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해남, 마한제국의 꿈을 다시 이어가다
박성재 전남도의원
입력 : 2025. 09. 23(화)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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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재 전남도의원
해남은 한반도의 끝이 아니라 역사의 시작이다. 고대 마한 사회에서 해남은 영산강 유역과 남해안을 잇는 교통·문화의 거점이었다. 마한이라는 소국 연맹체가 이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는 기록이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고, 실제로 발굴된 수많은 유적과 유물들은 해남이 마한 문화권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는지 잘 보여준다. 그러나 마한의 역사는 기록의 부족과 긴 세월 속에 ‘잊힌 역사’로 남아왔다. 이제 해남이 간직한 소중한 역사적 가치를 복원하고, 우리의 지역 정체성을 되찾아 미래로 이어갈 때가 왔다.

마한은 기원전 3세기경부터 4세기까지 전남과 충청 일대에 존재했던 연맹체였다. 낙랑, 왜, 중국과 활발하게 교류하며 독특한 문화를 꽃피웠으나, 이후 백제의 성립과 세력 확장으로 역사 속에서 점차 사라져갔다. 우리는 흔히 삼국사 중심으로 역사를 배우지만, 그 이전에 한반도 남부를 이끌었던 마한의 존재를 놓쳐서는 안 된다. 특히 해남은 바다를 통해 해상 교통과 교류가 이루어지고, 정치·행정의 요충지로서 기능했던 곳으로 주목할 만하다.

송지면 군곡리 패총은 당시 마한인이 해양 자원을 활용하며 생활했던 흔적을 보여준다. 삼산면 용두리 고분에서는 고대 교역 관계를 짐작하게 하는 유물이 발견되었고, 현산면 일평리 일대는 ‘죽금성’ 또는 ‘古해남성’으로 불리며 행정 중심지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2019년과 2021년 조사된 해남군 현산면 읍호리 고분군은 약 140만㎡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서 110여 기 무덤군이 확인되었다. 이는 호남 최대 규모의 마한·백제 고분군으로 꼽히는 이 유적은 해남이 오랫동안 마한 사회의 핵심 거점이었음을 확연히 보여준다.

물론 이런 흔적들만으로 해남을 마한의 수도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전통적으로 마한의 수도로는 충남 천안·아산 일대의 목지국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마한은 여러 소국이 모여 만든 연맹체였기 때문에 오늘날의 국가처럼 단일 수도 개념을 적용하기 어렵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해남이 수도 여부와 관계없이 정치, 문화, 해양 교류의 중심지였다는 사실이다.

학계에서도 해남을 포함한 영산강 유역 마한 사회를 바라보는 다양한 논의가 이어져 왔다. 과거에는 일본서기 등에 등장하는 ‘침미다례’라는 명칭이 주로 언급되었지만, 이는 왜곡 가능성이 크고 일본식 훈독에서 비롯되었다는 비판이 많다. 최근 연구에서는 특정 명칭보다는 영산강 유역 마한문화권, 옹관고분사회, 후마한과 같은 포괄적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는 시각이 힘을 얻고 있다. 이는 곧 해남을 포함한 영산강 유역이 마한사의 중심지였음을 학문적으로도 확인해주는 흐름이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해남이 마한 역사에서 차지한 위상을 제대로 복원하고 조명하는 일이다. 수도 여부를 떠나 해남은 고대 남부 해양문화의 중심이었다. 이 역사를 다시 살려내는 일은 단순히 과거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학문적으로 검증된 역사 위에 문화와 관광, 교육과 산업을 연계하여 지역의 새로운 발전 동력으로 삼는 것이다.

역사는 과거에 머무는 기록이 아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의 자긍심이자 내일을 준비하는 자산이다. 해남의 마한 역사 복원은 아이들에게는 뿌리를 가르치고, 도민에게는 정체성을 심어주며, 학계·행정·주민이 함께 만들어가는 지역 발전 전략이 될 수 있다. 학계는 정밀한 연구로 올바른 인식을 제공하고, 행정은 제도와 예산을 뒷받침해야 한다. 주민들은 축제와 문화 활동으로 역사를 생활 속에서 되살려야 한다. 역사 복원은 곧 지역 공동체의 활력을 불어넣는 일이기도 하다.

더 이상 해남은 남도의 끝이 아니다. 해남은 대한민국 역사와 문화의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과거와 미래를 잇는 다리가 될 마한의 역사를 되살려, 우리 지역의 정체성을 확고히 해야 한다. 그리고 그 길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도민과 함께 반드시 걸어가야 할 실천의 길이다. 그 길을 꾸준히 걸어간다면, 해남은 마한제국의 꿈을 이어가는 새로운 시작의 역사를 써 내려가게 될 것이다.
광남일보@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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