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유해
이성오 서울취재팀장
입력 : 2023. 05. 07(일) 17:47

[데스크칼럼] 다시 5월이다. 신록이 점차 푸른 빛을 더해가고 꽃향기가 짙어지는 시간이다.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사람이 불어 해가 뜰 때나 질 무렵 산책하기 좋은 계절이다. 새소리 또한 감미롭다. 과연 계절의 여왕이라 불릴 만하다.
하지만 80년 이맘때를 광주에서 겪은 사람들에게는 가슴아픈 기억들이 찾아오는 시간이다. 애써 외면해보지만 결코 외면할 수 없는 5월이다. 18일부터 27일까지 매일 시가지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총성을 들었고, 그때마다 피냄새를 상상했고 실제로 보고 맡기도 했던 그 시간들을 어찌 잊겠는가. 살아남은 자로서 지게 된 무거운 빚을 어찌 갚을 수 있겠는가.
이제는 당시를 겪지 못한 사람들조차도 그날의 진실을 이해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채무로부터 영원히 자유로워 질 수 없다.
광주 학살의 원흉인 전두환이 사망한지 1년 하고도 6개월째다. 그의 유해는 어디에 있을까.
그는 생전 회고록에 ‘북녘땅이 내려다보이는 전방 고지에 백골로라도 남아 통일의 날을 맞고 싶다’고 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국가보훈처는 그의 사망 당일 “내란죄 등으로 실형 선고를 받아 국립묘지법상 국립묘지 안장 배제 대상”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지난 1997년 4월 17일 대법원에서 반란(내란)수괴·내란·내란목적살인 등 13가지의 죄목이 모두 유죄로 확정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가 사면됐다.
그의 유해는 유골함에 담겨 아직 그의 부인 이순자씨가 살아 있는 자택에 안치돼 있다는 게 정설이다. 결국 그 어디에도 묻히지 못했다. 유해 훼손 등 불상사를 염려해서다.
반면 노태우는 파주 통일동산 동화경모공원에 유해가 안치됐다. 전두환과 노태우는 둘 다 12·12 쿠데타의 주역들이고, 5·18 학살의 주역이며, 대통령을 지냈고, 내란의 수괴로서 징역형을 받았다가 사면됐다.
두 사람의 행적에서 다른 게 있다면 전두환은 추징금을 완납한 노태우와 달리 비협조적 태도로 일관하며 죽을 때까지 내지 않았다.또 전두환은 죽기 전에 그의 아들이 광주에 와서 사죄한 노태우와는 달리 사죄를 하지 않았다.
물론 사후이긴 하지만 전두환의 유족도 사죄했다. 최근 손자 전우원씨가가 광주를 찾아 무릎을 꿇었다. 그렇지만 그들의 죄가 씻겨지고 광주시민이 그들의 학살 만행을 용서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한일관계도 마찬가지다. 우리 민족을 짓밟고 착취했던 일본이 제대로 된 사죄를 하지 않고 있지만 혹여 그들의 유족이 사죄한다고 해서 그 죄가 없어지고 만행이 용서를 받을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일본이 100년 전 일로 무릎 꿇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고 보지 않는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말씀은 납득하기 어렵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역사를 잊은 미래는 없다”고 했다. 역사를 기억하고 근원을 파헤쳐 해결하지 못하면 폐해는 반복된다. 다시는 이땅에 그런 일이, 그런 원흉이 생겨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 뿌리를 뽑아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유족의 사죄로 어물쩡 넘어가서는 결코 안될 일이다. 이대로 넘어가면 전두환의 유해가 이 땅에 묻히고, 전두환 추징금 환수도 끝내 못하게 된다. 한일 관계 개선도 멋대로 해치우는 보수 정부가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기에 대비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앞서 천정배 전 의원은 지난 2019년에 ‘불법재산 끝장 환수법(공무원범죄몰수법·형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은 발의했다. 천 전 의원은 “전두환이 죽더라도 새로운 범죄수익이 발견될 경우 이를 끝까지 추적해서 몰수하고 추징해 불법재산이 후손에게까지 상속되는 불의한 일이 없도록 하려는 목적”이라고 취지를 밝혔다. 천 전 의원은 친적이나 제3자가 증여받은 재산도 몰수 추징하는 법도 내놓았다.
지난 1997년 대법원에서 확정된 전두환씨의 추징금은 총 2205억 원인데 현재까지 추징된 액수는 1279억 원에 불과하다. 전두환의 손자 전우원씨의 폭로 중에 전두환의 비자금과 관련한 대목이 관심을 끈다. 하지만 비자금이 나온다고 해도 추징은 불가능하다. 지난해 대법원은 서울 연희동 자택 별채에 대한 압류가 정당하다는 판단을 유지하면서도 전 전 대통령이 사망한 이상 추가 집행이 불가능하다는 판결을 확정했다.
비록 생전에 사죄를 받지 못했지만 만일 추징금이 모두 환수된다면 전두환의 유해가 땅에 묻히거나 뿌려지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80년 이맘때를 광주에서 겪은 사람들에게는 가슴아픈 기억들이 찾아오는 시간이다. 애써 외면해보지만 결코 외면할 수 없는 5월이다. 18일부터 27일까지 매일 시가지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총성을 들었고, 그때마다 피냄새를 상상했고 실제로 보고 맡기도 했던 그 시간들을 어찌 잊겠는가. 살아남은 자로서 지게 된 무거운 빚을 어찌 갚을 수 있겠는가.
이제는 당시를 겪지 못한 사람들조차도 그날의 진실을 이해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채무로부터 영원히 자유로워 질 수 없다.
광주 학살의 원흉인 전두환이 사망한지 1년 하고도 6개월째다. 그의 유해는 어디에 있을까.
그는 생전 회고록에 ‘북녘땅이 내려다보이는 전방 고지에 백골로라도 남아 통일의 날을 맞고 싶다’고 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국가보훈처는 그의 사망 당일 “내란죄 등으로 실형 선고를 받아 국립묘지법상 국립묘지 안장 배제 대상”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지난 1997년 4월 17일 대법원에서 반란(내란)수괴·내란·내란목적살인 등 13가지의 죄목이 모두 유죄로 확정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가 사면됐다.
그의 유해는 유골함에 담겨 아직 그의 부인 이순자씨가 살아 있는 자택에 안치돼 있다는 게 정설이다. 결국 그 어디에도 묻히지 못했다. 유해 훼손 등 불상사를 염려해서다.
반면 노태우는 파주 통일동산 동화경모공원에 유해가 안치됐다. 전두환과 노태우는 둘 다 12·12 쿠데타의 주역들이고, 5·18 학살의 주역이며, 대통령을 지냈고, 내란의 수괴로서 징역형을 받았다가 사면됐다.
두 사람의 행적에서 다른 게 있다면 전두환은 추징금을 완납한 노태우와 달리 비협조적 태도로 일관하며 죽을 때까지 내지 않았다.또 전두환은 죽기 전에 그의 아들이 광주에 와서 사죄한 노태우와는 달리 사죄를 하지 않았다.
물론 사후이긴 하지만 전두환의 유족도 사죄했다. 최근 손자 전우원씨가가 광주를 찾아 무릎을 꿇었다. 그렇지만 그들의 죄가 씻겨지고 광주시민이 그들의 학살 만행을 용서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한일관계도 마찬가지다. 우리 민족을 짓밟고 착취했던 일본이 제대로 된 사죄를 하지 않고 있지만 혹여 그들의 유족이 사죄한다고 해서 그 죄가 없어지고 만행이 용서를 받을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일본이 100년 전 일로 무릎 꿇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고 보지 않는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말씀은 납득하기 어렵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역사를 잊은 미래는 없다”고 했다. 역사를 기억하고 근원을 파헤쳐 해결하지 못하면 폐해는 반복된다. 다시는 이땅에 그런 일이, 그런 원흉이 생겨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 뿌리를 뽑아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유족의 사죄로 어물쩡 넘어가서는 결코 안될 일이다. 이대로 넘어가면 전두환의 유해가 이 땅에 묻히고, 전두환 추징금 환수도 끝내 못하게 된다. 한일 관계 개선도 멋대로 해치우는 보수 정부가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기에 대비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앞서 천정배 전 의원은 지난 2019년에 ‘불법재산 끝장 환수법(공무원범죄몰수법·형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은 발의했다. 천 전 의원은 “전두환이 죽더라도 새로운 범죄수익이 발견될 경우 이를 끝까지 추적해서 몰수하고 추징해 불법재산이 후손에게까지 상속되는 불의한 일이 없도록 하려는 목적”이라고 취지를 밝혔다. 천 전 의원은 친적이나 제3자가 증여받은 재산도 몰수 추징하는 법도 내놓았다.
지난 1997년 대법원에서 확정된 전두환씨의 추징금은 총 2205억 원인데 현재까지 추징된 액수는 1279억 원에 불과하다. 전두환의 손자 전우원씨의 폭로 중에 전두환의 비자금과 관련한 대목이 관심을 끈다. 하지만 비자금이 나온다고 해도 추징은 불가능하다. 지난해 대법원은 서울 연희동 자택 별채에 대한 압류가 정당하다는 판단을 유지하면서도 전 전 대통령이 사망한 이상 추가 집행이 불가능하다는 판결을 확정했다.
비록 생전에 사죄를 받지 못했지만 만일 추징금이 모두 환수된다면 전두환의 유해가 땅에 묻히거나 뿌려지지 않을까 싶다.
이성오 기자 solee235@gwangna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