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던 중 광주평화연극제가 열리며 서울 극단 골목길이 올린 ‘경숙이, 경숙아버지’를 보게 됐다. 눈 앞에서 땀을 흘리며 연기하는 배우들의 모습을 보고 쾌감을 느끼면서 ‘배우들을 움직이는 대본을 쓰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 대학교를 졸업한 뒤인 2010년에는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를 더 한다.
희곡 작가 권지애씨의 이야기다. 그는 지난해 광주에 몇 안되는 희곡 작가로 발을 내딛었다. 희곡 작가로만 활동하지 않고 대부분 연출과 대본 준비를 겸하거나 배우를 같이하기도 하는 지역에서 새로운 길을 개척한 셈이다.
그는 “희곡 작가가 거의 없다. 거기다 또래는 진짜 몇 안된다”면서 “지역에서 희곡 작가라는 길은 레드오션이면서 블루오션인 아이러니한 상황이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이 된 것은 지역에 극작을 배울 만한 곳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그가 나온 광주대 문예창작과에도 극작을 배울만한 과정이 없었다고 한다. 희곡 수업이 있긴 하지만 희곡을 읽는 정도일 뿐, 창작 작법을 다루진 않는다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2학년 2학기에 처음 희곡 읽기 수업을 듣고 작품을 썼다. 막 안에 춤과 노래가 있다는 의미로, 영화와 시나리오, 드라마 대본, 연극 희곡(극) 소모임인 ‘막무가내’에 들어서는 3학년 2학기때 첫 작품 ‘배웅’을, 4학년 2학기에 두 번째 작품 ‘황천길, 상가위원회’를 각각 선보였다.
대학원에서는 함께 조교를 한 인연들과 희곡읽기 모임을 진행했다. 희곡 장르의 작품에 대해 함께 이야기할 사람이 부족하다 보니 구성원들이 문학의 시선으로 함께 봐주는 역할을 해줬다.
대학원을 마치기에 앞서 그는 신춘문예 최종심에 오르는 성과를 냈다. 그가 쓴 ‘스토리를 팝니다’가 2012년 경상일보 신춘문예 희곡부문 상위 3편 중 한편이었던 것.
비록 최종 당선은 안됐지만, 소기의 성과였다. 그래서 그는 ‘조금 더 글을 써봐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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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배웅’ |
근무했던 곳에서 소개, 추천이 이어져 꼬리에 꼬리를 물고 몇 년 간 일을 계속하면서 글 쓰기는 뒷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음 속에는 항상 희곡 작가로서의 꿈이 자리잡고 있었다. 일을 계속 하면서도 ‘글을 써야한다’는 생각이 가득했던 것이다. 기획자이자 행정가로 활동한 그간의 경험은 공연을 올리기 위해 공연지원사업 기획서를 쓰거나 여러 사람들과의 협업을 이뤄내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는 술회다.
그는 2014년부터 극단 사람사이에서 활동해온 가운데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일을 맡아 광주연극협회 사무실에 출근해 글쓰기에 매진했다. 이렇게 쓴 작품이 지난해 광주연극제에서 선보인 ‘배웅’이었다. 그가 쓴 첫 작품을 발전, 공식적으로 공연계에 내놓았다.
‘배웅’은 특수청소부를 소재로, 고시를 준비하던 아들이 계속 떨어지자 5년 만에 포기하고 결국 부모님과 같이 특수청소부로 일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타인의 죽음을 깊게 생각하지 않던 그가 유가족 만큼이나 누군가의 마지막을 챙기는 특수청소부 일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는 과정을 담는다.
신춘문예 최종심에 올랐던 작품도 각색해 무대화했다. 이야기를 사고파는 전당포가 배경이다. 작품은 이곳에서 구매한 이야기로 소설이 성공해 10년간의 무명생활을 청산한 소설가가 유명세에 취해 위기를 맞는 이야기를 다룬다. 9년간 빛을 보지 못했던 작품을 무대에 올린 것이어서 의미가 깊다.
최근에는 ‘잃어버리거나 잊어버리거나’의 공연을 마쳤다. 작품의 배경은 사람들이 살던 섬이었지만 지금은 육지의 쓰레기를 갖다버리는 쓰레기섬이 된 한울섬이다. 민관합동 테마파크 개발을 위해 매립한 쓰레기를 치우는 과정 중 섬에 숨어 제각각 자기 삶을 살아가던 사람들이 흔적없이 사라지거나 죽게 되며 긴장감과 두려움에 휩싸이게 된다는 내용이다. 극단 씬스센스의 자체기획작으로 선보인 이 작품은 완성도 높은 공연 뿐만 아니라 지역의 여러 공연전문가들이 협업해 눈길을 끌었다. 이는 자체기획작 공연작품의 의뢰가 들어왔을 때부터 그가 제안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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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토리를 팝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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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토리를 팝니다’ 배우들과 권지애씨.(왼쪽 뒷줄 두번째) |
준비한 여러 작품들이 무대에서 관객들을 만나고, 올해 올린 작품을 준비하느라 지난해는 그에게 여러모로 바쁜 한 해였을 터다.
몇 작품을 선보이면서 관객들이 작품에 대해 하는 이야기도 듣는다. 주로 소재와 이야기가 ‘어른 동화’같다거나 ‘죽음’이라는 키워드가 따라다닌다는 얘기다. 스릴러를 좋아하고 그런 스타일을 극에 녹이려고 한 게 잘 전달됐다는 의미다.
그는 올해도 바쁘게 보낸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운영하는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 공연예술 분야에 선정돼 서울과 광주를 오가야 해서다.
청년 예술인이 보다 성장할 수 있도록, 선정자들이 원하는 멘토 1명과 함께 7~8월 중간발표(쇼케이스)와 11월~23년 2월 최종 작품을 발표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는 여기에 광주극장을 소재로 한 희곡작품을 냈다. 오랜만에 찾은 이곳이 상당히 새롭게 느껴져서다. 일제강점기이던 1935년 조선인이 세운 첫 극장인 데다, 일제의 검열을 받으면서도 창극단과 판소리 등 극화한 공연을 주로 상영했고 신문화운동 및 항일 정신을 이으며 광주 전남 문화예술을 선도했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에는 김구 선생의 강연과 각종 음악회, 연극제 등이 열리는 등 역사적으로 중요한 시기마다 지역민들과 함께 해왔다.
“오래간만에 찾은 광주극장에 아직도 극장 앞 줄에 남아있는 임검석을 보고 작품의 전반적 흐름을 잡았죠. 제목은 아직 미정이지만 개인적으로, 직업적으로 완성되지 않은 인물들이 독립운동이라는 큰 뜻을 위해 힘을 보태고, 결국 독립운동을 이룩한다는 내용이에요.”
그가 쓴 작품에서는 광주극장을 무대로 활동하는 극단이 등장한다. 이들은 사실 독립운동가들로, 극장에서 개관공연을 준비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가 담겼다. 작품의 주인공은 무대에서 주인공을 하고 싶어 하지만 항상 부족한 실수투성이 여자 단원이다. 또 창씨개명을 한 친일파 금수저 청년도 등장한다. 일이 하기 싫어 극장 보안과에 있으면서 임검석에 앉아 있기만 하면 되는 일이 쉬워 보여서 하기로 하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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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잃어버리거나 잊어버리거나’ |
문학이라는 큰 틀 아래 광주에서 활동하는 시인과 소설가, 동화 작가, 희곡 작가가 주제에 따라 각각의 장르로 이야기를 풀어내면 배우의 낭독, 음향감독의 음악, 북디자이너의 디자인이 더해진다. 때수건을 의인화해 코로나19 여파로 직업을 잃은 그의 독백을 담는 식이다. 현재 녹음까지 마친 상태로 결과물은 이달 내놓을 예정이다. 향후 자체적인 프로젝트를 비롯해 앤솔러지 발매, 텀블벅, 숏폼, 공연 제작 등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그는 스스로가 하는 일에 대한 믿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만큼, 작품으로 누군가의 하루가 조금이라도 바뀐다면 성공한 거라 생각한다. 앞으로의 목표는 연극을 만드는 스태프들이 하고 싶은 희곡을 쓰는 것이다. 모두가 한 주제에 합심해야 결국 좋은 평을 받는 공연이 되고, 그게 ‘내 공연’이라는 생각이어서다. 작가에게 첫 독자는 연출이고, 두번째 독자는 배우와 스탭들이니까. 작품은 그 다음으로 관객의 품에 가는 것이기에, 이들이 대본에 동의하지 못하면 완성도 높은 무대를 만들기 힘들다는 생각에서다.
마지막으로 그는 앞으로의 포부를 들려주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문학은 혼자 하지만 연극은 다 같이해서 재미있는데 힘들죠. 하지만 그게 또 매력입니다. 아직 신인이어서 앞으로 제 작품, 제가 떳떳한 작품을 내놓기 위해 노력할 거예요. 제 작품을 본 사람들이 평소에 미처 생각 못했던 것들을 다시 돌아보고 오늘에 최선을 다했으면 합니다.”작품을 본 사람들이 평소에 미처 생각 못했던 것들을 다시 돌아보고 오늘에 최선을 다했으면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