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의 은박지·백남준의 한지…가위바위보로 본 종이의 변주
세대·장르 넘어 27명 작가 86점 전시…갤러리현대 기획전
입력 : 2025. 11. 26(수)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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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 바위, 보: 종이의 변주’ 전시 전경[갤러리 현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연합뉴스
미술가에게 종이는 빠질 수 없는 존재이자 예술의 근원이다.

종이는 작가가 떠올린 아이디어를 간단한 메모와 스케치로 붙잡아 준다. 점과 선, 색을 담아 작품으로 구현하며, 입체 작품의 재료로도 활용된다.

서울 종로구 사간동 갤러리 현대에서 열리고 있는 기획 전시 ‘가위, 바위, 보: 종이의 변주’(Rock, Paper, Scissors: Transformation of Paper)는 종이라는 매체의 물질적·개념적·조형적 가능성을 조명한다.

김환기, 김창열, 박서보 등 1세대 한국 추상회화의 거장들부터 이강승, 김성윤, 김 크리스틴 선 등 독창적인 작업을 선보이는 젊은 세대 작가들까지 27명의 작가가 종이를 매개로 선보인 작품 86점을 만날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 ‘가위’는 해체와 재구성의 실험을 상징한다.

1세대 설치미술가 이승택은 종이로 바람을 형상화했다. 그의 대표 연작 ‘바람’(종이나무)은 종이를 찢어 나무에 묶은 뒤 펄럭이게 해 보이지 않는 바람의 움직임을 시각화한 작품이다.

한국 단색화의 아버지 박서보의 연작 묘법은 물감을 흡수하고 머금는 종이의 성질을 이용해 안료에 적신 한지를 긁거나 밀어내는 반복 작업으로 완성한다.

이 과정에서 종이는 무한히 분할되고 재조합되면서 평면에서 입체로 전환된다.

‘바위’는 작가가 아이디어를 움켜쥐고 응축된 사유와 집중의 행위를 상징한다.

바위의 대표 작품은 청각장애인 작가인 김 크리스틴 선의 ‘마인드 클래시’(Mind Clash)와 ‘마인드 스트롱’(Mind Strong)이다. 큰 종이 위에 목탄으로 검은색 덩어리를 그려 넣은 작품이다. 이 덩어리는 마음이다. ‘마인드 클래시’에서는 두 덩어리가 서로 닿아 두 마음의 충돌로 표현했다. 화면에는 목탄의 얼룩과 번짐이 남아 있어 소음을 시각화 한다.

‘보’는 열린 사유와 감정을 담아내는 바탕이다.

이중섭의 ‘가족에 둘러싸여 그림을 그리는 화가’는 ‘은지화’ 작품이다. 이중섭은 담배를 감싸고 있는 알루미늄 속지를 철필로 눌러 오목하게 만든 뒤 안료나 담뱃재를 바르고 문질러 윤곽선이 드러나게 하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다. 이중섭의 은박 종이는 전쟁과 피난 생활 속에서도 멈추지 않은 작가의 창작 의지를 담아낸다.

백남준의 ‘무제’(진영선 박사 추모곡)는 친형제처럼 지냈던 재미 물리학자 진영선 박사(1927-1966)의 작고를 애도하는 작품이다. 백남준은 6m에 달하는 한지 두루마리에 악보 형식의 추모 시를 그려 넣었다. 시이자 악보이며 드로잉이기도 하다.

이 밖에도 김환기의 뉴욕 시절 과슈(불투명 수채 물감) 작품과 김창열의 물방울, 윤중식의 풍경화, 장욱진과 서세옥의 수묵화 등의 다양한 종이 작업을 만날 수 있다.

김민수 갤러리 현대 팀장은 “종이만이 가질 수 있는 변화무쌍한 형식의 변화와 성질에 주목한 전시”라며 “한국 현대미술의 역사적 궤적 속에서 종이라는 매체가 사유의 통로이자 조형적 혁신의 매체로서 어떻게 작동해 왔는지 살필 수 있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12월 21일까지.

연합뉴스@yna.co.kr
 전시는 12월 21일까지.  연합뉴스@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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