차르트의 연주를 직접 들어봐야겠다.

하지만 어쩌겠나?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작곡가는 우리에게 음악이라는 ‘선물’을 남겼을 뿐. 그 선물을 뜯어보고 어떻게 쓸 지는 산 사람의 몫이고, 그것이 정답이다.


광남일보@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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