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다시 만난 오월, 대축제의 장으로…
김인수 사회교육부장
입력 : 2025. 05. 11(일) 17:25
기억하는가.

‘반역의 명령에 따라 배반의 총칼이 찾아든 광주 학살! 계엄군에 의해 30대 농아 가장이 곤봉에 맞아 죽고, 19살 처녀가 칼에 가슴을 찔리고, 시민들이 총에 맞아 죽고…. 이후 십 수년 동안 이 나라 국민은 이를 ‘광주사태’라고 불렀다. 국가 권력을 찬탈한 이들은 ‘사회 안정을 위한 폭도의 진압작전’이라고 표현했다. 또 참혹한 주검을 보듬고 진실만이라도 밝혀달라고 몸부림치는 고립무원의 광주를 ‘빨갱이의 도시’라고 규정했다.’

국립5·18민주묘지 5·18추모관에 적혀 있는 이 글을 보며 그날을 상기한다.

‘금남로’ ‘전남도청’ ‘계엄군’ ‘시민군’ ‘주먹밥’ ‘임을 위한 행진곡’…. 단어 하나하나에 당시의 아픔과 상흔, 시민의 불같은 연대, 포기할 수 없는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오롯이 느껴진다.

필자는 초등학교 6학년의 시선으로 1980년 5월의 광주를 목도했다.

서구 월산동 돌고개 인근에 살면서 고맙게도(?) 민주화운동의 경험치를 조금이나마 얻을 수 있었다.

당시 서부경찰서 앞 광송간(광주~송정) 도로에 탱크와 장갑차가 다니고, 가로수는 군데군데 뽑혀 있었다. 화정동 지하도로 앞에서는 군인들이 철조망을 치고 외부로 나가는 차량과 시민을 통제하는 저지선을 구축했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주먹밥을 만들어 시민군 차량에 전달하는 모습도 생생하다.

총을 든 시민군으로 가득 찬 버스가 도로를 달리며 “전두환은 물러가라” “김대중을 석방하라” “계엄령을 해제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고, 상공의 헬기에서는 “폭도들은 투항하라” 등의 메가폰 소리가 하루 종일 이어졌다.

전남대학교에 다니던 큰형과 고등학생이던 작은형은 비상계엄 동안 집 밖에 나가지도 못했다. 근처에 살던 삼촌이 계엄군 눈에 띄면 잡혀가니 절대로 집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고 어머니께 신신당부해서다.

계엄이 해제되고 얼마 되지 않은 무렵, 서울에 살던 친척이 집에 와서 ‘광주 사태는 간첩의 소행’이라고 억지 주장하는 소리를 듣고 뒷방에서 분해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금남로에 사는 부모님 지인이 계엄군 총에 맞아 사망했다는 소식까지…. 그날을 떠올리면 45년이 지난 지금도 등골이 오싹해진다.

가슴 벅찬 오늘, 청명한 날씨 속 그날을 기억하고 싶어 5·18광주민주묘지를 다시 찾았다.

민주열사들이 목숨을 바쳐 열어준 너무도 보물 같은 세상인데, 마음이 편치 않다.

1980년 계엄 정국에서 피로 물든 밤을 지새웠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건만 윤석열의 느닷없는 ‘12·3 비상계엄’으로 부활한 계엄의 밤을 또다시 목도하고, 이어진 대선 정국의 한복판에서 광주의 오월이 다시 찾아왔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의 만장일치 탄핵 선고와 조기 대선으로 민생경제는 파탄 날 지경인데 한덕수 대선 예비후보의 ‘광주 사태’ 발언이 화를 더 돋웠다. 또 박선영 진실화해위원장은 5·18 북한군 개입설을 용인하는 듯한 발언을 해 공분을 샀고, 지속적인 허위 사실을 유포한 인터넷 매체에 대한 고소도 잇따르고 있다. 학교 도서관에는 5·18민주화운동을 폄훼·왜곡하는 내용의 도서가 여전히 비치돼 있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

이처럼 5·18에 대한 왜곡과 폄훼가 계속되는 현실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누구를,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가?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끝없는 물음으로 광주의 오월정신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려면 오월정신을 헌법 전문에 반드시 수록해야 한다. 5·18민주화운동의 핵심 가치를 대변하는 오월정신에는 독재에 맞선 국민의 저항 의식과 민주주의 실현 의지가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다. 엄중한 탄핵 정국 속에서도 응원봉을 흔들며 민주주의를 열망한 시민들의 바람을 민주주의의 씨앗인 5·18과 이어주는 출발선이기도 하다.

올해의 5월은 축제의 장으로 만들어보자. 혼돈의 선거 시기와 겹쳤지만 오월 광주를 찾는 시민들이 해방 광주가 꿈꿨던 대동세상을 특별한 경험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해보자. 슬픔보다는 새로운 세상의 가능성과 표상을 보여주는 민주 대축제의 장으로 만들어보자.
김인수 기자 joinus@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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