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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는이야기] "실력과 열정 겸비…역사 바르게 알았으면"
최고령 일본어 문화관광 해설사 신춘희씨
예술의 거리·증심사 등서 16년째 해설맡아
"사명감 있는 해설사들 많이 나타났으면"

2017. 05.03. 17:55:09

광주 문화 관광일어 해설사 신춘희 할머니가 광주를 방문한 내·외국인들을 대상으로 5·18 의 역사등을 해설하고 있다.

관광지나 유적지에 가면 무엇을 봐야 하고, 각각의 현장에는 어떤 역사가 흐르고 있는지 궁금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5·18 민주화 운동, 학생 독립운동 등 역사를 간직한 광주는 더욱 그렇다. 이런 궁금증을 해결해주는 사람이 바로 문화관광해설사다.

현재 광주에는 84명의 문화관광해설사가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중 눈에 띄는 ‘백발의 해설사’가 있다. 바로 최고령 문화 관광일어 해설사 신춘희씨(88·여)다. 그가 주목받는 이유는 단지 ‘최고령’이라서가 아니다. 100~200명 방문객 앞에서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는 유일한 해설사이며 우리 역사에 대한 ‘뜨거운 불덩이’를 가슴 깊이 품고 역사를 전하는 그 ‘열정’ 때문이다.

“아들 왔나. 우리 딸들 또 왔네.”

신씨는 기념관을 방문하는 모든 학생들을 ‘아들’,‘딸’이라고 부른다. 모든 이들을 ‘피붙이’라고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으로 방문객들을 대하니 해설이 끝난 후 ‘우리 할머니 짱’, ‘할머니 우리 엄마 모시고 왔어요’ 라며 그를 다시 찾는 방문객들도 많다.

또 그의 해설은 쉽고 생동감 있어 귀에 쏙쏙 들어온다.

“큰 마음이 한뜻으로 모인 것을 ‘5·18 대동 정신’이라고 한단다. 주먹밥을 소금물에 적셔서 ‘아나 내 새끼들아 먹고 싸우라’며 입에 물려 주고 ‘형아야 막대기 집고 싸우라’며 동생들은 형아에게 쥐어 주고…”

보통 해설시간이 50~60분으로 정해져 있지만 그는 2시간도 부족하다. 젊은이들에게 하나라도 더 역사를 전하고 싶은 열정 때문이다.

그는 “요즘 기록관을 찾는 학생들 90%가 해설을 해준다고 하면 ‘대충 저희가 보고 나갈게요’라며 쓱 둘러보고 20분 만에 나간다” 면서 “역사를 바르게 알았으면 하는데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많다”고 말했다.

1931년 고흥에서 태어난 신씨는 신학문을 접한 아버지 영향으로 관립유치원부터 간호대학을 졸업할 정도로 배움의 끈이 길었다. 뿐만 아니라 간호사로 근무하다 결혼한 후 아이 다섯을 키우며 밤 새 공부해 초·중고등학교 보건교사시험에 합격해 35년의 교직 생활을 해낼 정도로 의지가 강했다.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하는 성격이었던 것이다.

‘문화관광일어해설사’라는 타이틀도 이러한 삶에 대한 열정 때문에 갖게 됐다.

2001년 70세였던 그는 당시 ‘65세 이하’라는 문화관광해설사의 자격요건에 맞지 않았다. 서류를 접수하러 갔을 때 담당자가 그에게 ‘선생님, 연세 때문에 서류 지원이 불가능합니다’고 말했지만 ‘아따 서류라도 한 번만 내게 해주소’라며 무작정 들이 밀었다.

그는 면접에서 광주 유적지와 5·18 역사 등을 한국어·일본어로 열정적으로 해설했지만 나이 제한에 걸려 낙방했다.

하지만 며칠후 담당자로부터 ‘내일 당장 교육에 참여할 수 있느냐’는 전화를 받았다.

당시 면접을 담당했던 전남도립대학 일어일문학과 교수가 면접에서 누구보다 열정적인 해설을 선보인 그가 해설사 교육에서 보이지 않자 관계자들에게 “백발의 그 어르신은 왜 안 왔냐” 면서 “일본에는 머리가 하얀 백발 어르신도 문화 해설사를 다 하는데 실력과 열정 있으면 되는 거 아니냐”며 특별히 신씨를 뒤늦게 합격시킨 것이다.

이렇게 그해 7월부터 문화관광일어해설사가 된 그는 한 달에 4~5번 일본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예술의 거리, 증심사, 민속박물관, 충민사, 518 자유공원 등을 해설했고 16년째 해 오고 있다. 2012년에는 대동문화에서 주관하는 남도문화체험관광해설사를 맡기도 했었다.

신씨는 해설을 통해 역사를 바로 아는 이들을 보는 일이 가장 큰 ‘보람’이다.

“지난 2012년 추운 겨울에 승복 입은 일본 스님이 기념관 2층 영창체험실 앞에 무릎을 꿇고 향불을 켜고 반야심경을 읊었다”며“ 우리가 일본을 적대시하지만 그를 보면서 역사를 제대로 아는 시민이 있다는 것에 오히려 감동했다”고 전했다.

또 지난해 1년 마다 시험을 봐야 하는 해설사 시험에서 일본 동경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스토리 텔링을 선보였다. 그들에게 광주 학생독립운동에 대한 역사를 가장 들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동경대 학생들을 만나는 일이 ‘꿈’이었는데 같은 해에 학생은 아니지만 동경대 법대 교수 2명이 기록관을 방문했고 그들에게 독립운동 역사를 신랄하게 전했다”면서 “일본에 돌아가고 나서 열정적인 해설에 감사하다며 메일을 보내왔다”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현재 88세인 그는 해설할 때마다 매일 운다.

“독립운동에 참여한 14~15살의 어리디 어린 학생들과 민주화운동에 앞장선 그들의 모습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미어진다”며 “이런 마음이 이 일을 계속할 수 밖에 없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단재 신채호 선생님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말은 그의 신념이자 역사관이다.

“내가 죽으면 옛 어르신들의 말씀을 누가 전달할 것이며 누가 전달 매체가 되겠는가. 오래 살았다는 거, 꾸준히 신문을 읽었다는 이유가 나를 우리 모든 자식들 앞에서 오늘까지 역사를 전달할 수 있게 했다”며 “죽는 날까지 이 일을 ‘사명’으로 여기고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도 일본어 공부를 위해 일주일에 두 번씩 스터디 모임을 하며 해설사 공채 시기에는 입술이 다 지어가며 시험에 제출해야 하는 한국어·일본어 역사 해설 레포트를 준비한다.

‘열정’을 빼면 설명할 길이 없는 그는 “역사는 우리의 정체성이며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이다”며“한가지 소원이 있다면 우리 후손들에게 역사를 전할 사명감 있는 해설가들이 끊임없이 나타나는 것이다”고 전했다.


박사라 기자 parksr@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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