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가까워지는 ‘전남의 보·물·섬’] <14>여수 송도·대횡간도
소나무 섬과 ‘빗깐이 섬’…바람에 기대어 역사를 만들다
400년 팽나무·몰랑길 송도…왜가리·장구섬이 지키는 섬
조선목장·관왕묘·놀이청 ‘대횡간도’…멸치잡이 기억 간직
가고 싶은 섬·어촌신활력 등 ‘관광보다 주민 삶이 먼저
400년 팽나무·몰랑길 송도…왜가리·장구섬이 지키는 섬
조선목장·관왕묘·놀이청 ‘대횡간도’…멸치잡이 기억 간직
가고 싶은 섬·어촌신활력 등 ‘관광보다 주민 삶이 먼저
입력 : 2026. 07. 30(목)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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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 장구섬

송도마을 어촌계 가두리 양식장_조피볼락

송도 선창과 갯벌

송도 400년 팽나무

송도 몰랑길

송도 몰랑길

대횡간도
여수 돌산읍 군내항에서 배를 타면 남쪽 바다에 낮고 부드러운 능선의 섬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돌산도에서 불과 300m가량 떨어진 송도와 그보다 남쪽 바다에 비스듬히 누운 대횡간도다. 두 섬은 여수의 대표 관광섬처럼 화려한 절벽이나 이름난 해수욕장을 앞세우지 않는다. 대신 포구와 밭, 마을길, 오래된 나무, 바다를 바라보며 살아온 주민들의 시간이 섬의 풍경을 이룬다.
송도와 대횡간도는 지난 2023년 전남도의 ‘가고 싶은 섬 가꾸기’ 대상지로 나란히 선정됐다. 각 섬의 자연과 생활문화를 보전하면서 둘레길과 마을식당, 숙박시설 등 여행 기반을 갖추고 주민 역량을 높이는 사업이다. 알려지지 않았기에 오히려 원형이 남은 두 섬은 이제 ‘구경하는 섬’이 아니라 주민의 일상 속으로 천천히 들어가는 여행지를 준비하고 있다.
△솔숲 이름 간직한 풍요의 섬 ‘송도’
송도(松島)는 이름 그대로 소나무에서 비롯됐다. 조선 후기에 진주 강씨가 들어와 마을을 이룰 당시 섬에 소나무가 무성해 송도라 불렀다고 전한다. 고문헌에는 ‘남송도’로 기록됐으며, 토질이 비옥하고 먹을 것이 넉넉해 ‘식도(食島)’라는 별칭도 얻었다. 지금은 옛날처럼 울창한 솔숲이 섬 전체를 덮고 있지는 않지만 소나무의 이름은 마을의 기원을 기억하는 표지처럼 남아 있다.
0.91㎢ 면적의 송도는 최고점인 수리봉도 89m에 불과해 산세가 완만하다. 낮은 구릉과 밭이 동서로 길게 이어지고, 어느 곳에 서도 가막만과 화태도, 자봉도 등 주변 섬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섬 서쪽의 포구와 마을, 동쪽의 농경지가 한눈에 이어져 있어 바다와 밭을 함께 일궈 온 주민들의 생활 구조를 읽기 쉽다.
송도의 밭에서는 감자와 고구마, 마늘, 시금치, 무 등이 자라고 바다에서는 낙지와 문어, 도다리 등을 잡는다. 남쪽 해안에는 가두리 양식장이 자리한다. 1990년대 초까지는 소형 기선저인망 어업으로 소득을 올렸지만, 이후 어업 방식이 바뀌면서 가두리와 주낙, 복합어업이 생계의 중심이 됐다. 섬의 역사는 거창한 사건보다 생업의 변화 속에 더 선명하게 남아 있다.
△팽나무 그늘·몰랑길에 새겨진 일상
송도를 걷는 길의 핵심은 ‘몰랑길’이다. 몰랑은 남도말로 산마루나 고개를 뜻한다. 주민들에게는 밭으로 가고 이웃집을 찾으며 아이들이 뛰놀던 마실길이었다. 선착장에서 마을과 수리봉, 옛 송도분교, 작은 몰랑을 잇는 길을 따라 걸으면 낮은 돌담과 오래된 간판, 밭 가장자리의 풀꽃이 여행자를 맞이한다. 빠르게 목적지로 향하는 관광길이 아니라 주민들의 하루가 겹겹이 쌓인 생활의 길이다.
마을의 400년 된 팽나무는 송도의 시간을 대표한다. 여름이면 주민들이 더위를 피하고 이야기를 나누던 쉼터였고, 새들이 날개를 쉬게 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포구에는 배를 묶어두던 자연석 말뚝이 남아 있어 현대식 계선시설 이전의 어촌 풍경을 보여준다. 바다 건너 장구 모양의 장구섬은 송도로 몰아치는 바람을 한 차례 막아주고, 주변의 자연 어장은 왜가리들의 먹이터가 된다. 섬과 작은 부속섬, 사람과 새가 서로 기대어 살아온 풍경이다.
△비스듬히 누운 대횡간도
대횡간도는 남면 횡간리에 속하며 소횡간도와 함께 횡간도를 이룬다. ‘횡간’은 섬의 지세가 비스듬해 ‘빗깐이섬’이라 부르던 데서 유래했다는 설명이 가장 널리 전한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쏜 화살이 섬에 막혀 빗겨 나갔다는 이야기도 전해지지만 이는 마을에 내려오는 구전이다. 중앙의 요망산은 91m로 높지 않고, 마을은 북서쪽 해안과 산기슭 사이에 포근히 자리해 있다.
이 섬의 시간은 선사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패총과 덧무늬토기 등 신석기시대 흔적이 확인됐고, 조선시대에는 말을 기르는 목장이 설치됐다. 마을 뒤 후박나무 숲에서 지내던 당제에는 말의 번식과 마을의 평안을 비는 신앙이 섞여 있었다. 당집에는 용마 그림과 흙으로 만든 말이 있었다고 전하지만 현재는 남아 있지 않으며, 당제도 1980년대 초에 중단됐다.
대횡간도에는 여수 지역에서 유일하게 관우를 모신 관왕묘의 전통이 남아 있다. 19세기 후반 주민들이 집집마다 관우의 초상을 모시다가 참여자가 늘면서 사당을 세웠다고 전한다. 일제강점기 일본 경찰이 관련 물품을 가져간 뒤 1914년 초상화를 다시 제작했다는 기록도 있다. 충성과 용맹의 상징인 관우를 받든 신앙은 거친 바다에서 안전과 공동체의 결속을 바랐던 섬사람들의 마음과 맞닿아 있다.
△전복 진상과 놀이청…멸치가 먹여 살린 마을
횡간도는 조선시대 전복 산지로도 이름이 높았다. ‘호좌수영지’에는 전라좌수영 소속 잠수군이 이곳에서 전복을 채취해 진상했다는 내용이 전한다. 구한말 문신 김윤식도 물속을 오가며 전복을 따는 횡간도 아이의 모습을 시로 남겼다. 바다는 섬사람에게 경계가 아니라 밭이었고, 물질은 대를 이어 삶을 지탱한 기술이었다.
동북쪽 해안의 ‘놀이청’은 전라좌수영 관원들이 활쏘기와 무예를 익힌 곳으로 전해진다. 너럭바위에는 전라좌수사와 순천부사, 방답첨사 등의 이름을 새긴 각석문이 남아 있다. 마을의 풍물놀이는 고된 노동을 견디게 한 공동체의 리듬이었다. 정월 당제와 풍어를 비는 의례, 멸치철에 온 마을이 함께 움직이던 노동은 신앙과 놀이, 생업이 나뉘지 않았던 섬의 풍속을 보여준다.
대횡간도의 대표 생업은 오랫동안 멸치잡이였다. 낭장망을 설치해 멸치를 잡고 삶아 말리는 철이면 포구와 집 마당까지 사람과 그물, 은빛 멸치로 가득 찼다. 한때 마을 전체에 낭장망이 30틀 가량 있었지만 최근에는 5틀 정도만 남아 있다고 한다. 어획량 감소와 고령화로 예전의 활기는 줄었지만 멸치로 자녀를 키우고 집을 세운 기억은 여전히 마을의 자부심이다.
△아이들 웃음 사라진 학교…쇠락의 역사
두 섬의 가장 큰 고민은 사람이다. 2023년 기준 송도에는 88세대 143명이, 대횡간도에는 62세대 99명이 살았다. 대횡간도에는 한때 800명 안팎이 거주한 것으로 전해지지만 젊은 세대가 교육과 일자리를 찾아 육지로 떠나면서 주민 대부분이 고령층이 됐다. 대횡간도의 화태초등학교 여동분교장은 학생 감소로 2015년 문을 닫았고, 송도의 옛 분교도 이제 몰랑길에서 만나는 마을의 기억이 됐다. 운동장에서 들리던 아이들 목소리가 사라진 자리는 섬 소멸이라는 현실을 말해준다. 그렇기에 두 섬의 관광 사업은 방문객 수를 늘리는 데서 끝날 수 없다. 주민의 이동과 의료, 문화생활을 개선하고 청년이 머물 수 있는 일거리와 소득을 만드는 일이 함께 가야 한다.
△오래된 나무가 가르치는 섬의 미래
대횡간도에는 300년 이상 된 후박나무와 느티나무, 수령 700년으로 전해지는 감등연의 소나무가 남아 있다. 후박나무 20여 그루가 이룬 숲은 바닷바람을 막는 방풍림이자 당산이었다. 선착장 인근의 새알치는 썰물 때 몽돌길이 드러나는 해안이며, 계단식 밭과 암석해안은 주민들이 자연의 경사와 바람에 맞춰 일군 삶의 흔적이다.
두 섬의 변화도 시작됐다. 대횡간도에는 섬을 한 바퀴 잇는 둘레길과 주민이 운영하는 여행 기반이 추진되고 있다. 송도항은 2025년 해양수산부 어촌신활력증진사업의 생활플랫폼 대상지로 선정돼 4년간 100억원 규모의 문화·복지와 생활서비스 개선 사업이 진행될 예정이다. 하지만 개발의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섬의 주인이 주민이라는 원칙이다.
오는 9월 열리는 2026여수세계섬박람회도 두 섬의 새로운 가능성을 알리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섬, 바다와 미래를 잇다’라는 박람회의 주제처럼, 섬의 미래는 더 많은 관광객을 불러들이는 데만 있지 않다. 섬이 품어온 자연과 생활문화를 지키면서 주민이 계속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 먼저다. 송도와 대횡간도가 준비하는 변화 역시 박람회 이후까지 주민의 삶과 소득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의미를 얻을 수 있다.
송도와 대횡간도의 보물은 거대한 시설이나 인공적인 볼거리가 아니다. 팽나무 아래에서 이웃을 기다리던 시간, 몰랑길을 넘어 밭으로 향하던 발걸음, 멸치를 삶고 그물을 손질하던 손, 당산나무 앞에서 마을의 평안을 빌던 마음이 두 섬의 진짜 자산이다.
여수의 바다에 나란히 떠 있는 두 섬은 묻는다. 섬을 살린다는 것은 무엇인가. 답은 오래된 풍경을 새것으로 바꾸는 일이 아니라, 그 풍경 속 주민의 삶이 계속 이어지도록 돕는 데 있을 것이다. 2026여수세계섬박람회가 세계와 나누어야 할 여수 섬의 이야기도 바로 그곳에서 시작된다.
박정렬 기자 holbul@gwangnam.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