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폐공장 철거 대신 재생 통해 ‘아트 블럭’ 조성 인기
[문화기획] 아시아예술특구 : 북경 798 대 가오슝 보얼
입력 : 2025. 11. 13(목)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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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8예술특구 골목
벽화가 돋보이는 798예술특구
예술특구는 예술과 특구가 결합한 말이다. 말의 결합은 쉽다. 가져다 부치면 되니까 그렇다. 그러나 정치나 행정의 셈법으로 접근하면 쉽지 않다. 만약 거대한 공장이 있는데 현재는 어떤 쓰임새도 없이 멎었다는 가정을 전제로 접근해본다.

이 공장들이 해당 산업의 퇴조로 현재 가동이 멈췄다면 그것이 폐공장이다. 폐공장이라면 그동안 사용했던 건축물이 있을 것이다. 보통은 창고형 형태 건축물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이런 건축물에 대해 어떻게 할지 방향성을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에는 여러 갈래의 해법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 폐공장을 철거해 재개발하자는 쪽과 철거하지 말고 도심재생을 통해 새로 쓰임새를 찾아보자는 쪽으로 나뉠 공산이 크다. 전자는 부지개발과 새로운 건축물 시공 전후로 막대한 비용이 투입되고 그로 인한 이익을 기대할 수 있겠다. 하지만 재생은 관리비나 리모델링 비용이 한동안 지속적으로 투입돼야 해서 이것 역시 쉬운 선택이 아니다.

다만 문화도시를 표방하고 있는 지자체는 한번 도전해볼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토목공학적 접근으로는 문화도시의 결을 가져갈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그 도시의 근현대 역사가 스며있는 곳이라면 재생을 통한 현대적 쓰임을 찾아보는 것이 도심경쟁력에 도움이 될 공산이 크다. 문화도시를 포함해 관광도시로 기능을 기대한다면 그 도시의 산업역사가 고스란히 묻어있는 곳이어서 철거 대신 보존 쪽 선택이 유리하다 할 수 있다.

아시아예술특구로 중국 북경 798과 대만 가오슝 보얼이 대표적으로 꼽히고 있는 가운데 예술 블럭화를 통해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사진은 북경 798예술특구 전경.
798예술특구
건물 내부에 있는 벽화
대표적인 곳들이 옛날 공장부지들이다. 이들 공간을 도심재생을 통해 예술특구로 지정해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은 곳들이다. 중요한 점은 이들 공간이 예술특구로 지정돼 예술집적단지로 재탄생했다는 점이다. 이들 예술특구 역시 철거를 못해서 안한 것은 아닐 것이다. 건물을 철거하고 아파트 등 대단위 거주공간으로 만들 수 있었음에도 보존, 재생을 통해 새로운 문화명소로 만들어냈다는 면에서 반면 교사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아시아권에서 예술특구로 거론되는 대표적인 공간은 중국 북경의 798과 대만 가오슝의 보얼이다. 공교롭게도 중화권들이다. 어떻게 이들 두 도시는 예술특구를 확보할 수 있었을까 오랜 동안 궁금증을 안고 살아왔다.

798과 보얼은 출발 환경이 엄연히 다르다. 798은 사회주의 중국의 무기공장들이 집결해 있던 곳이다. 점차 그런 산업들이 북경 밖으로 옮겨가거나 문을 닫으면서 버려지고 방치되면서 그 사용을 놓고 다양한 의견들이 개진됐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국 정부와 북경 당국은 그곳에 예술을 집결시키자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집중 육성해 오늘날 798이 된 것이다.

이에 반해 보얼은 한때 세계 3대 컨테이너 미항으로 불리던 가오슝의 최대 산업단지였다. 그러다 컨테이너 산업이 침체로 기울자 빈 공간들이 늘어나게 되면서 추후 방향성을 잡은 것 같다. 보얼은 바다를 끼고 있어 예술특구지만 관광상품으로서의 기능에 완벽하게 부합했다. 여기다 컨테이너를 실어나르던 철로까지 재활용을 선택했다. 그 철로를 달리는 산업용 철도가 트램으로 전환되면서 또 하나의 도시 명물이 됐다.

북경은 2000만명이 넘는 거대 도시이고, 가오슝은 270만명이 넘는 대도시다. 그런데도 재개발 대신 보존을 통해 유무형의 자산을 지키는 방향으로 폐공장의 기능을 되살렸다. 가오슝은 올들어 2월과 10월 두 차례 방문했다. 2월이나, 10월이나 변한 것은 없었다.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앞전 방문 때는 무슨 축제인지는 모르나 축제가 열리고 있어서 엄청나게 많은 인파가 넘쳐나고 있는 광경을 목도했다.

보얼예술특구 전경
보얼예술특구 내 창고 건물
다행히도 이 두곳 다 철거하지 않는 대신 리모델링을 통한 재사용을 선택했다. 여기에는 갤러리 및 미술관 외에 서점, 전문상품숍, 식당가, 아트숍 등 다양한 공간으로 분화시켜 방문자들이 예술 소통 외에 다른 욕구를 충분히 충족할 수 있도록 꾸몄다.

이 두곳 다 현재 입소문이 나 명성이 자자하다. 이곳을 보고 즐기기 위해 방문하는 사람들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방문객들 역시 내외국 가릴 것 없다. 전통적인 공간이 많은 사람들의 레트로 감성을 자극했을 뿐만 아니라 옛것과 모던한 것이 만나 조화를 이루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샀다고 밖에 할 수 없다.

만약 이곳을 철거해 대단위 주거단지로 만들었다면 그 도시의 미래를 굉장히 암울하게 만들었을 것임은 자명하다. 이 두곳은 아시아권에서 ‘명품예술공간’으로 칭송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지난 5월 찾았던 798예술특구는 조금 아쉬움을 주는 장면들이 목격됐다. 현지에서 활동하는 한 작가는 현재 798이 상업적으로 가기 때문에 월세가 오르다보니 작가들이 버티지 못하고 다른 지역으로 빠져 나가고 있는 상황이 빚어지고 있다고 귀뜸했다. 그는 예전의 798이 나았다는 전언도 빠뜨리지 않았다. 예전에는 예술이 분명 방점이 찍혔지만 지금은 예술이 상업으로 변질되는 단계에 놓여 있다는 진단이다. 각종 공간이 엄청 비싸졌고, 갤러리보다는 건축이나 디자인 등의 회사가 입주하고 있다고 알려왔다. 798을 부동산 공기업인 칠성그룹이 관할하면서 월세가 많이 들어온다는 것은 돈이 많이 들어오는 것을 말하는 것 아니겠냐고 했다. 798이 점차 균열을 내고 있는 신호음으로 포착됐다.

그래도 명품은 명품이라는 것이 현지를 방문한 이 지역 대학생들의 반응에서 알 수 있었다. 때마침 798 예술특구 내 작가화랑에서 정성준(전남대 미술학과 교수)·오영화 부부 작가 전시회(9.27∼10.29)도 개막을 앞두고 있던 시점이었다.

전남대 미술학과 재학 중이라고 밝힌 A씨는 “확실히 다르다. 스케일부터 남다르다. 갤러리들이 연이어 있고, 예술친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미술전문시설답게 천정이 높게 설계되는 등 공간부터 다른 것이 눈에 띈다. 기차도 그대로 살렸다. 원래 있던 것을 새롭게 했다. 기존에 있던 것을 살린 개념”이라고 말했다.

이어 인터뷰에 응한 B씨는 “갤러리와 상업공간, 소통공간이 어우러진다. 예술을 친근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공간이 대개 좋아 보인다. 건물에는 배관 등이 그대로 노출되게 했으며, 옛 주차장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고 말했고. C씨는 “미술에 대한 국가의 태도가 다르다. 365일 미술행사가 펼쳐지는 것 같다”고 밝혔다.

<@7><@8><@9>이에 반해 보얼은 원형 건물을 보존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 평가가 뒤따르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팝업스토어 중심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다양한 전시가 열리는데 이어 무대에서 다양한 공연물이 지금보다 더 많이 구현될 때 진정한 예술특구로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광주방직공장은 광주에서 가장 예술특구에 근접했던 공간이다. 하지만 광주근현대 산업유산은 철거라는 철퇴를 피하지 못한 채 비운을 맞았다. 예술특구를 지지했던 사람들 입장에서는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시아 예술특구를 보면서 이 두 도시가 아시아문화도시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에서 묘한 지점이 읽힌다. 이들 도시는 문화도시라는 표현을 쓰지 않으면서 폐공장을 현대적 감성을 불어넣어 예술특구로 조성했다. 예술특구를 거느리고도 정작 문화도시로 내놓고 홍보하지는 않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변변한 예술특구 하나 없으면서 무엇을 근거로 문화도시를 거론하는지 이해가 조금 되지는 않는다. 문화가 빠진 문화도시가 가당키나 하는 일일까. 문화도시에 예술특구가 하나 정도는 있어서 나쁠 것은 없지 않을까 싶다.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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