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시민군 민원부장’ 정해직 선생 영면
동료들 추모…앞서 시민 소년군 김향득·김재귀씨 별세
입력 : 2025. 10. 12(일)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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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초등학교 교사로 시민군 ‘민원부장’을 맡았던 정해직 선생이 영면에 들었다.
12일 광주전남민주화운동동지회 등에 따르면 지난 11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故 정해직 선생 민주장 영결식’이 열렸다.
영결식은 애국의례, 인사말, 약력보고, 추모사, 유가족 인사말,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헌화 순으로 진행됐다.
이날 영결식에는 고인을 추모하는 유족, 오월단체 관계자를 비롯해 민주화 운동을 함께했던 동지 등이 참석해 고인을 추모했다.
추모사에 나선 채영선 5·18광주민중항쟁 최후의 시민군동지회 부회장은 “우리는 지금 올곧음 그 자체로 평생을 살아온 참교사 정해직 동지와 헤어지고 있다”며 “불의의 세상과는 타협이 없이 항쟁지도부의 일원으로서 도덕적 책임을 끝까지 지켜온 사람이었다”고 전했다.
이어 “남아 있는 과제 또한 살아있는 후배들의 몫이니 육신의 고통이 없는 저 세상에서 편한 마음으로 영면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1951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난 정해직 선생은 1979년 보성 노동초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던 중, 1980년 5월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
정 선생은 시민군 지도부에서 민원부장 겸 기획위원으로 활동했다. 항쟁 마지막 날인 5월27일 전남도청을 끝까지 사수하다가 계엄군에게 체포된 후 고문을 당했다. 이후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항소심에서 징역 5년으로 감형됐으나 10개월 간 수감된 후 가석방됐다.
그는 교사로 복직했지만 민주화 운동 참여를 이유로 다시 해직당했고, 1983년 특별채용으로 교단에 복귀, 이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활동과 교육민주화선언에 참여했다.
정해직 선생의 영면에 앞서 5·18민주화운동 시민군들이 잇따라 영면에 들었다.
지난 7일에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고등학생 시민군으로 참여했던 김향득 사진작가가 향년 62세로 별세했다.
김 작가는 1980년 5월 고등학생 신분으로 시민군에 참여해 마지막까지 전남도청을 지키다가 계엄군에게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이후 광주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뒤 본격적으로 카메라를 들고 5·18 현장과 사적지를 기록했다.
지난 5월에는 고등학생 신분으로 기동타격대원으로 활약했던 김재귀씨가 병마와 생계난 속에서 향년 61세로 쓸쓸히 눈을 감았다.
계엄군의 총탄에 희생된 이들의 모습을 보고 옛 전남도청으로 향해 자발적으로 5·18 기동타격대에 합류한 그는 내란 부화 수행 혐의로 장기 4년·단기 3년이라는 중형을 선고받았으며 형 집행정지로 출소했다.
이후 광주 학살의 책임자 처벌, 5·18 암매장지 발굴, 옛 전남도청 철거 반대, 5·18 역사왜곡처벌법 제정 등 다양한 활동에 앞장섰다.
12일 광주전남민주화운동동지회 등에 따르면 지난 11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故 정해직 선생 민주장 영결식’이 열렸다.
영결식은 애국의례, 인사말, 약력보고, 추모사, 유가족 인사말,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헌화 순으로 진행됐다.
이날 영결식에는 고인을 추모하는 유족, 오월단체 관계자를 비롯해 민주화 운동을 함께했던 동지 등이 참석해 고인을 추모했다.
추모사에 나선 채영선 5·18광주민중항쟁 최후의 시민군동지회 부회장은 “우리는 지금 올곧음 그 자체로 평생을 살아온 참교사 정해직 동지와 헤어지고 있다”며 “불의의 세상과는 타협이 없이 항쟁지도부의 일원으로서 도덕적 책임을 끝까지 지켜온 사람이었다”고 전했다.
이어 “남아 있는 과제 또한 살아있는 후배들의 몫이니 육신의 고통이 없는 저 세상에서 편한 마음으로 영면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1951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난 정해직 선생은 1979년 보성 노동초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던 중, 1980년 5월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
정 선생은 시민군 지도부에서 민원부장 겸 기획위원으로 활동했다. 항쟁 마지막 날인 5월27일 전남도청을 끝까지 사수하다가 계엄군에게 체포된 후 고문을 당했다. 이후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항소심에서 징역 5년으로 감형됐으나 10개월 간 수감된 후 가석방됐다.
그는 교사로 복직했지만 민주화 운동 참여를 이유로 다시 해직당했고, 1983년 특별채용으로 교단에 복귀, 이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활동과 교육민주화선언에 참여했다.
정해직 선생의 영면에 앞서 5·18민주화운동 시민군들이 잇따라 영면에 들었다.
지난 7일에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고등학생 시민군으로 참여했던 김향득 사진작가가 향년 62세로 별세했다.
김 작가는 1980년 5월 고등학생 신분으로 시민군에 참여해 마지막까지 전남도청을 지키다가 계엄군에게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이후 광주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뒤 본격적으로 카메라를 들고 5·18 현장과 사적지를 기록했다.
지난 5월에는 고등학생 신분으로 기동타격대원으로 활약했던 김재귀씨가 병마와 생계난 속에서 향년 61세로 쓸쓸히 눈을 감았다.
계엄군의 총탄에 희생된 이들의 모습을 보고 옛 전남도청으로 향해 자발적으로 5·18 기동타격대에 합류한 그는 내란 부화 수행 혐의로 장기 4년·단기 3년이라는 중형을 선고받았으며 형 집행정지로 출소했다.
이후 광주 학살의 책임자 처벌, 5·18 암매장지 발굴, 옛 전남도청 철거 반대, 5·18 역사왜곡처벌법 제정 등 다양한 활동에 앞장섰다.
윤용성 기자 yo1404@gwangna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