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와는 별다른 인연이 없었다. 2023년 이전까지는 그에게 광주는 낯선 타지였고, 아는 것이라고는 5·18이 일어났다거나 비엔날레가 열린다는 것 정도가 아닐까 싶다.
정헌기 호랑가시나무창작소 대표와 대면해 그 일대 공간이 너무 마음에 들어 전시를 타진했고, 그것이 받아들여져 그는 지난해 1월부터 2개월여 동안 양림동에 머물며 레지던시 작가로 활동을 펼쳤다. 레지던시 작가로 안착하면서 설치미술전을 열 수 있었다.
주인공은 시각예술가 및 전시기획자로 활동 중이며, 백령도에서 평화의 참 의미를 새기는 대지미술인 ‘무뎌진 기억’ 등 다수의 대지미술과 설치미술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한희선 작가다.
그의 설치미술전은 지난해 3월 20일 개막해 31일까지 남구 양림동 소재 호랑가시나무창작소 아트폴리곤에서 ‘먼지가 되어 가는 중이었다’라는 타이틀로 성황리 열렸다. 출품작은 불교의 ‘반야심경’에 나오는 용어로 더러울 것도 없고, 깨끗할 것도 없다는 뜻을 나타내는 ‘불구부정’(不垢不淨) 시리즈 19점을 비롯해 근대 역사 거리인 양림동 일대와 과거의 선교사(언더우드) 사택 및 창고였던 전시 장소의 역사성과 고유성에 관심을 기울이며 작업한 ‘윤회’ 등 총 25점으로, 존재의 흔적을 통해 모든 존재가 서로 연결돼 있음을 탐구한 작업들을 선보여 호응을 얻은 바 있다.
그의 작품들은 지난한 시간에 대한 제의이자, 다가올 내일에 대한 다짐으로 풀이된다. 생의 존재 의미와 연결을 되새기게 하는, 버려진 머리카락은 물론이고 소소한 것들을 상기시켜 의미화하는 동시에 역사의 시간을 품은 양림동 및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장소들에서 건져 올린 빛 바랜 사물들을 통해 지난 시간의 잊힘을 상기시킨다는 평가다. 머리카락은 2014년부터 소재로 구상을 해와 올해 11년째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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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 남구 양림동 소재 호랑가시나무창작소 입주작가로 활동하면서 전시를 연 한희선 작가가 작품 ‘윤회’(輪廻, Samsara)를 살펴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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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 남구 양림동 소재 호랑가시나무창작소 입주작가로 활동하면서 전시를 연 한희선 작가가 작품을 바라보고 있다. |
지금 그는 광주에 없지만 광주에 머물 때 경험했던 광주의 스토리를 망라해 기억들을 오롯이 엮어 한권의 작품집으로 최근 펴내 광주미술계 안팎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가 펴낸 작품집은 ‘한희선 설치미술, 먼지가 되어가는 중이었다’라는 명칭으로 나왔으며, 168쪽 분량이다. 제작은 텀블벅 펀딩을 통해 성사됐다. ‘불구부정’(不垢不淨)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작품집은 광주와 광주의 아픈 근현대 역사를 조망하고 이해하면서 양림동 일대와 과거 선교사 사택 등 전시 장소의 역사성과 고유성에 관심을 기울이며, 직접 수행하고 탐색하는 작업 과정의 흔적이 고스란이 투영됐다.
이와함께 산책삼아 자주 오르내리던 창작소 뒷산인 양림산에서 수집한, 무용해 보이는 사물들에서 미학적 아름다움을 발견해 작가의 머리카락과 관계를 맺게 하는 등 모든 존재가 서로 연기돼 있으며, 생성소멸의 순환 안에 있음을 다양한 작품으로 제시했음을 보여준다.
이 작품집은 광주 호랑가시나무창작소에서의 일상과 호랑가시나무아트폴리곤에서의 전시를 글과 사진으로 기록했다고 이해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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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 남구 양림동 소재 호랑가시나무창작소 입주작가로 활동하면서 전시를 연 한희선 작가가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
문희영 예술공간 집 대표는 추천글을 통해 “그의 작품들은 소박하고 경건하게 생의 순간들을 되뇌는 과정을 복기하게 한다. 쉬이 먼지처럼 사라지지 않을 연약하고도 강인한 머리카락에 빗대어 삶의 의미를 되묻는 것이다. 생각으로만 완결되는 작품이 아닌, 몸과 마음, 시간과 공간이 모두 섞어진 결과물로서 작품”이라면서 “희미한 머리카락 한 올은 우리가 소멸의 존재가 아닌 다시 사는 존재임을 고요하게 읊조리게 한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제주 우도 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2024.10.16∼2025.10.15)로 머물며 활동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