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복싱 링에 사상 첫 ‘히잡 여성’…기록 쓰고 승리도 챙겨
입력 : 2025. 11. 27(목)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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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잡 쓴 여성 프로복서 제이나 나사르 (서울=연합뉴스) 2025년 11월 26일(현지시간) 파키스탄 라호르에서 개막한 제2회 국제복싱챔피언십(IBC) 대회 첫날 여성 밴텀급으로 출전한 독일 국적 레바논계 선수 제이나 나사르(가운데)가 태국 출신 카노콴 위룬팟 선수를 상대로 판정승을 거둔 후 기뻐하고 있다. 이 경기는 나사르의 프로 데뷔전이었으며, 나사르는 히잡을 쓰고 경기에 출전한 사상 최초의 프로권투 선수가 됐다. [Sports TV 유튜브 채널 화면 캡처. DB 및 재판매 금지] 2026.11.27. 연합뉴스
세계 프로복싱 사상 최초로 히잡을 착용한 여성 복서가 프로 데뷔전에서 만장일치 판정승을 거뒀다.

26일(현지시간) 파키스탄 라호르에서 개막한 제2회 국제복싱챔피언십(IBC) 대회 첫날 여성 밴텀급으로 출전한 독일 국적 레바논계 선수 제이나 나사르(27)와 태국 출신 카노콴 위룬팟 선수가 라운드당 2분씩 6라운드 경기를 벌였다.

두 선수 모두 하의는 반바지, 상의는 어깨 부분이 드러나는 민소매 셔츠 차림이었으나, 위룬팟 선수가 긴 머리카락을 뒤로 질끈 묶은 평범한 헤어스타일로 경기를 치른 것과 달리 나사르는 머리와 팔다리를 덮는 히잡 겸 전신커버를 착용했으며 이 때문에 나사르의 팔다리 부분은 맨살이 드러나지 않았다.

나사르가 착용한 히잡 겸 전신커버는 검은색이었으며, 머리에 밀착되는 후드 스타일로 된 히잡에는 그를 2017년부터 후원해온 나이키의 로고가 흰색으로 새겨져 있었다.

그가 입은 자주색 바탕의 경기복 중 상의 앞부분에는 흰 글씨로 ‘더 무슬림 미시즈’(THE MUSLIM MISSES)라는 문구가 박혀 있었다.

프로 데뷔전을 치르는 나사르 선수는 침착하게 잽을 주무기로 경기 내내 흐름을 주도하면서 잇따라 유효타를 날렸다.

프로 전적 9전 5승 4패 가운데 5승 모두를 KO로 거뒀던 강타자 위룬팟 선수는 나사르 선수의 허점을 노렸으나 좀처럼 반격 기회를 얻지 못하고 밀렸다.

경기 해설자는 마지막 6라운드에 “높은 수준의 경기를 보고 있다”며 “나사르가 분위기를 탔다. 때리고 있고 맞지는 않고 있다. 정말 놀라운 머리 움직임이다”라고 평가했다.

해설자는 경기가 끝나고 판정 결과가 발표되기 전에 나사르가 경기를 주도했다는 관전평을 내놓으면서 “열심히 했다. 1라운드 내내 주도권을 쥐었다. 잽이 강점이었다. 프로 데뷔전이다. 꼭 KO를 노릴 필요는 없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잽이 맞을 때마다 상대편 선수의 머리가 뒤로 밀린다”며 나사르의 잽이 멋지다고 평가했다.

경기가 끝났을 때 심판 3명의 채점 카드에 적힌 점수는 60대 54로 동일했고, 이에 따라 만장일치로 나사르의 판정승이 선언됐다.

경기 내내 나사르 측 코너에서는 살아 있는 프로복싱의 전설 로이 존스 주니어(56)가 코치로서 경기를 지켜보며 격려하고 있었다.

나사르의 프로권투 데뷔를 이끌어준 멘토인 로이 존스 주니어는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미국 대표로 출전해 라이트미들급 은메달을 땄으며, 프로에 뛰어든 후에는 미들급·슈퍼미들급·라이트헤비급·헤비급 등 4개 체급에서 세계챔피언 타이틀을 여러 차례 따냈다.

경기 전에 나사르가 BBC 스포츠와 한 인터뷰에 따르면 그는 베를린에 살던 13살 때 유튜브로 여자권투 경기를 보고 복서가 되겠다고 결심하고 부모를 설득했다.

그는 체육관에 등록해 복싱 훈련을 하면서 히잡을 쓰고 팔다리의 맨살이 드러나지 않도록 긴팔 옷을 입었지만, 당시 독일 아마추어 권투 규정상 이런 차림으로는 경기 출전이 허용되지 않았다.

나사르는 복싱을 시작한 지 1년만에 14살이 됐을 때 긴팔 옷과 머리를 가리는 스카프를 착용하고 권투경기를 할 수 있도록 규정을 바꾸도록 하는 데에 성공해 대회에 나갈 수 있었고, 베를린 챔피언에 이어 독일 챔피언이 됐다.

그러나 나사르는 국제복싱협회(IBA)의 초청으로 유럽 챔피언십 대회에 참가하려고 보니 국제경기에서는 아직 규정이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을 파악했으며, 19살이 될 때부터 국제 규정 변경 운동을 벌였다.

나사르의 노력으로 2019년 IBA는 히잡 금지 규정을 폐지했으며, 현재 올림픽 권투경기를 관장하고 있는 ‘월드복싱’도 히잡과 전신커버 착용을 허용하고 있다.
나사르는 프로 데뷔전 전에 한 BBC 스포츠 인터뷰에서 “나 때문에 아마추어 권투에서 모든 여자 선수들은 히잡을 쓰고 경기할 수 있고 자신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게 됐다”며 “이것이 나의 가장 자랑스러운 승리”라고 말했다. 연합뉴스@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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