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잡는 칼로 라면을…
정현아 경제부장
입력 : 2023. 07. 03(월) 15:11

[데스크칼럼] 1년에 39억5000만개, 1인당 연간 77개. 한 달 평균 6.4개를 먹는 ‘국민식품’. 바로 라면이다. 전체 소비자물가지수 가중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00을 기준으로 할 때 2.7에 불과하지만(전세 48.9, 휘발유 20.8, 전기요금 15.5 등에 비해 극히 미미한 수준이고 라면을 포함해 과자와 빵의 원재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밀가루의 소비자물가 가중치는 0.1에 그친다) 워낙 많은 국민들이 소비하는 식품인지라 ‘라면의 정치경제학·인문학’이라는 용어가 생길 정도로 라면에는 애틋한 심리, 국민정서가 숨겨져 있다.
라면 가격을 내려야 한다는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권고’ 이후 9일 만에 업계가 백기를 들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반가운 소식이 분명한데 뒷말이 무성하다. 우선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을 우려하는 목소리다. 기껏해야 판매가 5%도 안되는 찔끔 가격인하를 유도하려고 ‘기업의 팔을 비트는’ 권고성 압박을 한 것에 실망하는가 하면 일부에서는 라면값 챙기기 하나로 서민경제를 잘 보살피는 것으로 비쳐지는 ‘생색내기 제스처냐’는 불쾌감도 나온다. 또 라면 제조사의 주가가 급락하면서 개미들의 불만도 고조되고 있다.
올 1분기 5%선을 상회해 IMF 외환위기 이후 가장 가팔랐던 물가인상 흐름이 2분기 들어 3%선으로 안정세를 되찾고 있다. 국민이나 정부나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아가 코로나19 뒤끝에 시중에 풀린 현금을 흡수하기 위한 고금리 기조를 계속 유지해야 할지 판단해야 할 시기에 서 있다. 그러다 보니 정부 입장에서는 마음이 급하고 물가의 고삐를 다잡을 필요를 느끼는 것 같다.
라면가격 인하 요구도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가장 대표적인 국민식품인 라면에 ‘좌표’를 찍고 업계에 인하를 요구하고, 업계가 ‘협조’를 해서 가격을 내리면 소비심리는 물론이거니와 정부의 물가안정 성과까지 챙길 수 있으니 시도해 볼만한 일이었다.
삼겹살 또한 최근 입살에 오르는 품목이다. 라면과 판박이다. 산지 돼지가격이 한참 오르더니 여름 들면서 다소 안정세로 돌아섰다. 하지만 식당에서 한번 오른 삼겹살 가격은 요지부동으로 내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대형마트에서의 돼지고기 가격은 내리지만 식당에서의 가격은 그대로다. 자연히 식당 주인에게 폭리 의심의 눈초리가 꽂히지만 그들도 할 말은 있다. 판매원가에서 인건비 비중을 보라고 말한다. 요즘 요식업계에서는 사람 구하고 다루기가 더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치솟는 인건비에 그나마 일손을 구하지 못하니 자연스레 음식값에 반영할 수밖에 없다는 항변이다.
높은 물가에 외식을 줄이고 도시락을 지참하거나 상대적으로 저렴한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직장인이 늘고 있다. 총체적으로 허리띠를 졸라매는 시국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햄버거 1개에 감자칩, 탄산음료 1잔으로 구성된 세트메뉴가 2만원에 육박하는 외국 수제버거 브랜드가 또하나 국내에 들어와 개업 특수를 제대로 누리고 있다. 개장 전부터 수 백명이 줄을 서는 오픈런은 기본이고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10만원에 되파는 웃돈 거래가 등장하는 등 그 맛을 보려고 연일 장사진이다.
코로나 상황에서 역대 최고의 수익을 남겼던 국내 골프장들도 가격을 내리기는커녕 오히려 더 올리고 있다. 정부의 중과세 엄포에도 안하무인이다. 전남 해남의 한 골프장은 주말 기준으로 그린피를 41만원으로 올린다고 예고했다. 그린피가 비싸서 해외로 나가는 사람이 많고 비난 여론도 적지 않지만 ‘올 사람은 온다’는 배짱으로 고가 정책을 강화하는 느낌이다. 전남 화순이나 나주 등 광주 인근 골프장에는 평일에도 주차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내장객이 넘쳐난다.
양극화라는 말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코로나 이후 경제 상황을 보면 자본주의 경제의 가장 큰 폐해로 지적되는 양극화가 심화하는 모양새다.
라면값 인하 논란을 지켜보면서 경제의 영역에서 정치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정치는 물가 가중치가 2.7에 불과한 라면에 들이대기에는 너무 큰 칼이다. 불가피한 시장 개입이라는 측면에도 불구하고, 특정 품목 가격을 인위적으로 통제하는 물가 대응은 실효성 없이 부작용 논란만 키울 수 있다. 민간·시장 중심 경제를 강조해온 현 정부 기조와도 배치된다. 통화정책이 물가 대응의 핵심이 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이 강조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큰 칼은 양극화 등 큰 틀에서 해결해야 할 거시경제 목표물에 알맞다.
라면 가격을 내려야 한다는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권고’ 이후 9일 만에 업계가 백기를 들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반가운 소식이 분명한데 뒷말이 무성하다. 우선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을 우려하는 목소리다. 기껏해야 판매가 5%도 안되는 찔끔 가격인하를 유도하려고 ‘기업의 팔을 비트는’ 권고성 압박을 한 것에 실망하는가 하면 일부에서는 라면값 챙기기 하나로 서민경제를 잘 보살피는 것으로 비쳐지는 ‘생색내기 제스처냐’는 불쾌감도 나온다. 또 라면 제조사의 주가가 급락하면서 개미들의 불만도 고조되고 있다.
올 1분기 5%선을 상회해 IMF 외환위기 이후 가장 가팔랐던 물가인상 흐름이 2분기 들어 3%선으로 안정세를 되찾고 있다. 국민이나 정부나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아가 코로나19 뒤끝에 시중에 풀린 현금을 흡수하기 위한 고금리 기조를 계속 유지해야 할지 판단해야 할 시기에 서 있다. 그러다 보니 정부 입장에서는 마음이 급하고 물가의 고삐를 다잡을 필요를 느끼는 것 같다.
라면가격 인하 요구도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가장 대표적인 국민식품인 라면에 ‘좌표’를 찍고 업계에 인하를 요구하고, 업계가 ‘협조’를 해서 가격을 내리면 소비심리는 물론이거니와 정부의 물가안정 성과까지 챙길 수 있으니 시도해 볼만한 일이었다.
삼겹살 또한 최근 입살에 오르는 품목이다. 라면과 판박이다. 산지 돼지가격이 한참 오르더니 여름 들면서 다소 안정세로 돌아섰다. 하지만 식당에서 한번 오른 삼겹살 가격은 요지부동으로 내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대형마트에서의 돼지고기 가격은 내리지만 식당에서의 가격은 그대로다. 자연히 식당 주인에게 폭리 의심의 눈초리가 꽂히지만 그들도 할 말은 있다. 판매원가에서 인건비 비중을 보라고 말한다. 요즘 요식업계에서는 사람 구하고 다루기가 더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치솟는 인건비에 그나마 일손을 구하지 못하니 자연스레 음식값에 반영할 수밖에 없다는 항변이다.
높은 물가에 외식을 줄이고 도시락을 지참하거나 상대적으로 저렴한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직장인이 늘고 있다. 총체적으로 허리띠를 졸라매는 시국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햄버거 1개에 감자칩, 탄산음료 1잔으로 구성된 세트메뉴가 2만원에 육박하는 외국 수제버거 브랜드가 또하나 국내에 들어와 개업 특수를 제대로 누리고 있다. 개장 전부터 수 백명이 줄을 서는 오픈런은 기본이고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10만원에 되파는 웃돈 거래가 등장하는 등 그 맛을 보려고 연일 장사진이다.
코로나 상황에서 역대 최고의 수익을 남겼던 국내 골프장들도 가격을 내리기는커녕 오히려 더 올리고 있다. 정부의 중과세 엄포에도 안하무인이다. 전남 해남의 한 골프장은 주말 기준으로 그린피를 41만원으로 올린다고 예고했다. 그린피가 비싸서 해외로 나가는 사람이 많고 비난 여론도 적지 않지만 ‘올 사람은 온다’는 배짱으로 고가 정책을 강화하는 느낌이다. 전남 화순이나 나주 등 광주 인근 골프장에는 평일에도 주차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내장객이 넘쳐난다.
양극화라는 말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코로나 이후 경제 상황을 보면 자본주의 경제의 가장 큰 폐해로 지적되는 양극화가 심화하는 모양새다.
라면값 인하 논란을 지켜보면서 경제의 영역에서 정치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정치는 물가 가중치가 2.7에 불과한 라면에 들이대기에는 너무 큰 칼이다. 불가피한 시장 개입이라는 측면에도 불구하고, 특정 품목 가격을 인위적으로 통제하는 물가 대응은 실효성 없이 부작용 논란만 키울 수 있다. 민간·시장 중심 경제를 강조해온 현 정부 기조와도 배치된다. 통화정책이 물가 대응의 핵심이 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이 강조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큰 칼은 양극화 등 큰 틀에서 해결해야 할 거시경제 목표물에 알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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