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재산목록 1호를 대하는 자세
정현아 경제부장
입력 : 2023. 02. 05(일) 18:27
학창시절 친구들과 섬 여행을 나선 적이 있다. 꽤나 큰 여객선을 타고 가야 하는 곳이었다. 선장인 친구 아버지 덕에 조타실에 들어가 보는 기회를 얻게 됐다. 우리 일행은 아주 잠깐이지만 배를 몰아봤다. 눈앞의 파도와 지장물들을 보며 허겁지겁 키를 돌리는 모습을 보던 선장께서 말씀하셨다. “뱃머리 바로 앞의 자잘한 것은 흘려보내고, 멀리 보이는 바닷길과 섬을 보면서 차분하게 키를 돌려보게나. 이 배는 생각 보다 커. 그래서 키를 돌려도 반응이 느리지. 그만큼 되돌아오는 데도 시간이 걸리고….”

주택건설업은 연관산업이 300개에 이른다고 한다. 집을 짓는 데 드는 자재가 많고, 여러 공정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단순히 건축을 하는 것도 이러하거니와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니 한국에서 집이 갖는 사회적 의미와 정책적 요인들은 다른 여타의 나라들에 견주지 못할 정도로 복잡다난하다. 집을 ‘재산목록 1호’로 삼고 주택마련을 인생의 꿈이자 목표로 생각하는 소시민도 적지 않다. 사회의 흐름과 구조까지 좌우할 정도로 덩치가 커지다 보니 집값을 잘못 다루다가 정권이 바뀐 것이 불과 몇 달 전의 일이다.

집값은 문재인 정권의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했다. 두더지 잡기 게임처럼 주택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비웃듯 부동산 가격은 뛰었다. 무려 스물여섯 번이라는 경이적인 대책과 처방에도 불구하고 가격을 잡는 데 실패했다. 여기에 세계 각국이 코로나19 방역을 빌미로 시중에 풀어놓은 현금은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불러왔고 급기야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금리를 올리는 방법으로 시중의 유동성을 흡수하고 있다. 뛰는 금리에 결국 부동산이 발목을 붙잡혔다. 한국의 집값 폭락도 이런 맥락에서 발생한 일이다. “문재인 정권도 못했던 집값을 잡았다”는 윤석열 정권 초기의 호기는 사라지고 이제는 부동산 경기 부양을 위해 총력하고 있다. 문 정권이 스물여섯 차례에 걸쳐 내놨던 시장 억제정책의 거의 대부분을 불과 몇 달만에 풀어놨다.

자본주의 경제에 있어 시장은 ‘보이지 않는 손(invisable hand)에 의해 움직인다. “인위적인 또는 강제적인 힘을 최대한 줄이고 이 손에, 즉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 시장주의자들의 주장이다. 자율은 국민이고 동시에 그들의 심리다. ‘경제는 심리다’라는 말의 원천인 이유이기도 하다.

정부는 집값을 누르고 있던 갖가지 규제를 해제한 것에 더해 급기야는 직접 개입하는 방안까지 들고 나왔다. 미분양 아파트를 정부가 사들인다는 것이다. 무려 27조 원에 이르는 정부 돈을 들여 매입한 뒤 가격이 안정되면 팔거나 공공임대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공정한 심판 내지는 유능한 질서유지 요원이어야 할 정부가 선수로 뛰겠다는 말과 다름 아니라는 이유로 각계의 신랄한 비판을 받았다. 결국 비등한 여론에 미분양 매입 카드는 당장 꺼내들지 않는 방향으로 선회했지만 나름 야심차게 내놓은 각종 부동산 부양대책까지 무용에 가깝게 흐트려버렸다. 더 큰 문제는 정부의 부동산정책 전반에 대한 신뢰는 물론 국민들의 심리를 더 크게 흔들어버렸다는 데 있다. 문재인 정권 5년 내내 급등세에 춤을 추는 부동산에 그렇게 시달렸는데, 이제는 급락하는 집값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됐다.

국민은 멘붕, 멘탈붕괴로 치닫고 있다.

주택가격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소득과 수급, 정책, 금리와 심리 등 크게 다섯 가지다. 여기에 환율과 해외부동산 동향까지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를 조합해 보면 현재 가장 큰 위력을 떨치는 금리가 내려야 채권과 주식 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그래야 비로소 부동산 가격도 안정될 수 있다는 말이다. 여기에는 최소 6개월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지금은 세계 각국이 시장에 과도하게 공급된 유동성을 잡기 위해 고금리 정책을 펴고 있고, 그 여파로 부동산 가격이 폭락해 있다. 비단 우리나라뿐아니다. 금리가 어느 정도 안정된 이후에야 비로소 부동산을 거론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끝도 없는 추락의 시기인지, 진짜 최저점인지 누구도 장담하기 어려운 시기이다. 부동산발 공포감이 엄습한 것은 사실이지만, 관찰하고 판단할 시간이 필요하다. 흙탕이 가라앉은 뒤에 물의 깊이를 가늠하는 것이 지혜임이 틀림없다. “이 배는 생각보다 커서 반응이 느리다. 되돌아 오는데도 시간이 걸리고….”
광남일보@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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