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 팔지 않고 전업작가로만 살아 갈 것"
[남도예술인] 교과서 수록 정승원 작가
소소한 일상 행복과 기억 주목…판화기법 활용
일러스트적 요소 강점, 교과서 3종에 작품 수록
독일 유학은 터닝포인트…설치·영상 작업 시도
소소한 일상 행복과 기억 주목…판화기법 활용
일러스트적 요소 강점, 교과서 3종에 작품 수록
독일 유학은 터닝포인트…설치·영상 작업 시도
입력 : 2025. 04. 24(목) 18:32

정승원 작가는 “다른 데 쳐다보지 않고 일단 전업작가로만 살아갈 것이니다. 평면도 재미있지만 다른 매체로 넘어가는 즐거움도 있기에 다른 매체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시도하고 있다. 그리고 그림이랑 사람이 일치되는 작품을 선보이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독일에서 9년간의 유학 생활을 마치고 지난 2018년 귀국, 7년이 흘렀다. 7년 동안 그에게도 크든, 작든 변화가 일었다. 브레멘 국립 예술학교 통합디자인과를 마친 그는 유럽의 다양한 예술적 트렌드를 습득해 한국적 정서를 투영해냈다. 그의 작품은 굉장히 오밀조밀하다. 얼렁뚱땅, 대충 눈짐작으로 하는 작업이 아니다. 고도의 관찰과 재해석이 더해져 오늘날 그만의 독창적 예술세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는 국내로 돌아온지 7년만에 올해 처음으로 미래엔과 교학도서 등 교과서 3종 수록작가로 이름을 올렸다. 그의 작품은 그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영역이다. 화단 그 누구도 그의 작품세계를 따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이 높게 평가된 듯하다.
교과서 수록작가가 됐다는 것은 독보적 작품세계가 널리 인정받았다는 반증이어서 향후 그가 작품세계에 대한 깊이와 다양성, 세계적 트렌드를 어떻게 입히느냐에 따라 작품의 수요는 전세계적으로 확산되지 말라는 법이 없을 터다. 주인공은 광주 출신 정승원 작가다.
작가의 시선은 늘 일상을 향해 있다. 우리가 흔히 목도할 수 있는 소소한 일상의 행복과 즐거운 기억들에 주목한다. 작업에 대한 소재 컨텍이 끝나면 판화기법을 활용한다. 뚜렷하게 면 분할을 한다기보다 감상자들의 시각에서 보면 바둑판처럼 구획을 나눠 그 구획에 적합한 이미지를 넣는 식이다. 물론 바둑판처럼 직선이 살아있지는 않다. 크게 놓고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그 구획들은 작은 이미지들이 앉혀진다. 한쪽에 치우치지 않게 고르게 분산되고, 여러 이미지들이 하나의 그림 부품으로 쓰여지는 형국이다. 그런데 너무 무겁게 담론을 끌고 가지 않는다는 것이 정 작가의 특징이다. 서사와 해학이라는 두 가지 축을 적절히 배합시킨다.
색감은 기존 안료에 야광물감과 발포물감 등을 더해 빛과 질감 면에서 풍성한 시각적 효과를 안겨준다. 여기다 작품에서 일러스트적인 요소가 포착된다. 이런 점이 정승원 작가가 일구는 회화세계의 강점으로 꼽힌다.
그는 최근 광주시립미술관 국제레지던시 입주작가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올해 3월부터 12월말까지 이곳에 머물며 작업을 펼친다. 그가 레지던시 중심으로 작업을 하겠지만 고가의 장비들이 많은데다 무겁고 부피가 커서 어디로 함부로 옮길 수 없는 두암동 작업실 역시 2018년 이후 7년째 작업공간으로 써온 만큼 병행할 생각이다. 또 입주기간이 끝나면 돌아갈 곳도 두암동 작업실이다.

다시 그가 독일 유학을 떠난 배경을 살펴보면 한국에서 대학교를 졸업한 뒤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해 관련 회사를 다니면서 도서 편집일을 했다. 그러던 중 다른 것도 공부해보자는 마음이 생겨서 대학원을 진학할 것인가, 아니면 유학을 갈 것인가 고민을 하다가 유학을 가기로 결론을 내리면서다.
그는 독일로 행선지를 정했다. 독일이 학비도 없어 준비를 해서 가보자 해서 독일로 떠났다. 그는 독일이 유학을 가도 졸업이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 감행한 길이었다. 힘들게 공부해 학부를 졸업한 정 작가는 지금 생각해보면 되게 잘 산택한 것 같다고 회고했다.
“2008년부터 2017년까지 10년 간 독일에 머물렀어요. 유학하면 다들 석박사를 한줄 아는데 저는 거기서 학부과정을 진행했고, 그곳을 졸업한 것이죠. 왜 학사를 했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저는 처음부터 다시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거든요. 독일 유학은 제게 하나의 터닝포인트가 됐습니다. 그래픽과 제품, 패션 디자인을 하나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같이 융합해서 하는 수업들이 많아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됐어요.”
앞서 밝혔듯 석박사를 하지 않고 학부를 선택한데는 처음부터 다시 배워보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모두 학부를 마치면 석박사를 하지, 다시 학부로 내려가 다시 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공부 부담도, 시간 부담도 따를 수밖에 없어서다. 이때 그의 선택이 더 충실하게 이론적, 경험적 , 사유적 근거 등 기본을 다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작가는 다른 것을 재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실천에 옮긴 것으로 읽혀졌다.
사실 오늘날 정 작가가 있기까지는 조선대 미술대학에 재학했던 막내이모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작가는 유년기 이런 이모들과 함께 살았기에 자연스럽게 미술에 노출됐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미술은 조금 자신있는 분야가 돼 유년기에부터 계속해 왔고, 만화까지 섭렵해 고등학교 때는 반에서 그림을 제일 잘하는 친구로 통했다는 설명이다.
어렸을 때 동급생들 얼굴을 만화로 그려주고 하다보니 만화(애니메이터)에 관심이 컸지만 애니메이션 대신 더 많은 것을 접하고 배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 디자인과를 선택했다고 한다. 그의 프로필에 보면 디자인이 더 많이 나오는 이유다.

독일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 줄곧 쉼없이 전업작가로서의 길을 걸어왔다. 그가 지치지 않고 집중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그는 가족의 응원이라고 답한다.
“너무 바쁘게 작업을 해왔는데 사람들이 제 작품을 많이 좋아해주고 하니까 이게 가장 큰 힘이 되죠. 그리고 가족들 역시 제가 필요로 하는 것을 많이 도와주니까 제일 보람이 되는 것 같습니다. 다만 전시도 그렇고, 무언가 욕심도 있고 바쁘기도 하니까 초창기 가졌던 여유가 사라져버렸죠. 이게 가장 아쉬운 점입니다.”
초창기 때 가지고 있었던 여유를 찾으려 하는데 그게 다소 어려움을 겪는 이면에는 자신의 작업에 대한 소신 때문이 아닌가 싶다. 작가는 대충과 작품과 타협하는 법이 없다. 그는 마음이 들때까지 작업을 하는 경향이 있다. 스타일이 진지한데다 광주에서 작품활동을 펼치면서 전시 등 활동 보폭이 넓혀진 점 또한 그가 분주한 일상을 보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그는 국제레지던시에 입주해 활동을 펼치고 있지만 여전히 작업을 처음 했던 때를 상기하며 활동에 임하고 있다. 작업을 처음 했던 때를 기억하는 작가는 결국 초심의 중요성을 인식한다. 초심이라는 지점을 확인해 좀더 차분하게 작품에 임해보고 싶은 마음인 것이다.
그는 감상하시는 분들이 귀국해 처음 전시를 선보였던 무등현대미술관 때도 그랬지만 ‘구상을 망라해 광주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작품이 아니다. 굉장히 좀 독특하고 독창적이다’라는 말씀들을 해주셨는데 조금 이상한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그런 말씀을 들을 때마다, 좀 이상하게 그리려고 한 적은 없습니다. 처음에 그린 첫 작품도 그냥 제가 여행가서 느꼈던 것을 내가 그릴 수 있는 그림으로 그린 거였습니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을 봐 주는 분들이 있어서 되게 좋아요. 광주에서 판화라는 매체 자체를 많이 하는 것은 아니어서 (전시도 많이 안 열리는 등 노출이 적을 수 밖에 없어서) 독특하다 등의 반응이 나올 수도 있겠다 생각하죠.”
정 작가는 앞서 언급한 바 있지만 자신은 여행과 일상에서 느끼는, 즐거운 소소한 즐거움들을 모아서 그림으로 그리고 있다. 자신이 경험했던 여러 방면 중 그 시작점을 여행으로 보고 있다. 그는 살면서 얻는 즐거움이야말로 무언가 큰 일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소소한 데서 얻을 뿐만 아니라 거기서 더 큰 여운이 남고 즐거움을 준다는 것에 공감하고 있다.

<@7>또 그는 교과서에 올해 처음 수록됐다. 그것이 엄청난 일이고 감사한 일인 것은 맞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정신적으로 뭔가 달라지려고 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작업에 몰입이 어려울 수 있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은 때문으로 풀이됐다.
자신의 작업에 대해 국내 뿐만 아니라 아시아를 포함해 해외에서도 재밌게 봐 주는 편이라고 했다. 그 이유로는 자신의 작품이 진입장벽이 낮은 것 등을 꼽았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어떤 작업을 해볼 생각인가’와 ‘어떤 작가로 평가받기를 원하는가’를 물었다. 그는 꾸준한 작업과 작업 영역의 확대를 답하는 것으로 인터뷰를 갈무리했다.
“다른 데 쳐다보지 않고 일단 전업작가로만 살아갈 겁니다. 평면 작업이 주축이지만 설치로 넘어가는 작업도 꾸준하게 시도하고 있죠. 영상 작업도 마찬가지구요. 평면도 재미있지만 다른 매체로 넘어가는 즐거움도 있기에 다른 매체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시도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림이랑 사람이 일치되는 작품을 선보이고 싶죠. 그래야 정말 자연스러운 작품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는 국내로 돌아온지 7년만에 올해 처음으로 미래엔과 교학도서 등 교과서 3종 수록작가로 이름을 올렸다. 그의 작품은 그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영역이다. 화단 그 누구도 그의 작품세계를 따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이 높게 평가된 듯하다.
교과서 수록작가가 됐다는 것은 독보적 작품세계가 널리 인정받았다는 반증이어서 향후 그가 작품세계에 대한 깊이와 다양성, 세계적 트렌드를 어떻게 입히느냐에 따라 작품의 수요는 전세계적으로 확산되지 말라는 법이 없을 터다. 주인공은 광주 출신 정승원 작가다.
작가의 시선은 늘 일상을 향해 있다. 우리가 흔히 목도할 수 있는 소소한 일상의 행복과 즐거운 기억들에 주목한다. 작업에 대한 소재 컨텍이 끝나면 판화기법을 활용한다. 뚜렷하게 면 분할을 한다기보다 감상자들의 시각에서 보면 바둑판처럼 구획을 나눠 그 구획에 적합한 이미지를 넣는 식이다. 물론 바둑판처럼 직선이 살아있지는 않다. 크게 놓고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그 구획들은 작은 이미지들이 앉혀진다. 한쪽에 치우치지 않게 고르게 분산되고, 여러 이미지들이 하나의 그림 부품으로 쓰여지는 형국이다. 그런데 너무 무겁게 담론을 끌고 가지 않는다는 것이 정 작가의 특징이다. 서사와 해학이라는 두 가지 축을 적절히 배합시킨다.
색감은 기존 안료에 야광물감과 발포물감 등을 더해 빛과 질감 면에서 풍성한 시각적 효과를 안겨준다. 여기다 작품에서 일러스트적인 요소가 포착된다. 이런 점이 정승원 작가가 일구는 회화세계의 강점으로 꼽힌다.
그는 최근 광주시립미술관 국제레지던시 입주작가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올해 3월부터 12월말까지 이곳에 머물며 작업을 펼친다. 그가 레지던시 중심으로 작업을 하겠지만 고가의 장비들이 많은데다 무겁고 부피가 커서 어디로 함부로 옮길 수 없는 두암동 작업실 역시 2018년 이후 7년째 작업공간으로 써온 만큼 병행할 생각이다. 또 입주기간이 끝나면 돌아갈 곳도 두암동 작업실이다.

교학도서 중학교미술1 표지

교학도서 초등학교미술4 표지
그는 독일로 행선지를 정했다. 독일이 학비도 없어 준비를 해서 가보자 해서 독일로 떠났다. 그는 독일이 유학을 가도 졸업이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 감행한 길이었다. 힘들게 공부해 학부를 졸업한 정 작가는 지금 생각해보면 되게 잘 산택한 것 같다고 회고했다.
“2008년부터 2017년까지 10년 간 독일에 머물렀어요. 유학하면 다들 석박사를 한줄 아는데 저는 거기서 학부과정을 진행했고, 그곳을 졸업한 것이죠. 왜 학사를 했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저는 처음부터 다시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거든요. 독일 유학은 제게 하나의 터닝포인트가 됐습니다. 그래픽과 제품, 패션 디자인을 하나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같이 융합해서 하는 수업들이 많아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됐어요.”
앞서 밝혔듯 석박사를 하지 않고 학부를 선택한데는 처음부터 다시 배워보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모두 학부를 마치면 석박사를 하지, 다시 학부로 내려가 다시 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공부 부담도, 시간 부담도 따를 수밖에 없어서다. 이때 그의 선택이 더 충실하게 이론적, 경험적 , 사유적 근거 등 기본을 다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작가는 다른 것을 재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실천에 옮긴 것으로 읽혀졌다.
사실 오늘날 정 작가가 있기까지는 조선대 미술대학에 재학했던 막내이모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작가는 유년기 이런 이모들과 함께 살았기에 자연스럽게 미술에 노출됐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미술은 조금 자신있는 분야가 돼 유년기에부터 계속해 왔고, 만화까지 섭렵해 고등학교 때는 반에서 그림을 제일 잘하는 친구로 통했다는 설명이다.
어렸을 때 동급생들 얼굴을 만화로 그려주고 하다보니 만화(애니메이터)에 관심이 컸지만 애니메이션 대신 더 많은 것을 접하고 배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 디자인과를 선택했다고 한다. 그의 프로필에 보면 디자인이 더 많이 나오는 이유다.

미래엔 중학교미술1 표지

‘Bremen’
“너무 바쁘게 작업을 해왔는데 사람들이 제 작품을 많이 좋아해주고 하니까 이게 가장 큰 힘이 되죠. 그리고 가족들 역시 제가 필요로 하는 것을 많이 도와주니까 제일 보람이 되는 것 같습니다. 다만 전시도 그렇고, 무언가 욕심도 있고 바쁘기도 하니까 초창기 가졌던 여유가 사라져버렸죠. 이게 가장 아쉬운 점입니다.”
초창기 때 가지고 있었던 여유를 찾으려 하는데 그게 다소 어려움을 겪는 이면에는 자신의 작업에 대한 소신 때문이 아닌가 싶다. 작가는 대충과 작품과 타협하는 법이 없다. 그는 마음이 들때까지 작업을 하는 경향이 있다. 스타일이 진지한데다 광주에서 작품활동을 펼치면서 전시 등 활동 보폭이 넓혀진 점 또한 그가 분주한 일상을 보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그는 국제레지던시에 입주해 활동을 펼치고 있지만 여전히 작업을 처음 했던 때를 상기하며 활동에 임하고 있다. 작업을 처음 했던 때를 기억하는 작가는 결국 초심의 중요성을 인식한다. 초심이라는 지점을 확인해 좀더 차분하게 작품에 임해보고 싶은 마음인 것이다.
그는 감상하시는 분들이 귀국해 처음 전시를 선보였던 무등현대미술관 때도 그랬지만 ‘구상을 망라해 광주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작품이 아니다. 굉장히 좀 독특하고 독창적이다’라는 말씀들을 해주셨는데 조금 이상한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그런 말씀을 들을 때마다, 좀 이상하게 그리려고 한 적은 없습니다. 처음에 그린 첫 작품도 그냥 제가 여행가서 느꼈던 것을 내가 그릴 수 있는 그림으로 그린 거였습니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을 봐 주는 분들이 있어서 되게 좋아요. 광주에서 판화라는 매체 자체를 많이 하는 것은 아니어서 (전시도 많이 안 열리는 등 노출이 적을 수 밖에 없어서) 독특하다 등의 반응이 나올 수도 있겠다 생각하죠.”
정 작가는 앞서 언급한 바 있지만 자신은 여행과 일상에서 느끼는, 즐거운 소소한 즐거움들을 모아서 그림으로 그리고 있다. 자신이 경험했던 여러 방면 중 그 시작점을 여행으로 보고 있다. 그는 살면서 얻는 즐거움이야말로 무언가 큰 일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소소한 데서 얻을 뿐만 아니라 거기서 더 큰 여운이 남고 즐거움을 준다는 것에 공감하고 있다.

‘City of Bremen’

‘Fairy Tales of Tiger’
자신의 작업에 대해 국내 뿐만 아니라 아시아를 포함해 해외에서도 재밌게 봐 주는 편이라고 했다. 그 이유로는 자신의 작품이 진입장벽이 낮은 것 등을 꼽았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어떤 작업을 해볼 생각인가’와 ‘어떤 작가로 평가받기를 원하는가’를 물었다. 그는 꾸준한 작업과 작업 영역의 확대를 답하는 것으로 인터뷰를 갈무리했다.
“다른 데 쳐다보지 않고 일단 전업작가로만 살아갈 겁니다. 평면 작업이 주축이지만 설치로 넘어가는 작업도 꾸준하게 시도하고 있죠. 영상 작업도 마찬가지구요. 평면도 재미있지만 다른 매체로 넘어가는 즐거움도 있기에 다른 매체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시도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림이랑 사람이 일치되는 작품을 선보이고 싶죠. 그래야 정말 자연스러운 작품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