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는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심리를 지켜보면서 조만간 닥칠 조기 대선에서 보다 유리한 구도를 선점하기 위해 연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물밑에서는 조기 대통령선거를 대비하는 대선주자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이미 대선 출마의 뜻을 밝힌 주자도 있고, 일부는 즉각 가동이 가능한 캠프 진영을 구축했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탄핵이 인용되면 곧바로 대선이 60일 안에 치러지기 때문이다.

만일 내일이 대통령선거일이라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가장 당선이 유력해 보인다. 이 대표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 대표 외에 범 야권 후보로는 신(新) 3김으로 불리는 김동연 경기지사, 김경수 전 경남지사,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있다.

여권에서는 입지자는 많으나 이 대표에 맞설 후보가 딱히 보이지 않는다.

김문수 노동부 장관, 홍준표 대구시장,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오세훈 서울시장, 유승민 전 의원 등이 거론되지만 아직 이 대표처럼 지지율이 두드러지는 주자는 없다.

이 밖에 원내 야당 중 유일한 보수 계열 정당인 개혁신당의 이준석 의원이 출마 의사를 밝혔고, 새미래민주당 이낙연 전 국무총리도 거론된다.



◇여권 주자 춘추전국 양상…김문수 선두 나서

탄핵 정국에서 차기 유력 대선주자로 분류되던 한동훈 대표가 대표직을 내려놓은 이후 춘추전국 백가쟁명 양상이다.

유력 후보가 없다 보니 전통 보수층 지지를 받으며 정치 경력을 쌓아 온 홍준표 대구시장, 오세훈 서울시장, 유승민 전 의원, 안철수 의원,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 나경원 의원 등이 한 전 대표와 함께 거론되고 있다. 여기에 최근 여론조사에서 두각을 드러낸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과 보수 계열 정당인 개혁신당의 이준석 의원이 눈에 띈다.

KPI뉴스가 리서치뷰에 의뢰해 지난 19일과 20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범보수 대선주자 적합도에서 김 장관은 23.0%의 지지를 받아 1위에 올랐다. (무선 ARS 방식, 표본오차 95% 신뢰 수준에 ±3.1%p,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유 전 의원은 14.5%였다. 두 사람 격차는 8.5%p로 오차범위 밖이다. 전주 조사와 비교해 유 전 의원은 1.6%p 올랐다.

홍 시장은 11.7%, 한 전 대표는 9.0%, 안 의원은 5.3%, 오 시장은 5.2%로 집계됐다. 이 의원은 4.2%, 원 전 장관은 2.2%였다.

보수 결집과 함께 여권 차기 대선주자로 급부상한 김 장관의 인기가 일시적 현상일지, 아니면 계속될지 관심이 쏠린다.

김 장관은 지난 12월 11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국민 앞에 사죄하라”는 야당 의원 요구에 국무위원 가운데 유일하게 응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 시도를 두고는 “기본적 예우는 갖춰야 하는데 너무 나가는 것 아니냐, 탄핵이 우리 국민에게 무슨 유익함이 있겠느냐”며 윤 대통령을 감쌌다.

하지만 ‘강성보수층이 선택한 후보’라는 김 장관의 지지도가 얼마나 계속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특히 여권이 정권을 연장하려면 탄핵 국면에서 멀어진 중도층을 껴안아야 하지만 지난 19일 발생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의 서부지법 소요 사태는 악재가 될 공산이 크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직후 자유한국당을 이끌던 황교안 대표는 ‘태극기 부대’의 선봉장 역할을 자처했지만 2020년 총선에서 참패했고, 결국 취임 1년 2개월 만에 당 대표직을 사퇴했다.

자꾸만 우클릭하는 경향은 당장은 움츠려 든 보수를 일으켜 세우는 ‘불쏘시개’가 될지 모르지만 조기 대선 국면으로 전환되면 독이 될 수 있다.

국민의힘 김상욱 의원은 22일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당장 지지율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거짓말도 괜찮다’, ‘선동도 괜찮다’, ‘강성지지층과 극우 다 안아야 된다’고 한다면 장기적으로 우리 보수의 가치가 무너지고, 당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중도층이 이탈하고, 강성지지층만 남게 되는 결과가 돼서 당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유 전 의원은 지난 22일 MBN 유튜브 ‘나는 정치인이다’에 출연해 조기 대선 출마 가능성을 시사했다. 유 전 의원은 자신을 “늘 대선에 도전할 구멍을 갖고 있었던 사람이고 버리지 않았던 사람”이라면서도 “출마 선언은 탄핵 심판이 되는 걸 봐야 한다”고 밝혔다.

홍 시장은 지난 22일 “나는 차기 대선후보 자격으로 미국 대통령 취임 준비위원회 초청을 받아 8년 만에 워싱턴을 방문했다”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오 시장은 지난 22일 시청에서 열린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조기 대선 출마 여부에 대해 “아직 명확히 답변하긴 이른 시점”이라면서 “깊은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 의원은 대선 출마 가능성을 묻자 “만약 탄핵이 인용되고 선거에 나간다면 ‘확장성에선 내가 제일 경쟁력이 있다’고 설득하는 방법밖에 없지 않나”라고 최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한 전 대표 지지자들은 한 전 대표 복귀를 희망하는 현수막을 전국 곳곳에 내거는 등 재등판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고, 친한(친한동훈)계 의원 16명이 ‘시작2’라는 텔레그램 단체 대화방을 만들고 소통에 나섰다.

지난 20일 국회가 파견한 특별 방문단의 일원으로 일본에 간 이준석 의원은 “국제사회에 내놓아도 국민이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젊고 유능한 정치 지도자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이번 일본 방문 일정을 성실히 수행하고, 대한민국의 이익과 미래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이재명 줄곧 1위…신 3김도 보폭 넓히는 중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난 2022년 대선 이후 줄곧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윤 대통령과의 접전을 펼쳐 역대 최소 득표 차로 낙선했지만 꾸준하게 지지율을 유지해와 이번 대선에서 가장 당선이 유력한 후보로 꼽힌다.

지난해 22대 총선에서는 민주당의 압승을 앞장서 이끌었고, 절반을 훌쩍 넘는 175석으로 입법부를 장악해 ‘여의도 대통령’으로 불린다. 8월 전당대회에선 당 대표 연임까지 성공해 흔들림 없는 리더십을 구축했다.

‘먹사니즘(먹고 사는 문제를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태도)’을 정책 아젠다로 내걸었고, 인재풀을 구축해 수권정당의 면모를 구축하는 ‘집권플랜본부’를 출범시켜 차기 집권 플랜에 대비하고 있다.

12·3 비상계엄 사태 당시 자신의 SNS 라이브 방송을 통해 당 소속 국회의원들과 국민에게 국회로 모여달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담장을 넘어 국회에 들어와 순발력 있게 대처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아킬레스건은 ‘사법리스크’다. 공직선거법 위반, 위증교사, 대장동·백현동 특혜, 쌍방울 대북송금, 경기도 법인카드 사적유용 의혹과 관련한 총 5개의 재판을 받고 있다. 이 가운데 위증교사 1심에서는 무죄를 받았지만 선거법 위반 1심에서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또 ‘차기 대통령 후보 중 절대 찍고 싶지 않은 사람’ 응답률이 가장 높은 것도 부담이다.(여론조사공정이 데일리안 의뢰로 시행한 여론조사, 지난 6~7일 무선 100% RDD 방식 ARS,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아직 이 대표의 아성에는 못 미치지만 비명(비이재명)계 신(新) 3김도 보폭을 점차 넓히고 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 김경수 전 경남지사, 김부겸 전 국무총리다.

김동연 지사는 지난 22일 스위스 다보스포럼에 참석해 세계 미디어 리더들에게 한국 정치경제 상황을 브리핑했다. 다보스포럼을 주최하는 세계경제포럼이 ‘김동연 경기도지사와의 대화’라는 이름의 세션을 마련한 것이다.

김 지사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이후 한국 정세에 대해 “전직 부총리이자 기획재정부 장관으로서 이번 사태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나름대로 평가하고 올바른 해결책을 고민해 왔다”며 해법으로 △헌법재판소의 신속한 탄핵안 인용과 조기 대선 △여야정 합의를 거친 ‘경제 전권 대사’ 임명 △새 정부의 ‘완전한 새로운 경제 정책’을 제시했다. 대선 출마 여부에 대해선 “수레를 말 앞에 둘 순 없다”며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적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경제를 살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부겸 전 총리는 지난 22일 보도된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대선 출마 의지를 드러냈다. 김 전 총리는 “필요하다면 저에게 주어진 일을 마다 하지 않겠다”며 “총대를 메라면 멜 것이고, 누구를 도우라면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김 전 총리는 지난 20일 영화 ‘하얼빈’ 상영회에 참석해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 지지율이 고전하는 데 대해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 이후 민주당이 분명히 여유 있게 국정을 리드하지 못한 점에 대한 실망감이 있는 듯하다”며 “윤석열 정부처럼 막 서두르고, 국민들 생각을 안 하고 자기 고집대로 하는구나, 그런 실망감”이라고 분석했다.

김경수 전 지사는 유학차 독일에 머무르다 12·3 비상계엄 사태가 발생하자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귀국했다.

김 전 지사는 지난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계엄 실패 이후 내란 세력들이 보여준 행태는 차마 눈 뜨고 보기 어려울 지경”이라며 “우리는 저들과 다르게 가자. 달라야 이길 수 있다”고 밝혔다. 김 전 지사는 “극단적 증오와 타도,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일방주의, 독선과 오만, 우리는 그와 정반대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호남 출신 이낙연 전 국무총리는 지난 20일 “현직 대통령 구속이라는 초유의 사태는 우리에게 더 늦출 수 없는 심각한 과제를 안겨 줬다”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이 전 총리는 “위험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지 않고 대통령의 권력 오남용을 막으려면, 국가를 결딴내는 권력의 폭주와 파행이 없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은 뒤 “정치인을 엄격히 검증하고, 헌법상 권력구조와 선거법, 정당법을 고쳐야 한다. 정치 양극화의 폐해를 막을 안전장치로 다당제 도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 51대 49의 싸움 ‘진영 대결’ 구도

우리나라 대선은 역대로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의 후보가 1대 1 구도를 형성했다. 선거전문가들은 보수 진영이 다시 결집하고 있어 조만간 국민의힘 경선 결과가 나오면 역대 선거처럼 점차 진영 대결 구도를 형성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지난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후 치러진 대선에서는 그해 1월부터 지지율 1위로 올라온 민주당 문재인 상임고문이 그대로 추세를 유지하며 청와대에 입성했다. 당시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일시적으로 추월하기도 했지만 대세에 지장이 없었다.

이번에는 어떨까? 탄핵과 수사, 특검, 국정조사 등으로 숨이 가쁜 정치 일정이라서 예단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다.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인용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만 그렇다고 이재명 대표에게 마냥 유리하지만은 않아 보인다. 현직 대통령이 임기 중반에 헌정을 중단한 책임이 일방적으로 여당에게만 있다고 보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보수 진영은 아직 탄핵의 강을 넘지 못하고 이렇다 할 대선 후보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시간문제일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스스로 궤멸을 면하기 위해 이 대표 대항마를 찾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렇다고 해서 보수가 재건에 성공해 이번 조기 대선을 승리하는 데까지 이를 것이라고 확답하긴 어렵다. 비록 강력한 야권에 대응하기 위해 결집하고는 있기만 앞으로도 넘어야 할 산이 많아 보인다.

반대로 진보 진영, 특히 민주당으로선 의회 입법권력에 이어 대권까지 거머쥐는 ‘국가권력 쏠림’을 우려의 눈으로 바라보는 국민을 달래고 설득할 필요가 있다.

결국 이번 대선은 ‘내란 사태’에 대한 여권 책임론과 야권으로의 ‘권력 편중’ 우려를 어느 쪽이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