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한 ‘현실 문화판’ 후련해지는 날 올까
고선주 문화특집부장
입력 : 2022. 11. 06(일) 17:20
고선주 문화특집부장
[데스크칼럼] 참 답답한 세상이다. 칼럼에서 참이라는 소리가 나도 모르게 먼저 삐져 나온다. 이태원 참사는 국격의 붕괴라는 말밖에 안나온다. 국가는 뭐 했을까 묻고 싶은 게 작금의 심정이다. 동남아시아와 중동에서나 일어날 법한 ‘압사’라니, 처참한 지경이다.

정국이 이태원 참사 충격으로부터 허우적대고 있는 요즘, 광주는 안녕할까 생각해 봤다. 오히려 ‘안녕 보다는 제대로 되는 게 있나’라는 물음에 답을 해야 할 듯하다. 모두들 생각이 없어서 그런다기보다는 옳은 소리 했다가 공격이나 받지 않을까 주저하는 문화분야 숙원사업들이 많다. 잘못 주장했다가는 반대 쪽 사람들로부터 비판은 물론, 인신공격까지 받을 수 있기에 몸을 사릴 수 밖에 없는 게 문화예술판의 첨예한 사안들이다. 그 첨예한 사안은 현상일 수도, 사람일 수도, 사업일 수도, 건축물일 수도 있다. 오늘은 건축물에 관한 이야기를 하겠다.

동전의 양면 같을 수 있는 데 남광주역사와 광주가톨릭평생교육원의 브레디관, 헨리관, 본관, 식당동에 관한 것이다. 2000년에 철거해 비교적 오늘날 사라지게 된 남광주역사는 당시에 올바른 판단이었을지 모르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어이없는 행위였다고 확신한다. 그때 ‘왜 그랬을까’ 생각해보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이런 가운데 지난주 2일 수요일 점심 때 광주가톨릭평생교육원(천주교광주대교구청)에서 열리고 있는 ‘제5회 비움나눔페스티벌’의 전시를 둘러본 뒤 갤러리 현 입구 북카페에서 전시관계자와 신부, 언론인 등 몇몇이 모여 커피를 마실 기회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필자는 등록문화재인 브레디관, 헨리관, 본관, 식당동에 대해 원형 보존을 설파했었다. 밖은 멀쩡한데 전시를 할 때 벽에 함부로 못을 박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제안드렸더니 그쪽에서도 수긍을 하는 모양새였다. 분명히 보존가치가 높은데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작품을 걸기 위해 여기 저기 박아놓은 못들이 꽤나 눈에 거슬렸기 때문에다. 이번에는 많이 박지 않고 예전에 박아놓은 못에 작품을 걸었다는 설명을 해왔다.

아울러 못에 거는 방법 밖에 없는 것은 아니니 이를 수정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줄 것을 부탁드렸다. 광주가 보존보다는 그동안 전통 건축물을 해체하거나 파괴하는 식의 도시개발이 많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어 하는 부탁이었다. 필자 마음에는 현존하는 근현대 건축물 중 광주가톨릭평생교육원의 건물이 최고 중 하나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또 하나는 광주비엔날레 신축 건물에 관한 생각이다. 이미 각본은 신축하는 것으로 짜여져 있다. 하지만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숨기지 않겠다.

임동 방직공장 부지와 근대산업유산 관련 건축물이다. 자본이 움직이는 일이라 쉽지는 않겠지만, 임동 방직공장 일대가 새로운 광주비엔날레 전시공간이 됐으면 하는 희망을 놓아본 적이 없다. 현실적 구도에서 어려운 주장일 수 있기는 하다.

그러나 1950년대 본래 군수물자를 생산하는 공장단지에서 중국에서 규모가 가장 큰 대형복합예술단지로 탈바꿈한 북경 798이나 옛 군수공장안 자리인 아르세날레의 본전시와 함께 카스텔로 공원인 자르디니에 국가관이 조성돼 운영 중인 베니스비엔날레, 나치 시절 강제노동수용소와 대규모 군수 공장이 있던 도시에서 ‘세계 미술의 중심지’라는 멋진 도시브랜드를 얻은 카셀 도큐멘타 등 많은 미술공간들이 옛 공장부지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이를 광주가 반면교사 삼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임동 방직공장은 이들 성공한 해외 미술축제의 공간과 가장 많이 닮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이곳이 비엔날레 전시공간이 될 경우 문화예술적으로 상당한 파급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믿음이다. 문화예술단체를 총집결해 아트블록 같은 곳으로 본격 육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상이라고 가둬두기에는 해외 성공 혹은 유사 사례가 널려 있기에 작금의 흐름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비가 새니까 등 신축에 대한 당위성은 인정한다. 그럼에도 현대식 신축건물에 무슨 역사와 전통 스토리를 담아낼 수 있을까 싶다. 그냥 새 건물이어야 한다면 더더욱 할말이 없다. 건물 역시 비엔날레의 명성에 걸맞는, 문화예술의 한 과정으로 진행되기를 고대한다.

이런 첨예한 사안들은 묵은 숙제처럼 광주 문화예술판을 음으로, 양으로 괴롭히고 있다. 거대한 물결처럼 누구 하나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고 휩쓸려 가는 형국이다. 먼 미래 후손들에게 덜 부끄러운 방식을, 더 많은 스토리를 전해줄 수 있는 방식이 무엇인가를 숙고해 선택하는 데 최선을 다했으면 한다. 답답한 현실 문화판이 후련해지는 날 올까.
광남일보@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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