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세평] 지난 2013년 시리아 내전에서 화학무기를 썼다는 까닭으로 미국이 개입(전쟁)하기로 했다.

그리고 미 국무장관이 기자회견을 했다. 이때 기자들은 전쟁비용을 물었고, 전쟁 시작일과 몇 명이나 죽을 것 같냐를 물었다. 무서운 전쟁을 앞두고 이런 질문들이 마땅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CBS 마가렛 브레넌 기자는 ‘미국이 시리아 공습을 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물었다. 엉뚱한 물음이라 느낀 존 케리 국무장관은 어리둥절했다. 그리고 준비하지 않은 대답을 얼렁뚱땅했다.

‘살상무기를 내려놓으면 전쟁은 없다’고! 몇 시간 뒤 시리아 정권을 돕던 러시아가 ‘시리아는 살상무기를 폐기하라’고 했고, 시리아는 폐기하겠다고 답했다.

전쟁(우당탕탕)은 터지지 않았다. 질문 하나가 우당탕탕을 멈추게 했다. 질문 하나로 파괴를 막았고, 죽음을 살렸다.

마가렛 브레넌은 죽음의 숫자를 찾는 기자와 달랐고, 이득과 손실만 따지는 기자와 달랐다. 전쟁의 끔찍함을 알았을 것이고, 전쟁은 나쁜 평화보다 훨씬 더 나쁘다는 것이 마음속에 깔려있지 않았을까?

알아야 묻는다. 알지 못하면 한심하게 묻고, 어리석게 웃는다. 모르니까 엉뚱하게 묻고, 어설프게 끄덕인다.

생각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면 알랑방귀를 뀌거나 비아냥만 일삼는다. 콩고물을 얻으려고 졸라대며 묻고, 힘없는 사람에게는 빨대를 꽂아 윽박지르며 묻는다.

박근혜 대통령 기자회견과 문재인 대통령 기자회견 때 우리는 봤다.

모르면 묻지 못한다. 만들어진 틀 안에서만 겨우 묻고서, 잘난 줄 알고 우쭐댄다. 시시덕거리지만, 본질을 모르고 물으니 무식하다는 말을 듣는다. 고작 시키는 대로만 묻고서, 젠체하며 뻐긴다. 어벌쩡하지만, 상식을 벗어나니 몰상식하다는 말을 듣는다.

오바마 대통령의 기자회견과 조국사태 취재하는 기자들에게서 봤다.

한때 교과서에 ‘어떻게 살 것인가?’란 글이 있었다. 답하기 쉽지 않아 속상한 질문이었다. 지금도 이 물음은 당황스럽다. 대답하려다보면 어쩐지 부끄러워지고, 뭔가 거창하게 말해야 할 것 같다. 그러다 머뭇거리거나 허황된 맞대(대답)를 하고 만다.

천하의 유시민 작가쯤 되어야 답할 수 있겠다. 그가 쓴 같은 제목의 책이 있는 걸 보면.

‘어떻게 살 것인가?’ 대신에 ‘누구랑 살 것인가?’ 이렇게 물으면 어떨까?

괴롭히는 사람보다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싶어요,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사람보다 우리 삶을 지키는 사람과 살고 싶어요, 쉽게 맞대할 수 있으니까! 누구랑 살 것인가의 물음은 따뜻한 이웃과 배려하는 마음을 저절로 떠오르게 한다.

놀러 갈 때도 ‘어디 가고 싶어?’ 이렇게 물으면 스위스, 스페인, 스웨덴, 이렇게 말하게 된다. 막연하고 홀껏(환상)만 끌어대며 말을 만든다.

그런데 ‘누구랑 가고 싶어?’를 물으면 내가 좋아하는 곳보다 그가 좋아하는 곳을 찾게 되고, 나의 무모함보다 여러 사정을 헤아려보게 된다.

‘너에게 삶은 무슨 의미야?’ 이렇게 물으면 삶에 어떤 의미를 집어넣어야 할 것 같은 무거움에 짓눌리고, 내 삶에다 거룩한 다짐이라도 다져야 할 것 같은 압박을 받는다.

내 삶의 비참까지 떠올리게 한다. 배운 척해야 하는 억지스런 질문이다. 철학 공부 30년쯤 해도 대답하기 어렵겠다.

그런데 ‘네 삶을 한두 마디로 표현한다면?’ 이렇게 물으면 쉽게 맞대할 수 있는 것이 많다. ‘난 부지런하게 살지’라면서 마음을 다지기도 하고, ‘호기심의 역사라고나 할까?’ 살짝웃음(미소)을 담을 수도 있다. 비장함보다 희망을, 무리수보다 자연스러움을 찾게 된다.

언론의 뻔한(?) 질문과 선생들의 거룩한(?) 질문만 듣고 살아서, 우리의 질문은 쓸데없이 심각하고, 어이없게 성스럽다. 부드럽게 물어보면 의심하고, 가볍게 물어보면 무시한다. 그래서 우리는 뭘 물어볼지 모를 때가 많아 어색하다.

이제 진실보다 비아냥을 묻는 기자의 질문은 못된 사례로만 남겨둬야 한다. 펜을 쥐었으나 무식한 기자일 뿐이니까.

평화보다 갈등을 부추기는 정치인의 질문에 맞대할 필요는 없다. 시끄럽게 떠들기만 하는 모자란 정치인일 뿐이니까.

원칙을 무너뜨리고 쥘락(권력)에 굽실거리는 지식인들의 질문은 배울 까닭이 없다. 학벌만 앞세운 파렴치한 지식인일 뿐이니까.

출세를 하려는 황당한 질문과 돈을 얻으려는 염치없는 질문을 이제 바꿔야 한다. 내 자랑하려고 밑자락 까는 질문과 남을 이기려고 던지는 질문을 버려야 한다.

답을 정해놓고 물어보는 어리석음도 내려놓아야 한다. 질문을 바꾸면 마음이 바뀌고, 마음이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