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의 세상읽기]흑묘백묘론과 시대정신
입력 : 2025. 04. 27(일) 17:58
[김상훈의 세상읽기]흑묘백묘론과 시대정신

김상훈 논설실장



#1.

‘흑묘백묘론’은 1979년 중국 공산당 군사위원회 주석이었던 덩샤오핑이 실용주의적 개혁개방정책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남긴 유명한 어록이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상관없이, 쥐를 잘 잡을 수 있으면 좋은 고양이’라는 의미다. 즉 공산주의냐 자본주의냐에 관계없이 인민들이 당면한 문제인 생활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다면 그것이 제일이라는 뜻이다.

여기에는 당시 중국의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1970년대 말 중국은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다.

무엇보다 문화대혁명이 가져다 준 후유증이 너무 커 국민들은 혁명이나 공산주의 같은 사상학습에 피폐해져 있었고 특히 경제적으로도 너무 힘들었다. 일본과 한국, 대만, 싱가포르, 홍콩 등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은 물론 심지어 북한에게까지 뒤쳐져 있었다.

‘이대로는 안된다’는 위기위식이 전 국민들사이에 퍼져 나갈 때 덩샤오핑이 ‘흑묘백묘론’을 주창하며 중국의 정치이념인 사회주의는 고수하되 나락에 빠진 경제에는 개방경제를 도입한 것이다.

이는 중국의 발전을 가속화시킨 도화선이 됐고 오늘날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 되게 만드는 단초가 됐다. 다시 말해 ‘흑묘백묘론’은 당시 중국의 상황을 관통하고 해결할 수 있는 시대정신이었던 것이다.



#2

시대정신은 독일어인 차이트가이스트(Zeitgeist)에서 유래한 용어로 독일의 관념론 철학자 헤겔이 처음 사용한 개념이다. 인류 역사에서 어떤 시대이던 간에, 그 시대를 관통하는 하나의 절대적인 정신이 있다고 보고 이를 시대정신이라고 불렀다.

요즘에는 한 국가 또는 사회 구성원이 자신들이 살아가고 있는 시대의 문제점을 자각하고 이를 해결해 나가겠다고 하는 의지를 말한다. 가벼운 의미로 어떠한 시대의 유행을 일컫는 말로 사용하기도 한다.

특히 ‘시대정신’은 우리나라 대통령선거에서 후보들의 당락을 좌우할 정도로 큰 위력을 발휘했다. 이를 제대로 알고 반영한 후보들이 국민의 지지를 받으며 통상 승리한 데 따른 것이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부활 이후 총 7번의 대선이 치러졌는데 1992년 대선에서는 군사독재를 청산하고 문민정부를 세우라는 시대정신을 잡은 민주자유당 김영삼 후보가 당선됐다.

1997년 대선에서는 IMF로 고초를 겪은 국민들의 변화 요구에 제대로 부응한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가 ‘준비된 대통령’과 ‘경제를 살립시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헌정 사상 최초로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2002년 대선에서는 지역주의 극복과 행정수도를 제시한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승리했다.

2007년에는 ‘실천하는 경제 대통령’으로 국민의 마음을 흔든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2012년에는 경제 민주화와 복지국가 이슈를 선점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승리했다.

탄핵정국으로 치러진 2017년은 적폐청산과 공정사회 실현을 내세운 더불어 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2022년에는 공정과 상식을 내세운 검찰총장 출신의 국민의 힘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이 됐다.



#3

이처럼 역대 대선에서는 국민 대다수가 대통령의 자질 중 시대정신을 갖춘 후보를 선택했다. 한 시대의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영역을 대변하는 정신인 ‘시대정신’을 파악하는 역량이 대통령이 갖춰야할 필수 덕목이 된 것이다.

오는 6월 3일 또 다시 조기 대선이 치러진다. 더불어 민주당과 국민의 힘 등 여·야는 30여일 앞으로 다가온 대선을 앞두고 각 당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치열한 경선을 치루고 있다.

이번 대선의 핵심화두는 경제다. 현재 대세론을 형성 중인 이재명 민주당 경선 후보 역시 전방위적인 경제 성장 공약에 집중하고 있다. 그는 ‘성장’과 ‘통합’을 차기 정부 핵심 비전으로 제시하고, 이를 실현할 전문가 중심 싱크탱크도 발족했다.또 자신의 민생 철학을 먹고 사는 문제를 가장 우선시한다는 의미로 ‘먹사니즘’으로 정했다. 그는 이를 바탕으로 ‘잘사니즘’으로 확장시키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제 7공화국 선진대국’을 내건 홍준표 후보를 비롯해 국민의 힘 후보들도 나름의 시대정신을 내걸고 경선전에 뛰어들고 있다.

상대 진영을 심판하는 진영의 논리만 극대화되고 있는 요즘, 시대의 정신을 읽어내고 미래의 비전을 세우고 실천하는 진정한 의미의 정치가 아쉽다.

분열된 우리 사회를 통합하고 지속 가능한 경제 발전을 가능하게 할 새로운 시대정신이 절실하다.
김상훈 기자 goart001@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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