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 있는 사진가’로 활동 지속해 나갈 겁니다"
[남도예술인] 다큐멘터리 사진가 박하선
50년 이력 분주한 촬영 일정 남다른 글솜씨 발휘
항해사 전환점 역할…실크로드·티베트 등 누벼
북한의 속살들 담아내며 추후 작품집 출간 계획
50년 이력 분주한 촬영 일정 남다른 글솜씨 발휘
항해사 전환점 역할…실크로드·티베트 등 누벼
북한의 속살들 담아내며 추후 작품집 출간 계획
입력 : 2026. 03. 19(목)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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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선 사진가

‘나라 걱정하지 않는 세상’
이 지문은 2022년 7월 발행된 그의 사진과 산문으로 꾸며진 작품집 ‘사진가와 열하일기’에 수록된 구절이다. 발췌한 지문은 240여년 전 연암 박지원의 연해길 전반에 자신을 투영해 좀더 밀도있게 당시 연암이 느꼈을 단상과 행보에 대한 깊은 공감이 표출된다. ‘사진가와 열하일기’는 오랜 고증을 거친 뒤 스토리를 카메라 앵글에 담아내고 사유로 간결하게 정리한다. 그는 사진작가이지만 독학으로 실력을 쌓은 남다른 글솜씨도 선보여온 50년 사진이력을 더해가고 있는 광주 출생 다큐멘터리 사진가 박하선씨의 이야기다.
‘사진가와 열하일기’가 10여권 작품집 중 가장 최근의 것이다. 요즘 그의 스토리포토 작업을 들여다볼 수 있어서다. 그런 측면에서 필자는 ‘사진가와 열하일기’를 주목했다. ‘열하일기’ 루트를 10년 동안 밟아가면서 이룬 역작이었다. ‘사진가와 열하일기’ 외에 그동안 그가 사진인생을 담아온 작품집들은 사진계에 작지 않은 족적을 아로새겼다.
우선 2002년 선보였던 ‘천장’(天蔣)은 그의 사진 이력 중 돋보이는 작품집인 것은 분명하다. 이 작품집은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사진 컨테스트 2001 World Press Photo의 Daily Life Stories 부문에서 한국 최초로 수상했기 때문이다. 역대 수상자들은 1컷의 사진들로 수상한 반면, 작가는 12장의 사진 스토리로 수상했다. 이처럼 한 컷이 아닌 스토리 사진으로 수상한 경우로 처음의 기록이었다. 더욱 의미있는 것은 이 상이 사진계의 노벨상이어서다. 티벳의 장례 의식을 기록한 것이었다.
그의 사진 이력은 허투루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듯하다. 관찰자 입장에서 보면 자신만의 세계가 확실할 뿐 아니라 내공이 정말 탄탄한 작가라는 것쯤은 금세 눈치챌 수 있다.

‘조선의용군의 눈물’(雲頭底村에 남아있는 조선의용군 무장선전대가 남긴 흔적)

‘고구려- 통구의 고구려 고분들’
작품집의 면면을 보면 그가 사진에 관해 질식할 정도로 자신의 세계를 다그쳐 왔음을 직감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천장’(天蔣) 및 ‘사진가와 열하일기’, 그리고 ‘삶의 중간 보고서’(1999) 외에 ‘문명 저편의 아이들’(2005), ‘천불천탑’(2007), ‘오래된 침묵’(2011), ‘발해의 한’(2012), ‘태왕의 증언-고구려’(2017), ‘조선의용군의 눈물’(2019) 등을 지금까지 펴냈다. 한결같이 시대적 서사를 담보하고 있는 것들이었기에 사진계 안팎의 주목을 단연 받았다.
전시회 명칭이나 작품집 명칭을 유심히 살펴보면 작가가 지향하는 사진 의식을 포착할 수 있다. 하나같이 다 시대의 당면한 문제나 과거의 삶이 응축된 공간, 당시 쉽게 접할 수 없었던 미지의 속살들 등이 담겨 있어서다.
하지만 광산 비아 출신인 그는 너무 어려운 가정환경으로 인해 고가인 카메라를 구입할 수 없어 각종 관련 도서들을 통해 사진의 세계를 접해야 했고, 흑백만 있던 시절 어쩌다 눈에 띄는 컬러 사진들은 그에게 수집자료 대상이었다.
꿈만 간직한 채 사진 관련 책들을 통해 사진 공부를 하던 그는 항해사로 20대 때 그렇게도 꿈에 그리던 카메라를 구입, 미국이나 일본 등을 오가며 배 위에서 사진을 찍곤 했다. 그의 사진 초입에 전환점이 됐다. 그리고 첫 개인전인 ‘대양’전의 제목 대양은 직업 항해사로 쉽게 해외를 오갈 수 없었던 시절, 항해사였기에 가능했던 제목이었다. 자주 오갈 수 있었던 직업적 특징이 그에게 대양이라는 거대한 사진서사를 안겨줬다. 해외를 무수히 오갔을 바다 풍경 등을 담아낸 작품들로 5·18민중항쟁 이전에 남도예술회관에서 사진전을 열었으니 당시 사진계 안팎의 주목을 단박에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두번째 전시 역시 광주와 부산에서 열어 호평을 받았다. 항해사로 있던 10년(1974∼1984)의 시간들은 그가 사진을 바라보는 시각의 폭을 넓혔을 뿐만 아니라 세계의 오지 등으로 눈을 돌리게 된 계기를 촉발시킨 것은 분명해 보인다. 다만 그는 항해사를 그만두고 1988년까지 4년간 생계전선에 종사하느라 카메라를 잠시 놓았는데 사진에 대해 또 다른 사유들을 가져갈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두만강 풍경’

‘열화정의 동백’
이후 국교 수교 전 사회주의 하에 놓였던 중국 오지를 누비며 73일 간 촬영했다. 실크로드는 물론이고 금단의 땅이나 마찬가지였던 티벳 등 촬영을 결행한 것만 봐도 사진에 관한한 열정과 진심을 읽을 수 있다. 1988년에는 모 언론에 ‘중국 실크로드를 가다’라는 제목으로 여덟차례 연재해 ‘박하선’이라는 이름을 아로새긴데 이어 남봉갤러리에서 전시까지 여는 등 새로운 장을 모색하는 동시에 사진의 나아갈 방향성을 확실하게 정립할 수 있는 기회였다. 후에 티벳을 다녀온 이후 ‘오지 사진가’라는 닉네임을 얻었다 하지만 닉네임으로 ‘다큐멘터리 사진가’, 혹은 더 디테일하게 ‘역사다큐멘터리 사진가’가 더 맞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와함께 한때 전국에서 나오던 일부 유명 잡지 속 주요 사진들을 호령할 만큼 그는 명성을 얻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두만강 쪽에서 북한을 조망했고, 평양도 직접 다녀왔지만 북한의 속살들을 담고 싶은 꿈과 2년마다 펴내다시피한 작품집 출간 계획을 언급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압록강 두만강 중국 쪽에서 북한을 보고 찍은 것은 많아요. 신문에 연재도 했고, 전시도 했습니다. 물론 평양을 1박 2일 다녀왔구요. 그런데 그건 수박겉핥기 였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더 심도있게 북한에 있는 우리 역사유물이 됐든, 풍경이 됐든, 사람 사이 생활이 됐든 집중적으로 한번 촬영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다큐 사진은 보통 일회성으로 찍는 것이 아니라 10년, 20년 걸려서 찍죠. 저는 그냥 다큐멘터리 사진가로서 남들이 보통 이야기하는 것처럼 ‘철학이 있는 사진가’로 활동을 지속해 나갈 겁니다.”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