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 학생에 '문화광주' 알릴 수 있어 보람"
[포커스 이사람] 서영국 광주디자인비엔날레 홍보위원
공직 은퇴 후 봉사활동으로 '제2인생' 시작
공직 은퇴 후 봉사활동으로 '제2인생' 시작
입력 : 2017. 09. 12(화) 19:58

광주디자인비엔날레가 대장정에 오른 지 4일째인 지난 11일 광주비엔날레주차장.
노령의 인상 좋은 한 자원봉사자가 버스에서 내린 광주 매곡초 학생과 선생님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이어 인솔자와 학생들을 전시관 쪽으로 안내했다. 전시관에서는 도슨트에게 설명을 부탁하기도 하고 차례대로 줄을 세워 안내를 조율했다. 도슨트가 없는 곳에서는 직접 비엔날레에 대한 간략한 설명도 빼놓지 않았다.
녹색의 자원봉사자 옷을 입고 디자인비엔날레 전시관 곳곳을 누비는 그는 바로 디자인비엔날레추진단 소속 ‘홍보위원’인 서영국씨(78)다.
서 씨는 평생을 철도공무원으로 살다 퇴임한 후 ‘제 2의 인생’을 광주비엔날레 홍보에 전념한 베테랑 홍보위원이다.
공직에 있을 때부터 제 2의 삶은 남을 위해 봉사를 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그는 퇴직 후 문화예술회관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문화예술’이라는 새로운 재미에 눈을 뜨게 됐고, 지난 2005년 제 1회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 자원봉사로 지원을 하면서 비엔날레와 인연을 맺었다.
6~11회의 ‘광주 비엔날레’부터 1~7회의 ‘광주디자인비엔날레’까지 총 13차례의 비엔날레에서 홍보위원이라는 막중한 직책을 맡았다.
홍보위원은 전국 초·중·고와 대학, 기관 등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행사로 초대하는 ‘비엔날레의 얼굴’이다.
서 씨는 지난 13년간 학교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갔다. 가보지 않은 학교가 없다고 자신할 정도다. 가는 곳마다 다양한 사연을 남겼다.
강원대 삼척캠퍼스에 갔을 때는 노령의 서씨가 머나먼 광주에서 찾아온 것에 감동한 한 교수가 디자인학과 학생 250명과 함께 광주비엔날레에 방문하기도 했다.
서 씨는 “한번은 홍보 대상이 아닌 인천가톨릭대학에 방문했는데, 교수와 학생들이 오히려 우리를 반겨줘 기억에 남는다”며 “학생 300여 명을 광주에서 다시 만났을 때 홍보위원 일에 큰 자부심을 느꼈다”고 소회했다.
올해도 지난 6~7월, 광주·전남 초·중·고교와 대학 500여 곳을 돌아다니며 홍보를 했다. 이 과정을 거쳐 광주에 온 학생들이 수 만명에 이른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그냥 단순한 홍보가 아닌 학생들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게 디자인비엔날레에 대한 주제와 내용에 대해 전문적으로 소개해주는 그의 열정도 한 몫했다.
실제로 그는 이번 디자인비엔날레 주제인 ‘미래들’에 대해 어떻게 미래가 변화될 것인지에 대한 설명과 함께 전시관에서 직접 체험할 수 있는 VR·인공지능·로봇 등을 학생들에게 추천해 주고 있다.
디자인비엔날레 개막 후 그는 자원봉사자로 변신했다.
인솔부터 안내, 간략한 전시관 소개, 청소 등 보이지 않은 곳에서 비엔날레가 원활히 돌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서 씨는 “올해 홍보위원이 기존의 4명에서 2명으로 줄어들다 보니 전국을 대상으로 홍보를 하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며 “그래도 10년 넘게 광주의 얼굴로써 타지사람들에게 비엔날레를 이해시키는 역할을 해온 것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광주비엔날레와 디자인비엔날레의 성패가 나에게 달려있다는 각오로 앞으로도 홍보활동에 전념하겠다”면서 “문화중심도시 광주 발전에 일익을 담당하는 게 남은 인생의 목표”라고 덧붙였다.
노령의 인상 좋은 한 자원봉사자가 버스에서 내린 광주 매곡초 학생과 선생님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이어 인솔자와 학생들을 전시관 쪽으로 안내했다. 전시관에서는 도슨트에게 설명을 부탁하기도 하고 차례대로 줄을 세워 안내를 조율했다. 도슨트가 없는 곳에서는 직접 비엔날레에 대한 간략한 설명도 빼놓지 않았다.
녹색의 자원봉사자 옷을 입고 디자인비엔날레 전시관 곳곳을 누비는 그는 바로 디자인비엔날레추진단 소속 ‘홍보위원’인 서영국씨(78)다.
서 씨는 평생을 철도공무원으로 살다 퇴임한 후 ‘제 2의 인생’을 광주비엔날레 홍보에 전념한 베테랑 홍보위원이다.
공직에 있을 때부터 제 2의 삶은 남을 위해 봉사를 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그는 퇴직 후 문화예술회관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문화예술’이라는 새로운 재미에 눈을 뜨게 됐고, 지난 2005년 제 1회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 자원봉사로 지원을 하면서 비엔날레와 인연을 맺었다.
6~11회의 ‘광주 비엔날레’부터 1~7회의 ‘광주디자인비엔날레’까지 총 13차례의 비엔날레에서 홍보위원이라는 막중한 직책을 맡았다.
홍보위원은 전국 초·중·고와 대학, 기관 등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행사로 초대하는 ‘비엔날레의 얼굴’이다.
서 씨는 지난 13년간 학교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갔다. 가보지 않은 학교가 없다고 자신할 정도다. 가는 곳마다 다양한 사연을 남겼다.
강원대 삼척캠퍼스에 갔을 때는 노령의 서씨가 머나먼 광주에서 찾아온 것에 감동한 한 교수가 디자인학과 학생 250명과 함께 광주비엔날레에 방문하기도 했다.
서 씨는 “한번은 홍보 대상이 아닌 인천가톨릭대학에 방문했는데, 교수와 학생들이 오히려 우리를 반겨줘 기억에 남는다”며 “학생 300여 명을 광주에서 다시 만났을 때 홍보위원 일에 큰 자부심을 느꼈다”고 소회했다.
올해도 지난 6~7월, 광주·전남 초·중·고교와 대학 500여 곳을 돌아다니며 홍보를 했다. 이 과정을 거쳐 광주에 온 학생들이 수 만명에 이른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그냥 단순한 홍보가 아닌 학생들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게 디자인비엔날레에 대한 주제와 내용에 대해 전문적으로 소개해주는 그의 열정도 한 몫했다.
실제로 그는 이번 디자인비엔날레 주제인 ‘미래들’에 대해 어떻게 미래가 변화될 것인지에 대한 설명과 함께 전시관에서 직접 체험할 수 있는 VR·인공지능·로봇 등을 학생들에게 추천해 주고 있다.
디자인비엔날레 개막 후 그는 자원봉사자로 변신했다.
인솔부터 안내, 간략한 전시관 소개, 청소 등 보이지 않은 곳에서 비엔날레가 원활히 돌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서 씨는 “올해 홍보위원이 기존의 4명에서 2명으로 줄어들다 보니 전국을 대상으로 홍보를 하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며 “그래도 10년 넘게 광주의 얼굴로써 타지사람들에게 비엔날레를 이해시키는 역할을 해온 것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광주비엔날레와 디자인비엔날레의 성패가 나에게 달려있다는 각오로 앞으로도 홍보활동에 전념하겠다”면서 “문화중심도시 광주 발전에 일익을 담당하는 게 남은 인생의 목표”라고 덧붙였다.
임진섭 기자 crusade52@gwangna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