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가까워지는 ‘전남의 보·물·섬’] <4> 영광 안마도
바람·갯바위·파도를 품은 ‘황해의 해금강’
파도가 만들어낸 작품들…바다 위 풍경화 완성
문화·신앙·풍력 등 공존…‘가고 싶은 섬’ 조성
파도가 만들어낸 작품들…바다 위 풍경화 완성
문화·신앙·풍력 등 공존…‘가고 싶은 섬’ 조성
입력 : 2025. 09. 22(월)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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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코바위

방목 소떼 모습

써쿠리바위 일몰

안마도 둘레길

안마도와 이어진 죽도

영광 안마도 영해기점

영광 안마도 전경
△ 서해 최북단…말안장을 닮은 섬
전남 영광군 낙월면의 서쪽 끝자락, 칠산바다를 마주한 곳에 안마도(鞍馬島)가 있다. ‘말안장처럼 생겼다’고 해 붙은 이름처럼 완만한 능선이 이어지고, 죽도·횡도·오도·석만도 등이 흩어져 안마군도를 이룬다. 행정적으로는 월촌리·신기리·영외리 등 세 마을이 있으며 주민 대다수는 월촌리와 신기리에 거주한다.
섬의 면적은 5.83㎢, 인구는 약 180명으로 낙월면 전체의 27%를 차지한다. 영광 계마항에서 여객선 ‘섬사랑호’를 타고 약 2시간 정도면 닿을 수 있다. 하루 1~2회 운항하는 뱃길은 물때와 날씨에 따라 달라져 안마도를 찾는 이들에게 ‘섬에 간다’는 설렘과 긴장감을 동시에 안겨준다
△칠산바다 품은 다채로운 ‘생업의 섬’
안마도는 예로부터 조기와 젓새우로 유명한 칠산바다의 곁에서 살아왔다. 하지만 인근 낙월도나 송이도와 달리 넓은 논과 밭을 가진 덕분에 농업의 비중이 컸다. 1960년대 전갱이 파시와 1980년대 국가어항 개발 이후에는 꽃게·민어·주꾸미 등 연안어업이 활기를 띠었다. 현재도 20여척의 어선이 조업에 나서고, 바지락·굴·톳·미역을 채취하며 섬살이를 이어간다.
안마도는 조선 태종실록(1417년)에 “안마도의 양마를 골라 오라”는 기록이 전할 만큼 예로부터 목축지로 이름을 알렸다. 오늘날에는 소 방목으로 이어졌다. 1970년대부터 주민들이 본격적으로 소를 키우기 시작해 한때는 200두가 넘는 규모를 자랑했으며, ‘소 해수욕장’ 풍경이 방송에 소개되기도 했다. 현재는 사육 규모가 많이 줄었지만 일부 가구에서는 여전히 축산을 이어가고 있다.
또 안마도의 특산물로는 지네주가 있다. 10여년 전부터 지네를 활용한 전통주가 알려지며 독특한 섬 이미지를 더했다. 주민들은 지네주 외에도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다양한 농수산물 가공품 개발을 통해 새로운 소득원을 모색하고 있다.
△자연이 빚은 절경 간직
안마도의 가장 큰 자산은 단연 자연경관이다. 말코바위·흔들바위·써쿠리바위·용바위 등 기암괴석과 해식동굴이 즐비해 ‘서해의 해금강’으로 불린다. 특히 횡도는 대한민국 23개 영해기점 도서 중 하나로, 국가 주권의 상징이다. 이곳에 세워진 첨성대 모양의 표식물은 국경 섬의 의미를 일깨운다
섬 중앙의 논습지는 현재 갈대와 수생식물이 자라는 생태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한때 생업의 중심이던 이곳은 이제 철새가 머무는 습지로 주목받으며, 전문가들은 향후 보전과 경관 자원화 방안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안마도의 산길을 오르면 연하봉·성산봉 등이 병풍처럼 둘러서고, 해안길을 따라 펼쳐지는 글태기 해수욕장의 고요한 바다와 모래사장은 방문객을 매료시킨다. 일출과 낙조, 바람과 파도가 빚는 풍경은 ‘시간이 머무는 섬’이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사슴과 공존하는 섬
안마도를 특별하게 만드는 존재가 또 하나 있다. 바로 야생 사슴이다. 안마도와 제방으로 이어진 죽도에서 풀려난 사슴들이 번식해 현재 200여마리가 서식하고 있다. 이 사슴들은 섬의 자연경관과 어우러져 독특한 매력을 더하지만, 개체수가 지나치게 많아지면서 섬 생태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 주민들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사슴 개체 수를 적절히 조절하고 관광 자원으로 활용할 방안을 모색한다면, 안마도는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는 지속 가능한 섬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문화와 신앙의 흔적
안마도에는 예로부터 마을을 지켜온 당제(당산제)가 있다. 섣달그믐부터 초닷새까지 이어지는 당제는 큰당과 아들당, 신씨할머니당 등 여섯 곳에서 차례로 열린다. 풍물패가 동원되는 굿판과 ‘신대’ 행차는 마을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전통 의례다.
‘신대’는 마을의 수호신에게 제물을 바치고 마을의 평안과 안녕을 기원하는 의식이다. 주민들은 신대 행차를 통해 수호신에게 경의를 표하고, 마을의 풍요와 안전을 기원하며, 공동체의 화합을 다진다.
삼국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한 흔적이 남아 있고, 고려·조선을 거쳐 다양한 성씨가 입도해 마을을 일궜다. 주민들의 삶과 신앙은 지금도 섬 곳곳에 살아 숨 쉬며, 안마도의 정체성을 이룬다.
△‘가고 싶은 섬’ 새로운 도전
안마도는 지난 2020년 전남도의 ‘가고 싶은 섬 가꾸기 사업’ 대상지로 선정돼 5년간 50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됐다. 마이잔등 둘레길과 전망대 조성, 월촌·신기마을 쌈지공원 조성 등 관광 인프라가 확충됐다. 또 안마도 관광을 위한 거점 기능을 수행할 안마웰컴센터가 조성중이며, 추후에는 주민 협동조합이 운영할 예정이다.
주민 역량 강화를 위해 주민행복대학을 통해 선진지 견학, 홍보 마케팅 지원 등이 추진됐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노력이야말로 섬 관광의 지속성을 담보하는 ‘주민 주도형 모델’이라고 평가한다.
△해상풍력과 에너지 혁명
최근 안마도는 해상풍력 사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지역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전남도는 지역의 해상풍력 잠재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2050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안마도도 그 일환으로 해상풍력 발전소 개발이 예정돼 있다.
안마도의 해상풍력 단지는 청정 에너지 생산과 지속 가능한 발전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에너지 자립을 이루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풍력 발전은 안마도와 같은 해상 지역에서 바람이 풍부하고 지속적인 특성 덕분에 효율적인 전력 생산을 가능하게 한다.
이와 함께 해양환경 보호와 어업활동 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환경영향평가가 진행 중이다. 해상풍력은 지역 주민들에게 새로운 일자리와 경제적 기회를 제공하며, 청정 에너지로서 지역의 지속 가능한 발전에 기여할 것이다.
안마도의 해상풍력 사업은 지역 주민들의 생활 수준을 높이고, 탄소 배출을 줄이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미래를 향한 발걸음
안마도는 바다와 숲, 사슴과 사람이 공존하는 서해의 작은 우주다. 국경과 맞닿은 지리적 특수성, 칠산바다의 역사, 당제의 전통, 주민 공동체의 삶이 어우러진다. 섬의 고립은 불편함이 아니라, 섬만의 고유한 시간을 지켜낸 힘이었다.
앞으로 안마도가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이 작은 섬은 지속 가능한 삶의 모델이자 서해의 미래를 보여주는 창이 될 것이다.
박영채 전남도 해양수산국장은 “외국에서나 볼 법한 푸른 초원에서 사슴과 소가 풀을 뜯는 풍경을 안마도에서는 쉽게 만날 수 있다”며 “시원한 바다와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절경을 감상하고, 제주 오름을 연상케 하는 해안길을 걸어보길 권한다”고 말했다.
박정렬 기자 holbul@gwangna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