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비앙카 본디 작 ‘별의 연못에서 점치다’

“참여 작가들의 면면을 보면 그동안 생태와 환경 등에 대해 꾸준하게 작업해온 작가들로, 부상하고 있는 예술가들이 포함됐습니다. 전시는 한편의 오페라와 영화처럼 만나게 될 거구요. 그렇기 때문에 주어진 전시 환경 속에서 지속가능한 공간과 미래를 사유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지난 3월 참여작가 발표 기자회견 때 올해 광주비엔날레에 대해 니콜라 부리오 예술감독이 던진 말이다. 생태와 환경의 중요성은 니콜라 부리오 예술감독의 발언이 아니더라도 날로 중요해지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예술을 통한 생태와 환경이 어떻게 투영돼 관람객들에게 울림을 전하는 등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 있을지 주목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더욱이 1995년 창설 이후 30년 동안 광주 간판 예술행사로 자리매김해왔기 때문에 ‘제15회 광주비엔날레’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전시방향과 참여작가에 대한 윤곽이 드러나면서 전시 구성에 대한 궁금증이 점차 고조되고 있다. ‘베니스비엔날레’의 경우 이미 고인이 된 작가들의 작품이 포함돼 진행되는 경우가 있지만 ‘제15회 광주비엔날레’ 전시는 모두 생존 작가들로 구성됐다는 점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이번 광주비엔날레는 ‘판소리, 모두의 울림’이라는 주제로 9월 7일부터 12월 1일까지 주전시동에서 86일 간 본전시가 진행되는 가운데 광주시립미술관과 남구 양림동 이강하미술관 등 30여개 문화시설에서 파빌리온 프로젝트(국가관)가 구현된다는 점 역시 주목된다.

올해 ‘광주비엔날레’는 환경과 생태 등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작업을 펼쳐온 30개국 73명(팀) 작가가 참여하는 것으로 정리됐다. 현재 전시 개막 100여일을 앞두고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가운데 시각과 소리가 어떻게 결합돼 예술작품으로 형상화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재미있는 현상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남성작가는 30명 선에서 멈춘 반면 나머지가 여성 작가여서 남성 작가를 압도했다는 점이다. 73명 작가 중 한국 청년작가가 11명에 달해 20% 정도에 육박하고 있다. 전시는 하나의 영화처럼 시퀀스(sequence)를 구성, 전개된다. 시퀀스는 영화에서 하나의 이야기가 시작되고 끝나는 독립적인 구성단위로 극의 장소나 행동, 시간의 연속성을 가진 몇 개의 장면이 모여서 이뤄지는 것을 말한다.

앞서 말했듯 ‘판소리, 모두의 울림’이라는 주제 속 규정하는 것은 소리다. 더 나아가면 소리로, 선율을 입힌 음악까지 의미를 확장하고 포용될 수 있다. 그래서 오페라처럼 펼쳐진다는 이야기가 나온 셈이다. 이 오페라 형식에는 광주역사와 조화되는 동시에 샤먼 형식이 투영되는데 흥미로운 소재로 전개되는 것만은 분명하다. 여기에는 문학적 메타포가 내포될 수 있도록 작품을 제작할 방침이다. 판소리를 통해 스토리텔링하듯 다양한 소리들을 내포, 끝이 있는 스토리로 꾸밀 복안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언급하자면 판소리는 소리의 영역이다. 음악과 텔링의 공간으로 보면 된다는 설명이다. 이를테면 작가들이 공간을 새롭게 바라보는 등 연출하는 장소로 이해하면 된다.

전시 포스터

크로아티아 출신의 도라 부도어 작 ‘수동적 여가’(Passive Recreation)

최하늘 작 ‘우는 삼촌의 방’(Crying Uncle‘s Room)

중국 출신의 쳉 신하오 작 ‘층위와 표석’(Stratums and Erratics)

공감과 소리 이미지의 공통점은 진동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즉 우리가 보는 형태가 소리로 변환돼 시각화의 과정을 거친다. 거기에서 가장 흥미로운 소리와 공간은 서로 얽혀 있기에 그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런 것이 혼재해 있는 현시대 공간은 30년, 50년 전과는 확연히 다른 결을 보여주고 있다. 인류는 그동안 도시생활이 주가 된 데다 기후 위기나 사막화, 이주, 종의 실종 등 우리들 존재와는 상관없는 것들이 삶의 페이지에 놓였지만 이제는 우리들 삶을 위협하는 중요한 문제가 된 것처럼 급속도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을 가볍게 여길 수 없다.

전시장 입구에서부터 사운드로 통칭되는 소리나 음악을 들으면서 입장하게 된다. 당연히 소리는 작품만의 사운드로 유추, 해석할 수 있다. 각각의 작품을 통해 다채로운 소리가 구현될 전망이다. 그렇다면 소리의 혼선은 일어나지 않을까하는 의구심이 든다. 이에 대해 니콜라 부리오 감독은 소리의 혼선은 작품들이 떨어져 있기 때문에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다.

여기다 박양우 대표는 파티션 같은 것을 하기에 작품 간 소리에 의한 방해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의견을 보탰다. 전시가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으로 오히려 그랜드 스케이프(Grandscape)처럼 만들 것이라고도 했다. 작품들이 서로 대화하듯 구성한다는 것이다.

예전 전시에서는 특정 공간 전체에 하나의 작품을 선보였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꽤 많은 작품들이 설치될 가능성이 높다. 예전 전시가 공간에 하나 설치됐다고 해서 그것을 일부러 추종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오히려 도시의 밀집된 공간을 구현하고 싶어 많은 작품이 밀집될 수 있음을 내비쳤다. 아직은 큐레이팅이 되지 않아 지난 3월 참여작가 발표 기자회견 때 이뤄진 전시에 대한 설명대로 되지 않으면 작품 밀집에 관한 우려가 해소될 수도 있다.

전시에서는 이미지 직조를 통해 권위와 권력구조, 내면과의 상호작용을 드러내는 미국 출생의 노엘 앤더슨, 생명과학과 오컬트를 포괄할 남아공 출신의 비앙카 본디, 도시의 공공 공간에 주목한 크로아티아 출신 도라 부도아, 조각과 퀴어라는 두 개의 축으로 작품을 구현해온 서울 출신 최하늘, 중국 쿤밍시에서 미얀마 국경까지 900㎞에 달한 버마 로드를 따라 돌을 차면서 이동하는 것을 작품으로 구현한 중국 출신 쳉 신하오 등 국내외 권위있는 작가들을 만날 수 있다.

또 지난 10여년간 살아있는 생명체, 폐기된 기술, 쓰레기 등에 관한 분류학을 개발하고 일상 속의 그로테스크한 기념품을 아름다운 사물이나 환경으로 변형시키는 작업을 수행해 온 미국 출신 맥스 후퍼 슈나이더, 소리와 청취를 사회정치적이고 역사적인 산물이자 행동으로 간주하면서 특정 지정학적 맥락에서 소리와 청취의 의미가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탐구해온 김영은, 소리와 음악을 비롯해 DIY-엔지니어링 및 프로그래밍 등의 교차점에서 주로 작업해온 가운데 시청각을 아우르는 새로운 설치 작업을 선보일 예정인 인니 출신의 줄리앙 아브라함 ‘토가’ 등의 작품도 눈길을 끈다.

미국 출신 맥스 후퍼 슈나이더 작 ‘트랜스퍼 스테이션, 해머 프로젝트’(Transfer Station, Hammer Project)

이어 파빌리온 프로젝트는 ‘제14회 광주비엔날레’(2023. 4. 7∼7. 9)에서 9개국이 구현된데 반해 3배 이상 국가관이 늘어나게 됐다. 이는 ‘베니스비엔날레’가 50개 국가관이 넘게 운영되고 있는 가운데 본전시의 외연을 확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관람객들을 유인하는데 실제 효과로 이어지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올해 국가관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미 등 대륙별로 고르게 참여하게 된 가운데 양림동에 자리한 파빌리온 프로젝트는 양림동의 특색에 맞게 꾸며질 것으로 보인다. 5월 기준 아세안 파빌리온(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위시로 아프리카(광주시립미술관), 아메리카(5·18기념문화센터), 아르헨티나(5·18민주화운동기록관), 오스트리아(이강하미술관), 캐나다(양림미술관), 핀란드(하정웅미술관), 독일(광주역사민속박물관), 이스라엘(미로센터), 이탈리아(동곡미술관), 일본(갤러리 혜윰·컬처호텔 람), 네덜란드(은암미술관), 뉴질랜드(수하갤러리), 페루(김냇과), 폴란드(이이남스튜디오), 카타르(광주은행 아트홀), 영국(하정웅미술관), 광주(광주시립미술관) 등이다. 덴마크와 스웨덴 국가관이 설치될 무각사는 아트스페이스가 폐관되면서 재조정해야 할 상황을 맞고 있다. 파빌리온에 대한 구체적 내용은 기자회견이 잡혀있는 6월 하순이 돼야 드러날 것으로 예상된다.

오는 9월 6일 오후 개막식에는 노벨문학상 및 프랑스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세계적 권위의 맨부커상을 한국인 최초로 수상한 한강 작가와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 중인 밴드 위뮤(WeMu)가 작사해 선보일 오페라가 준비되고 있다.

박양우 대표이사는 올해 비엔날레가 예술의 정의에 대한 물음의 답을 얻을 수 있는 전시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박 대표는 “참여작가들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광주에 나눠주는 역할을 하게 되고, 광주 문맥에 맞는 예술을 발산하게 될 것”이라며 “생산적 비엔날레를 만들기 위해 ‘예술이란 무엇인가’와 ‘예술가들의 특징을 망라해 어떤 에너지가 나오는가’ 등 2가지 분류 근거를 마련했다. ‘예술가들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는가’ 등을 근거로 삼아 광주의 지역적 특색을 모색하는 한편, 관람객들에게 참여작가들이 살아있다는 것을 강조, 제시하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