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아파트에 ‘가스’가 공급되지 않는다면
서금석 대한주택관리사협회 광주시회장
입력 : 2025. 01. 14(화) 16:09

서금석 대한주택관리사협회 광주시회장
고려시대 땔감 제도가 있었다. 전시과 제도가 그것이다. 관직에 복무하거나 직역을 부담하는 자들에게 그 지위에 따라 전지(田地)와 시지(柴地)를 분급했다. 바로 시지에서 한자 시(柴) 글자가 땔나무 시(柴)인 것을 보면 이곳이 땔감을 구할 수 있는 땅임을 알 수 있다. 국가에서 땔감을 구할 권리조차도 내려 줬다. 땔감이 삶이자 권리이자 권력이었다.
땔감과 관련된 광주 지명이 있다. 지금의 동구 산수동에서 계림동 로터리에 이르는 목재 판매 거리를 최근에 ‘나무전 거리’로 명명했다. 전통시대 나무꾼들이 무등산에서 땔감을 구해 나무전에 내놓고 판매를 하면서 나무 시장이 형성됐다. 1960년 이후 가정용 연료가 연탄으로 바뀌면서 나무 시장은 사라졌다.
우리의 전통 주택의 형태는 온돌이다. 온돌 구조는 독특한 아궁이를 만들어냈다. 서양의 벽난로와는 구조적으로도 생태적으로도 다르다. 아궁이는 음식을 만드는 화로였다. 또 이곳에서 구들장을 데워 겨울을 따뜻하게 보냈다. 음식 조리와 난방이 하나의 시설로 가능했다. 그 에너지원은 수천 년 동안 땔감이었다. 겨울철 부엌에 수북이 쌓아놓은 땔감을 봐야만 어른들은 겨울 걱정을 덜었다. 불과 1980년대 초반의 기억들이다. 시골 이곳저곳 어린 학생들은 땔감 마련을 위해 방과 후가 되면 산을 누비고 다녔다. 보이는 산마다 죄다 민둥산이었다.
대한민국은 아파트 공화국이라 할 만큼 아파트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이 많다. 광주는 특히 아파트 공급 비율이 70%를 넘는다. 열의 일곱 집 이상, 아파트에서 살아간다. 지금의 아파트는 전통의 온돌을 따랐다. 주거 공간으로서 아파트는 개개인의 삶의 편의성을 높였다는 점에서 평가를 받고 있다. 여기에 주목해 양과 질에서 아파트의 성장을 뒷받침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무엇이 이렇게 짧은 시기에 아파트를 늘릴 수 있는 동력이 되었을까? 단지 사람의 아파트 선호만으로 그 배경을 따질 수 있을까?
음식의 조리와 난방 그리고 온수를 위한 에너지원의 진화가 아파트 발전을 이끌어냈다. ‘땔감→석탄(연탄)→석유→가스’의 경로는 삶의 질을 변화시켰다. 역으로 지금의 고층아파트 시설에 가스 공급이 중단됐다고 가정해 보자. 그 자리에 연탄과 석유로 대체할 수 없다. 그렇다고 아파트에서 땔감을 사용할 수도 없다. 대체가 가능한 것은 전기뿐이지만 전기 생산량의 한계와 원자재 단가를 고려할 때, 비효율적이다. 전기업체는 민간으로 넘어가고 독점화되면서 일본처럼 전기요금의 빈익빈 부익부 격차를 벌릴 것이다. 전기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다. 시설교체를 통한 엄청난 경제적 부담이 따른다. 지금의 대한민국 아파트 난방과 온수 체계는 가스 공급 시스템을 갖췄다. 먹고 씻고 따뜻하게 보내면서 사람들은 편의를 누렸다.
러시아가 1968년부터 유럽에 제공했던 천연가스 공급은 2025년 1월 1일 완전히 중단됐다. 새해 벽두,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를 통과하는 파이프라인을 통한 가스 공급은 멈췄다. 이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 맺었던 계약 연장을 거부한 데 따른 것이다. 러-우 전쟁 초기부터 러-우-유럽 간의 파이프라인은 이미 중단된 상태였다. 현재 유일하게 운영 중인 동유럽 몇몇 국가에 가스가 공급됐던 파이프라인마저 폐쇄된 것이다.
유럽은 그동안 러시아의 가스 공급에 크게 의존해 왔다. 러-우 전쟁으로 대부분의 유럽연합(EU) 회원국은 노르웨이와 미국으로 수입선을 다변화해 대비해왔다. 가스 공급 활로 변경을 보면 전쟁의 이유가 따로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가 높았던 동유럽 일부 국가들은 이번에 직격탄을 맞았다. 이들 지역에서는 겨울철 난방과 온수가 중단돼 주민은 전통적인 에너지원인 땔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됐다고 전한다.
다시 삶의 질로 접근했을 때, 만약 ‘가스’가 공급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시민들은 당장 음식을 제대로 조리할 수 없으며, 겨울을 이겨내기 힘들어진다. 사람들은 고층아파트에서 점점 멀어지고, 아래로 내려와 산속을 뒤지며, 땔감을 찾아다닐 것이다. 사람들의 건강지수는 낮아지고, 땔감 찾느라 쓸데없는 곳에 노동력을 집중해 경제적 부가가치를 누리지 못할 것이다. 고충아파트는 흉물이 되고, 푸른 산은 다시 민둥산이 돼버릴 것이다. 폭우나 장마 때, 강물은 범람해 재난으로 이어질 것이다. 땔감 시대가 그랬기 때문이다.
민둥산이 지금의 푸른 산으로 바뀐 것은 가스 공급의 시절과 맞아 떨어진다. 가스 공급은 음식 조리와 난방을 위한 에너지원의 진화를 넘어서서 삶의 질을 바꿨고, 산천을 살렸다. 1970년부터 시작된 산림녹화 사업은 1980년대 들어 전국적으로 이뤄졌다. 한국의 아파트 조성 사업이 본격화된 것이 1980년대부터였다.
가스 공급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우리는 다시 땔감 시대로 돌아간다. 가스 공급에 대한 시민 의식과 이해가 요구된다.
땔감과 관련된 광주 지명이 있다. 지금의 동구 산수동에서 계림동 로터리에 이르는 목재 판매 거리를 최근에 ‘나무전 거리’로 명명했다. 전통시대 나무꾼들이 무등산에서 땔감을 구해 나무전에 내놓고 판매를 하면서 나무 시장이 형성됐다. 1960년 이후 가정용 연료가 연탄으로 바뀌면서 나무 시장은 사라졌다.
우리의 전통 주택의 형태는 온돌이다. 온돌 구조는 독특한 아궁이를 만들어냈다. 서양의 벽난로와는 구조적으로도 생태적으로도 다르다. 아궁이는 음식을 만드는 화로였다. 또 이곳에서 구들장을 데워 겨울을 따뜻하게 보냈다. 음식 조리와 난방이 하나의 시설로 가능했다. 그 에너지원은 수천 년 동안 땔감이었다. 겨울철 부엌에 수북이 쌓아놓은 땔감을 봐야만 어른들은 겨울 걱정을 덜었다. 불과 1980년대 초반의 기억들이다. 시골 이곳저곳 어린 학생들은 땔감 마련을 위해 방과 후가 되면 산을 누비고 다녔다. 보이는 산마다 죄다 민둥산이었다.
대한민국은 아파트 공화국이라 할 만큼 아파트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이 많다. 광주는 특히 아파트 공급 비율이 70%를 넘는다. 열의 일곱 집 이상, 아파트에서 살아간다. 지금의 아파트는 전통의 온돌을 따랐다. 주거 공간으로서 아파트는 개개인의 삶의 편의성을 높였다는 점에서 평가를 받고 있다. 여기에 주목해 양과 질에서 아파트의 성장을 뒷받침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무엇이 이렇게 짧은 시기에 아파트를 늘릴 수 있는 동력이 되었을까? 단지 사람의 아파트 선호만으로 그 배경을 따질 수 있을까?
음식의 조리와 난방 그리고 온수를 위한 에너지원의 진화가 아파트 발전을 이끌어냈다. ‘땔감→석탄(연탄)→석유→가스’의 경로는 삶의 질을 변화시켰다. 역으로 지금의 고층아파트 시설에 가스 공급이 중단됐다고 가정해 보자. 그 자리에 연탄과 석유로 대체할 수 없다. 그렇다고 아파트에서 땔감을 사용할 수도 없다. 대체가 가능한 것은 전기뿐이지만 전기 생산량의 한계와 원자재 단가를 고려할 때, 비효율적이다. 전기업체는 민간으로 넘어가고 독점화되면서 일본처럼 전기요금의 빈익빈 부익부 격차를 벌릴 것이다. 전기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다. 시설교체를 통한 엄청난 경제적 부담이 따른다. 지금의 대한민국 아파트 난방과 온수 체계는 가스 공급 시스템을 갖췄다. 먹고 씻고 따뜻하게 보내면서 사람들은 편의를 누렸다.
러시아가 1968년부터 유럽에 제공했던 천연가스 공급은 2025년 1월 1일 완전히 중단됐다. 새해 벽두,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를 통과하는 파이프라인을 통한 가스 공급은 멈췄다. 이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 맺었던 계약 연장을 거부한 데 따른 것이다. 러-우 전쟁 초기부터 러-우-유럽 간의 파이프라인은 이미 중단된 상태였다. 현재 유일하게 운영 중인 동유럽 몇몇 국가에 가스가 공급됐던 파이프라인마저 폐쇄된 것이다.
유럽은 그동안 러시아의 가스 공급에 크게 의존해 왔다. 러-우 전쟁으로 대부분의 유럽연합(EU) 회원국은 노르웨이와 미국으로 수입선을 다변화해 대비해왔다. 가스 공급 활로 변경을 보면 전쟁의 이유가 따로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가 높았던 동유럽 일부 국가들은 이번에 직격탄을 맞았다. 이들 지역에서는 겨울철 난방과 온수가 중단돼 주민은 전통적인 에너지원인 땔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됐다고 전한다.
다시 삶의 질로 접근했을 때, 만약 ‘가스’가 공급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시민들은 당장 음식을 제대로 조리할 수 없으며, 겨울을 이겨내기 힘들어진다. 사람들은 고층아파트에서 점점 멀어지고, 아래로 내려와 산속을 뒤지며, 땔감을 찾아다닐 것이다. 사람들의 건강지수는 낮아지고, 땔감 찾느라 쓸데없는 곳에 노동력을 집중해 경제적 부가가치를 누리지 못할 것이다. 고충아파트는 흉물이 되고, 푸른 산은 다시 민둥산이 돼버릴 것이다. 폭우나 장마 때, 강물은 범람해 재난으로 이어질 것이다. 땔감 시대가 그랬기 때문이다.
민둥산이 지금의 푸른 산으로 바뀐 것은 가스 공급의 시절과 맞아 떨어진다. 가스 공급은 음식 조리와 난방을 위한 에너지원의 진화를 넘어서서 삶의 질을 바꿨고, 산천을 살렸다. 1970년부터 시작된 산림녹화 사업은 1980년대 들어 전국적으로 이뤄졌다. 한국의 아파트 조성 사업이 본격화된 것이 1980년대부터였다.
가스 공급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우리는 다시 땔감 시대로 돌아간다. 가스 공급에 대한 시민 의식과 이해가 요구된다.
광남일보@gwangna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