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주한 삶 계속됐으면…성장하는 뮤지션 될 터"
[남도예술인] 미디 작곡가·프로듀서 서정훈
서태지에 매료 춤·베이스 기타로 음악 입문
인디밴드 팡팡밴드 난반댈세·루버스틱 활동
2인조 ‘전자국악단 가락’ 결성…나눔 무대도
서태지에 매료 춤·베이스 기타로 음악 입문
인디밴드 팡팡밴드 난반댈세·루버스틱 활동
2인조 ‘전자국악단 가락’ 결성…나눔 무대도
입력 : 2024. 02. 15(목) 18:12

인디밴드 루버스틱 활동 당시 무대.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사랑이로구나 내 사랑이야’(판소리 ‘춘향가’ 중 ‘사랑가’ 일부)
‘…(중략)/바로 달려가 말 걸어볼걸/앞보고 걸어가야 하는 걸/자꾸 뒤돌아 보게 해/(Dance with you my love)/brother sister 모두 날 응원해요/(Dance step with you my love)/날 보자마자 스텝 밟게 해줄게요 Come on!’(자작곡 ‘어쩌다 마주친 그대’ 중)
하얀 저고리에 바지를 입고 머리에 띠를 두른 채 능숙하게 음악 작업을 하는 이, 마이크 앞에서 맨투맨티를 편안하게 입은 이가 함께 무대를 꾸민다. 이들은 판소리 ‘춘향가’ 중 춘향과 몽룡의 사랑을 다룬 ‘사랑가’를 발라드처럼 부른다. 사랑하는 두 남녀의 천진함과 감정선의 아련함이 일품이다. 듣고 있으면 분명 판소리인데 전통 판소리와는 달라 새롭다. 너무나 알려진 곡을 남다른 감성으로 들려주니 관객들은 어느새 이들의 무대에 귀를 기울인다. B급 감성이 추가됐는데 어딘지 모르게 세련된 이들을 본 관객들은 남녀노소할 것 없이 하나가 된다. 무대가 끝나면 둘 다 끼고 있는 선글라스 속 숨은 맨 얼굴이 궁금해지는 이유다.
이들이 퓨전 국악이나 유명 곡을 커버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관객들이 무대에 빠져들었다 싶으면 어김없이 자작곡을 내놓는다. 그 곡들을 가만히 듣다 보면, 스스로도 깨닫지 못한 감정이 톡 올라오기도 하고, 신명난 리듬에 흥이 나 절로 어깨가 들썩이기도 한다. 무대에서 이들은 그야말로 밀고 당기기의 고수라 할 수 있다.
‘즐겁게 노래하는 사람들’이라는 소갯말에 꼭 맞는 무대를 선사하는 ‘전자국악단 가락’의 무대다. 댄스음악이나 EDM, 록과의 컬래버레이션 등 다양한 장르를 접목한 음악을 선사하는 전자국악단 가락은 전자음악과 국악 사이, 그 어디쯤 존재하는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구수하면서 신선하다는 평이다.

가락의 중심에는 ‘서집사’라는 별칭으로 활동해온 미디(MIDI) 작곡가이자 프로듀서 서정훈씨가 있다. 작곡은 피아노와 기타 같은 악기에 의한 작곡 및 컴퓨터로 하는 작곡으로 나뉘는데 그 후자를 말한다.
사실 그는 록에 심취해 기타리스트를 꿈꿨다. 정확히 말하자면 서태지의 무대에 매료돼 닮고 싶었달까. 초등학교 3학년 때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를 알게 된 뒤 춤을 추기 시작했고, 서태지가 밴드활동을 했다는 것을 알고 성당 밴드부에 들어가 베이스 기타를 치기 시작했다. 꾸준히 기타를 쳐서 대학 때 실용음악을 전공, 정통 재즈를 섭렵했다. 베이스 기타가 필요한 곳에는 늘 그가 있었고, 스물 두 살 그는 기타리스트로 잘 풀리는 줄 알았다. 인생이 바뀌는 교통사고를 겪기 전까지는.
큰 사고로 인해 그는 졸업 한 학기를 남기고 뇌출혈과 오른쪽 마비를 겪게 되면서 더 이상 예전처럼 베이스를 칠 수 없게 됐다. 2년이라는 시간, 짧다면 짧은 그 기간에 삶이 그렇게 달라질 줄은 몰랐다고 한다.
“처음에는 금방 회복할 줄 알았어요. 병실에 누워 쉰다고 생각하자고 되뇌었죠. 시간이 가면 갈수록 기타를 쳐야 하는데 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어요. 점차 회복을 했지만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현실을 자각했죠. 그때 무너졌어요. 그렇게 집에만 틀어박혀 있다가 시작한 게 미디였죠.”
할 줄 아는 게 음악이어서 마우스질을 하며 미디를 조금씩 독학해나갔다고 한다. 디지털 신호를 음악의 창작 도구로 활용해 작곡하기 시작한 것이다. 기타리스트로 축적해온 그간의 경험에 비해 이제 막 한걸음 뗀 미디 작곡은 걱정을 앞서게 했지만 같이 음악을 했던 친구가 힘을 북돋워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국악, 통기타, 인디밴드 등 베이스가 필요하면 어김없이 저에게 연락이 왔죠. 교회와 성당에서는 물론이고, 힌두교 빼고 모든 종교 음악을 해봤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런 경험들이 쌓여 자산이 돼 미디 작업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됐어요.”
이후 그는 마음 맞는 이들과 인디밴드를 결성해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특히 그가 샘플러 개념의 미디를 담당하며 기타를 연주했던 루버스틱은 그와 2013년부터 활동하면서 Stey.C, 팡팡밴드 난반댈세 등 팀에서 13년간 같이 활동한 손성훈(기타·보컬), 피규어8과 원더월에서 활동했던 소나기(드럼)가 만든 인디밴드다. 일렉트로닉 록을 추구하며 광주음악창작소 뮤지션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에 선정되기도 했고, 3장의 싱글과 1장의 EP앨범을 발매하면서 전국적으로 활발히 활동해 주목을 받았다.
루버스틱 활동을 하면서 중국에 아이돌 곡을 보낼 루트가 생겨 거기에 매달리던 때도 있었다. 그때는 내 곡을 누군가가 불러주는 게 좋았다고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 노래를 만들고 싶다’는 갈증이 찾아왔다. 그래서 만든 게 전자국악단 가락이다.
보컬을 담당하는 ‘두부’ 김현승씨와 활동한지 1년8개월째다. 인디밴드 팡팡밴드 난반댈세를 같이하고 루버스틱 초창기 멤버였기에 척하면 척이라고 한다.
먼저 둘이서 지난해 광주음악창작소 게임음악크리에이터지원사업에 참여해 6개 팀 중 1등을 차지하면서 손발을 맞췄다. 서정훈씨가 프로듀싱해 코드를 짜고 반주를 만드는 미디작업을 하면, 김씨가 멜로디와 가사를 만드는 방식으로 작업하고 있다.
비록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활동하면 할수록 자연스럽게 전자국악단 가락만의 색을 찾아갈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인디밴드의 공연장을 찾았는데, 거기서 나이가 제일 많은 것 같았죠. 어느새 아저씨가 돼 있더라고요. 20대 때는 공연장을 가면 패기가 넘쳤는데, 40줄에 들어서니 우리를 쳐다보는 눈빛에 의기소침해지더라고요. 그래서 나이가 들어도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피터팬 콤플렉스는 누구에게나 있지만, 거기에 머물러 있지 않기로 했습니다. 가락 활동을 하기로 하고 6개월 사이 그걸 인정하게 된 거죠.”

그는 음악의 매력에 대해 묻자 가장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라는 대답을 내놨다. 괴로움과 행복을 모두 맛보게 하기 때문인 듯했다.
“많을 때는 하루 평균 12시간, 최대 16시간을 작업하면서 창작의 괴로움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한 곡을 완성하면 내내 고통 속에 있다가 몇 분 행복하죠. 이미 음악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된 것 같아요.”
그에게 음악은 전부인 셈이다. 올해 역시 그는 음악과 함께 바쁜 나날을 보낸다. 지난해부터 음악인들과 준비한 버스킹을 하나하나 선보인다. 전자국악단 가락으로서는 오는 24일 고싸움놀이전수교육관에서 열릴 ‘제41회 고싸움놀이축제’에서 관객들을 만난다. 이디엠과 오케스트라의 크로스오버를 선보이는 클래트릭스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컬래버레이션 무대 또한 갖는다. 이외에 3월 성요셉요양원을 시작으로 섬마을이나 요양원 등을 찾아 재능기부 무대를 꾸준히 펼칠 계획이다. 개인적으로는 ‘음악을 하면서 귀농해볼까’하는 고민을 갖고 있다.
끝으로 그는 성장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들려줬다.
“늙어 죽을 때까지 먹고 살 걱정없는 뮤지션이 되고 싶죠. 할 수 있는 음악을 하는 지금이 만족스러워요. 이 상황이 잔잔하게, 그리고 오랫동안 유지됐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시간에 따라 제자리에 있지 않고 성장하는 뮤지션이 되도록 노력할 겁니다.”
‘…(중략)/바로 달려가 말 걸어볼걸/앞보고 걸어가야 하는 걸/자꾸 뒤돌아 보게 해/(Dance with you my love)/brother sister 모두 날 응원해요/(Dance step with you my love)/날 보자마자 스텝 밟게 해줄게요 Come on!’(자작곡 ‘어쩌다 마주친 그대’ 중)
하얀 저고리에 바지를 입고 머리에 띠를 두른 채 능숙하게 음악 작업을 하는 이, 마이크 앞에서 맨투맨티를 편안하게 입은 이가 함께 무대를 꾸민다. 이들은 판소리 ‘춘향가’ 중 춘향과 몽룡의 사랑을 다룬 ‘사랑가’를 발라드처럼 부른다. 사랑하는 두 남녀의 천진함과 감정선의 아련함이 일품이다. 듣고 있으면 분명 판소리인데 전통 판소리와는 달라 새롭다. 너무나 알려진 곡을 남다른 감성으로 들려주니 관객들은 어느새 이들의 무대에 귀를 기울인다. B급 감성이 추가됐는데 어딘지 모르게 세련된 이들을 본 관객들은 남녀노소할 것 없이 하나가 된다. 무대가 끝나면 둘 다 끼고 있는 선글라스 속 숨은 맨 얼굴이 궁금해지는 이유다.
이들이 퓨전 국악이나 유명 곡을 커버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관객들이 무대에 빠져들었다 싶으면 어김없이 자작곡을 내놓는다. 그 곡들을 가만히 듣다 보면, 스스로도 깨닫지 못한 감정이 톡 올라오기도 하고, 신명난 리듬에 흥이 나 절로 어깨가 들썩이기도 한다. 무대에서 이들은 그야말로 밀고 당기기의 고수라 할 수 있다.
‘즐겁게 노래하는 사람들’이라는 소갯말에 꼭 맞는 무대를 선사하는 ‘전자국악단 가락’의 무대다. 댄스음악이나 EDM, 록과의 컬래버레이션 등 다양한 장르를 접목한 음악을 선사하는 전자국악단 가락은 전자음악과 국악 사이, 그 어디쯤 존재하는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구수하면서 신선하다는 평이다.

2017 5·18 전야제에서 기타를 연주하고 있는 서정훈씨.

프로듀서 서정훈씨는 “한 곡을 완성하면 내내 고통 속에 있다가 몇 분 행복하다. 이미 음악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사실 그는 록에 심취해 기타리스트를 꿈꿨다. 정확히 말하자면 서태지의 무대에 매료돼 닮고 싶었달까. 초등학교 3학년 때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를 알게 된 뒤 춤을 추기 시작했고, 서태지가 밴드활동을 했다는 것을 알고 성당 밴드부에 들어가 베이스 기타를 치기 시작했다. 꾸준히 기타를 쳐서 대학 때 실용음악을 전공, 정통 재즈를 섭렵했다. 베이스 기타가 필요한 곳에는 늘 그가 있었고, 스물 두 살 그는 기타리스트로 잘 풀리는 줄 알았다. 인생이 바뀌는 교통사고를 겪기 전까지는.
큰 사고로 인해 그는 졸업 한 학기를 남기고 뇌출혈과 오른쪽 마비를 겪게 되면서 더 이상 예전처럼 베이스를 칠 수 없게 됐다. 2년이라는 시간, 짧다면 짧은 그 기간에 삶이 그렇게 달라질 줄은 몰랐다고 한다.
“처음에는 금방 회복할 줄 알았어요. 병실에 누워 쉰다고 생각하자고 되뇌었죠. 시간이 가면 갈수록 기타를 쳐야 하는데 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어요. 점차 회복을 했지만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현실을 자각했죠. 그때 무너졌어요. 그렇게 집에만 틀어박혀 있다가 시작한 게 미디였죠.”
할 줄 아는 게 음악이어서 마우스질을 하며 미디를 조금씩 독학해나갔다고 한다. 디지털 신호를 음악의 창작 도구로 활용해 작곡하기 시작한 것이다. 기타리스트로 축적해온 그간의 경험에 비해 이제 막 한걸음 뗀 미디 작곡은 걱정을 앞서게 했지만 같이 음악을 했던 친구가 힘을 북돋워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고 한다.


프로듀서 서정훈씨와 보컬을 담당하는 김현승씨로 이뤄진 전자국악단 가락이 ‘2023 나주축제’에서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이후 그는 마음 맞는 이들과 인디밴드를 결성해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특히 그가 샘플러 개념의 미디를 담당하며 기타를 연주했던 루버스틱은 그와 2013년부터 활동하면서 Stey.C, 팡팡밴드 난반댈세 등 팀에서 13년간 같이 활동한 손성훈(기타·보컬), 피규어8과 원더월에서 활동했던 소나기(드럼)가 만든 인디밴드다. 일렉트로닉 록을 추구하며 광주음악창작소 뮤지션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에 선정되기도 했고, 3장의 싱글과 1장의 EP앨범을 발매하면서 전국적으로 활발히 활동해 주목을 받았다.
루버스틱 활동을 하면서 중국에 아이돌 곡을 보낼 루트가 생겨 거기에 매달리던 때도 있었다. 그때는 내 곡을 누군가가 불러주는 게 좋았다고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 노래를 만들고 싶다’는 갈증이 찾아왔다. 그래서 만든 게 전자국악단 가락이다.
보컬을 담당하는 ‘두부’ 김현승씨와 활동한지 1년8개월째다. 인디밴드 팡팡밴드 난반댈세를 같이하고 루버스틱 초창기 멤버였기에 척하면 척이라고 한다.
먼저 둘이서 지난해 광주음악창작소 게임음악크리에이터지원사업에 참여해 6개 팀 중 1등을 차지하면서 손발을 맞췄다. 서정훈씨가 프로듀싱해 코드를 짜고 반주를 만드는 미디작업을 하면, 김씨가 멜로디와 가사를 만드는 방식으로 작업하고 있다.
비록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활동하면 할수록 자연스럽게 전자국악단 가락만의 색을 찾아갈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인디밴드의 공연장을 찾았는데, 거기서 나이가 제일 많은 것 같았죠. 어느새 아저씨가 돼 있더라고요. 20대 때는 공연장을 가면 패기가 넘쳤는데, 40줄에 들어서니 우리를 쳐다보는 눈빛에 의기소침해지더라고요. 그래서 나이가 들어도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피터팬 콤플렉스는 누구에게나 있지만, 거기에 머물러 있지 않기로 했습니다. 가락 활동을 하기로 하고 6개월 사이 그걸 인정하게 된 거죠.”

기타를 메고 무대에서 음악작업을 하는 서정훈씨.

서정훈씨가 광주프린지페스티벌에서 기타를 연주하고 있다.
“많을 때는 하루 평균 12시간, 최대 16시간을 작업하면서 창작의 괴로움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한 곡을 완성하면 내내 고통 속에 있다가 몇 분 행복하죠. 이미 음악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된 것 같아요.”
그에게 음악은 전부인 셈이다. 올해 역시 그는 음악과 함께 바쁜 나날을 보낸다. 지난해부터 음악인들과 준비한 버스킹을 하나하나 선보인다. 전자국악단 가락으로서는 오는 24일 고싸움놀이전수교육관에서 열릴 ‘제41회 고싸움놀이축제’에서 관객들을 만난다. 이디엠과 오케스트라의 크로스오버를 선보이는 클래트릭스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컬래버레이션 무대 또한 갖는다. 이외에 3월 성요셉요양원을 시작으로 섬마을이나 요양원 등을 찾아 재능기부 무대를 꾸준히 펼칠 계획이다. 개인적으로는 ‘음악을 하면서 귀농해볼까’하는 고민을 갖고 있다.
끝으로 그는 성장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들려줬다.
“늙어 죽을 때까지 먹고 살 걱정없는 뮤지션이 되고 싶죠. 할 수 있는 음악을 하는 지금이 만족스러워요. 이 상황이 잔잔하게, 그리고 오랫동안 유지됐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시간에 따라 제자리에 있지 않고 성장하는 뮤지션이 되도록 노력할 겁니다.”
정채경 기자 view2018@gwangna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