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더럽혀진 언어와 시의 윤리
강경호 ‘시와사람’ 발행인·한국문인협회 평론분과 회장
입력 : 2026. 05. 28(목)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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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호 ‘시와사람’ 발행인·한국문인협회 평론분과 회장
‘시와사람’을 창간한 지 30년이 되었다. 우리는 창간사에서 시대 변화에 제대로 응답하지 못하는 시단의 현실을 지적했다. 1990년대 한국 사회는 관능의 상품화, 상업적 대중문화의 발호, 물질만능주의 속에서 몸과 정신을 함께 훼손당하고 있었다. 우리가 문예지를 발간한 까닭은 이러한 현실에 대한 문학적 대응의 길을 찾기 위해서였다. 참신한 언어로 시대를 새롭게 감각하고, 더 나은 공동체를 모색하고자 했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오늘, 그 병리적 현상들은 사라지기는커녕 더욱 복잡하고 노골적인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물론 문예지 하나가 일상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다만 세계가 훼손되는 방식이 먼저 언어의 훼손으로 드러난다면, 문학이 해야 할 일 역시 언어에서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세계는 자본의 논리를 앞세워 질주하고, 곳곳에서는 전쟁과 폭력이 끊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이익과 진영의 논리를 위해 타자를 공격하는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시인들은 시 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시가 세계의 폭력을 즉각 중단시킬 수는 없지만, 폭력과 거짓에 오염된 말을 감지하고 무뎌진 인간의 감각을 다시 깨우는 일은 문학의 오래된 몫이다.

언어는 인간의 실존을 보여주는 척도이다. 인간이 타락하면 언어 또한 타락한다. 언어를 질료로 삼는 시는 때 묻지 않은 말로 타락한 세계를 정화하고자 한다. 시가 도모하는 정화는 현실의 추함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 거짓과 폭력에 오염된 말을 다시 진실과 사유의 자리로 돌려놓는 일이다.

기독교적 상상력에서도 마찬가지로 ‘태초의 말씀’은 순수한 세계를 가리킨다. 그렇기에 하느님이 지으신 것들이 아담을 통해 이름을 얻었을 때, 그것들은 낯설고 아름다운 존재들이었다. 이름은 존재를 부르는 첫 언어였고, 세계와 인간이 맺은 최초의 관계였다. 그러나 인간이 죄를 짓고 낙원에서 쫓겨난 뒤부터 말은 거짓과 변명, 폭력과 탐욕을 품기 시작했다. 인간의 역사가 살육과 배신, 지배욕과 물질적 욕망으로 점철되어 온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래서 인간은 죄를 씻고 구원받기 위해 기도한다. 기도는 낙원에서 쫓겨난 인간이 다시 올바른 말을 찾으려는 가장 오래된 언어 행위이다.

언제부턴가 정치인의 언어는 정의롭지도, 진실하지도 않은 말로 변질되어 갔다. 말은 설득이 아니라 선동이 되고, 토론이 아니라 낙인과 조롱이 되며, 책임이 아니라 회피와 왜곡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또는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상대에게 칼을 들이미는 잔인성은 이제 아무렇지도 않은 삶의 방식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이 내뱉는 타락한 언어는 곧 그들의 실존을 드러내는 표지가 되었다.

가령 ‘태극기’라는 말에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선열들의 애국심이 깃들어 있다. 그러나 이른바 ‘태극기부대’라는 말이 연상시키듯, 그 이름은 때로 파시스트적 극우 행태와 결부되어 사용된다. 문제는 태극기 자체가 아니라 한 공동체의 숭고한 이름이 특정한 정치 행위 속에서 어떻게 훼손되고 소비되는가에 있다. 우리는 일제에 저항하며 나라를 지켜낸 상징이 극단적 정치 언어 속에서 왜곡되어 가는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시인은 ‘모국어를 아름답게 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모국어를 아름답게 한다는 것은 말을 곱게 다듬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훼손된 말의 내부에서 인간다운 감각을 회복하고, 공동체가 서로를 다시 사람으로 부를 수 있도록 언어의 윤리를 세우는 일이다. 언어가 갈수록 거칠어지고 험악해지는 현상은 우리 사회의 분열과 모순, 그리고 타락을 증명한다.

언어가 인간을 만든다는 사실은 아이가 말을 배우는 과정에서도 드러난다. 아이는 단어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말의 표정과 억양, 태도와 정서까지 함께 배운다. 어떤 말을 반복해서 듣고, 어떤 말을 습관적으로 사용하며, 어떤 말에 마음을 빼앗기는가는 결국 한 인간의 삶의 방향과 무관하지 않다. 미디어는 그 시대 언어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새로운 말은 시대의 활력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 가운데는 조롱과 혐오, 비하를 매개로 태어나는 말도 적지 않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빛나는 이름들을 기억한다. 그것은 그들의 삶이 자신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럽혀진 이름도 수없이 많다. ‘어머니’, ‘꽃’, ‘나무’, ‘새’, ‘하늘’ 같은 이름들이 여전히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그 안에 생명과 돌봄, 자연과 근원의 감각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시는 그 이름들을 다시 처음 만난 듯 부르는 일이다.

자신의 이름은 평생 어떤 말을 하며 살았는지에 따라 비문(碑文)처럼 남는다. 스스로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진실하게, 정의롭게, 최선을 다해 인간다움을 지킬 때 그 이름은 온전하게 남는다. 결국 이름을 지키는 일은 말을 지키는 일이며, 말을 지키는 일은 인간을 지키는 일이다.

창간 30주년을 맞은 ‘시와사람’은 앞으로도 모국어를 아름답게 하는 시인들의 말을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한다. 참신하고 맑고 밝은 언어로, 훼손된 세계 속에서도 사람다운 감각을 잃지 않는 시의 자리를 지켜 가고자 한다.

다시 내 이름을 불러본다.
강경호 gn@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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