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미술 정점…역사적 변혁의 시간 ‘반추’
■광주미디어아트플랫폼, 특별·교류전시 잇단 진행
5·18민중항쟁기념 미디어아트로 첫번째 특별전
몰입형 미디어아트 ‘민족해방운동사’ 복원 주목
광주·라이프치히시 교류전·…추천 작가들 눈길
입력 : 2026. 05. 10(일)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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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현 작 ‘푸른 낯 붉은 밤옛 국군광주병원’(‘기억의 출발: 흙먼지가 가라앉은 뒤’전)
파울라 아발로스 작 ‘방문자들 - 크라스나’(‘기억의 출발: 흙먼지가 가라앉은 뒤’전)


가브리엘라 골더 작 ‘투쟁의 장면들’(‘완전한 것들의 틈’전)
몰입형 미디어아트 작품 ‘민족해방운동사’(일부, ‘완전한 것들의 틈’전)
“한국 근현대사를 다룬 이 초대형 작품은 안타깝게도 1989년 6월 한양대 전시회가 마지막이었는데 그때 백골단에 의해 압수되고 찢겨졌으며 불타 없어졌습니다. 다행히도 처음에 서울대 아크로폴리스에서 이 그림을 걸었을 때 전경 사진을 찍어둔 게 있었거든요. 그때 기획을 했던 최열 선생님이 카메라로 찍었던 그 사진들, 슬라이드 자료가 있었는데 그게 복원이 되면서 고화질 디지털 파일을 저희가 최강 콘텐츠로 구현한 것이죠. 이 그림은 서울 광주 부산 대구 등 주요 도시의 공공 장소에서 걸렸고, 전주 서울 부산 광주 등 여러 도시의 미술 단체들이 걸었습니다.”

이 멘트는 민중미술사에 대한 광주미디어아트플랫폼(이하 지맵 G.MAP) 이혁진 학예사의 몰입형 미디어아트 ‘민족해방운동사’에 대한 언급 대목이다. 작품 ‘민족해방운동사’는 지맵이 5·18민중항쟁을 주제로 마련돼 지난 7일 개막, 오는 7월 15일까지 1∼3전시실에서 여는 5·18기념 미디어아트 첫번째 특별전에서 단연 눈길을 붙잡고 있는데다 전시장을 반드시 방문하고픈 욕망을 자극하는 작품으로 손색이 없다.

‘완전한 것들의 틈’이라는 주제로 진행 중인 이번 전시에서 ‘민족해방운동사’는 틈에 놓인 존재와 같았다. 원작이 소실됐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민족해방운동사’는 갑오농민 동학혁명에서부터 일제강점기 항일무장투쟁, 해방후 한국전쟁, 4·19혁명, 5·18민중항쟁, 6월 항쟁 등 1980년대 후반까지 한국 근현대사의 주요 민족해방운동 과정을 망라. 총 120년의 역사가 담겨 서사시 같은 작품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민중미술사에서 언급하지 않고는 안되는 중요 지점에 놓여있는 작품이다.

‘민족해방운동사’는 1988년 12월 민족민중미술운동전국연합 건설준비위원회(위원장 홍성담)가 지역 간 연대 창작물인 대하 걸개그림을 제작하기로 결정한 것이 계기가 됐다. 그후 1989년 전국 5개 지역의 미술 집단과 30개 대학의 미술 패 회원들이 참여, 3개월 동안 매달려 완성한 작품으로 총 11쪽으로 구성됐다. 1폭의 크기가 세로 2.6m에 가로 7m 규모로, 총길이는 77m에 달했다. 1989년 4월 서울대학교의 개막전을 시작으로, 전국을 순회하며 야외 전시로 진행됐는데 광주에서는 금남로를 순회하며 전시된 바 있다. 이 작품은 걸개그림 양식을 통해 시위 현장에서 대중과 직접 소통하며 사회 변혁의 메시지를 전달한 1980년대 민중미술의 정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따라서 지맵의 몰입형 미디어아트로 완성한 ‘민족해방운동사’는 민중미술사에서 옥의 티처럼 민중미술가의 시각에 근거해 틈으로 존재했던 걸개그림이었으나 이를 다소 보완한 전시로 기록될 수 있을 전망이다. 굴곡진 한 시대의 종합판이자 최종결과보고서 같은 의미를 갖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이 작품을 구경하기 위해 5월 관련 전시 중 반드시 관람해봐야 할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완전한 것들의 틈’전은 1전시실에 ‘민중해방운동사’가 설치돼 있고, 2∼3전시실에는 권승찬 강수지 이하영 문경원 이용백 장민승씨 등 국내 작가의 작품이, 올리아 페도로바, 가브리엘라, 윌리엄 켄트리지, 처지엔취안, 사하르 호마미 등 해외작가들의 작품도 접할 수 있다.

작품 경향은 제주4·3과 순천 10·19, 5·18민중항쟁(강수지·이하영)에서부터 이념 갈등속 폭력의 순환(권승찬), 권력의 공허함(문경원), 현대인의 위태로운 상태(이용백),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반복되는 비극에 대한 애도(장민승)에서부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전쟁이 개인에 가하는 압력(올리아 페도로바), 역사적 부조리 풍자(윌리엄 켄트리지)에 이르기까지 현실적 문제들을 작품전면으로 호출하고 있다. 해외 작가 중 윌리엄 켄트리지는 남아공의 피카소로 불리는 작가이며, 처지엔취안은 베니스비엔날레에 출품한 바 있는데 중국 작가이지만 대만자료를 영상취재해 작품활동을 펼치고 있다. 또 사하르 호마미 이란 작가로 현재 진행 중인 미국과 이란 전쟁이 벌어지고 있어 그의 작품에 관심이 더해지고 있다.

제4전시실 또한 의미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어 1∼3전시실과 연동해 관람하면 더 풍족한 작품 콘텐츠를 확보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광주와 독일 라이프치히시와의 기관교류전이 진행 중이다. ‘완전한 것들의 틈’전처럼 7월 15일까지 열린다. ‘완전한 것들의 틈’전의 개막보다 더 빠른 4월 16일 시작된 이 교류전은 ‘기억의 출발: 흙먼지가 가라앉은 뒤’라는 주제로 해 광주와 라이프치히 두 도시가 걸어온 역사적 변혁의 시간을 현재와 미래의 시선으로 조망 중이다. 이 두 도시가 공유하는 변혁의 경험을 교차시켜 과거의 사건이 어떻게 현재의 도시 풍경과 집단 기억을 형성해왔는지를 탐색하고 있는 것이다.

광주 추천작가로는 이세현 정다영씨, 독일 추천작가로는 파울라 아발로스, 슈테판 후르티히, 크리스토프 블랑켄부르크 등이다.

이세현 작가는 광주의 역사적 장소에 현재의 시간을 덧입힌 사진 작업을, 정다영 작가는 라이프치히에 살았던 평화혁명을 회고하는 최초의 한국인 최정송씨의 증언을 통해 잊힌 시간을 탐구한다. 파울라 아발로스는 오래된 독일식 건물에서 일상적으로 사용된 물건들을 포렌식적 접근으로 추적하며 기억을 복원하고, 슈테판 후르티히는 기계들이 노동을 대신하는 공간에서 미래에 온 방문객이 자유롭게 유영하는 영상을 통해 노동과 나태함이라는 상반된 가치를 미래적 삶의 모습으로 새롭게 인식시킨다. 이외에 크리스토프 블랑켄부르크는 인간이 쌓아올린 자연 속에서 즉흥적인 퍼포먼스가 만들어낸 계획되지 않은 기억을 포착한다.

전시 기획은 김하나 학예연구사와 라이프치히 시립미술관 큐레이터인 올가 보스트레초바가 공동으로 맡았다.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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