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계엄군이 투입된 그날의 전남도청은 아비규환이었습니다. 두 번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입니다.”

1980년 당시 전남도청 지방과 행정계에 근무하던 박모씨(81)가 처참했던 당시의 상황을 증언했다.

박씨는 도청 내에서 숨진 소년이 품에 안고 있던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보관하다 기증한 인물이다. 책 주인은 ‘류동운’이라는 학생으로 추정될 뿐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본보 12월 18일 1면 참조>

신군부의 포고령으로 투입됐던 계엄군은 1980년 5월 27일 0시 1분에 상무충정작전을 진행, 오전 5시 10분 광주 동구 옛 전남도청에 주둔해 있던 시민군을 제압했다. 상무충정작전은 당시 도청에서 계엄군과 대치하고 있던 시민군을 소탕하는 작전이었다.

계엄군이 현장을 정리하고 철수하기 전에 끔찍했던 현장을 목격한 이가 있었다.

당시 시정·동향보고 업무를 맡고 있던 박씨는 상무충정작전 하루 전날인 26일 ‘계엄군이 대대적인 시민군 진압에 나선다’는 소식을 듣고 보통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도청 인근 여관에서 긴장으로 밤을 지새우다 잠이 든 박씨는 처음 듣는 집단 총성에 깜짝 놀랐다.

오전 6시께 총 소리가 잦아들자 그는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밖으로 나와 도청으로 향했다.

여관에서 도청까지의 거리는 약 50m. 지나는 사람 한 명 없이 적막감만 감돌았다.

도청 정문에 들어서자 끔찍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창문은 총탄에 의해 산산조각 났고, 사방은 혈흔이 낭자했다. 외벽에는 총탄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1층 복도를 따라 사무실로 향하던 박씨는 새마을과와 회계과 사이에 위치한 4m 폭 통로에 널브러진 7~8구의 주검을 보고 정신이 혼미해졌다.

이중 1구의 주검은 ‘역사란 무엇인가’ 책을 품에 안은 소년으로, 천장을 보고 가지런히 누워 있었다.

박씨는 계엄군이 책을 보면 태워버릴 것이라는 생각에 주검의 팔을 조심스레 풀고 자신의 옷 안에 숨겼다.

당시 주검은 사망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피부가 부드러웠고, 온기가 남은 상태였다고 박씨는 기억했다.

지하 구내식당 인근에서도 총탄에 희생된 시신 10여구를 봤다. 1층 회의실에서는 단상 위 태극기를 바라보며 두 눈을 뜬 채 숨져 있는 주검도 목격했다.

놀란 나머지 사무실로 발길을 옮기던 박씨는 인간의 모멸감을 느꼈다고 한다.

이후 얼룩무늬 군복을 입은 계엄군 대위와 병사 4~5명이 도청을 돌아다니며 복도에 놓인 주검을 발로 차고 ‘개×××’ 라는 등 욕설을 하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박씨는 겁에 질려 도청을 벗어났지만 이내 ‘전남도청 직원들은 정상 출근해 근무하라’는 방송이 나왔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찾은 도청은 총탄의 흔적은 남아 있었지만 복도 등 곳곳에 방치돼 있던 주검들은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불과 30분 사이에 모든 처리가 마무리된 것이다.

박씨는 그날의 모습을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는 “당시 도청 내부에 너무 많은 주검이 제대로 수습되지 않은 채 방치돼 있었다. 너무 끔찍했다”며 “내가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생각에 늘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소년의 책을 36년간 보관하다 지난 2016년 3월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 기증할 때 주인을 꼭 찾아달라고 부탁했는데 아직도 감감무소식이다”며 “1980년 5월이 있었기에 지금의 민주주의가 있다. 모두가 하늘에서 편히 지내길 바란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