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이야기] "영어 통역 봉사가 85세 인생의 완성"
최고령 영어 통역 해설사 오용섭 할아버지
충민사서 13년째 통역·해설사로 봉사활동
입력 : 2017. 05. 03(수) 17:45
지난 3월 광주 충민사를 찾은 외국인들에게 영어로 해설을 하는 오용섭 문화관광해설사.
지난 3월 22일 오용섭 문화관광해설사가 충민사를 찾아온 31사단 장병들에게 역사와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


글로벌 시대를 맞아 영어를 한참 공부 중인 이 시대의 뭇 학생들과 젊은이들에게 원어민 못지 않는 영어실력 하나만으로 선망의 눈초리를 받고 있는 백발의 할아버지가 있다.

전국 3000여명의 문화관광해설사 중에서도 외국어 통역으로 최고령인 85세의 나이에 한국어보다 영어로 말하는 것이 더 쉽다며 무등산 아래 충민사에서 통역과 해설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오용섭(85) 할아버지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문화관광해설사는 광주의 관광지와 유적지에서 국내외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역사·문화·자연 등 관광자원 전반에 대한 전문적인 해설을 하는 자원봉사자다. 광주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광주의 이미지를 그대로 전해주는 최전방에 서 있는 사람들인 셈이다.

그는 이런 해설사 중에서도 영어와 일본어의 해설과 통역이 가능한 외국어 능력, 고령에서 나오는 푸근함과 친절함 등으로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광주의 따뜻한 정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13년 전부터 시작하게 된 오 할아버지의 문화관광해설은 그의 85년 인생을 한 단어로 표현 할 수 있는 ‘영어 통역’이라는 일의 마침표다.

일제시대인 국민학교 시절 아일랜드, 미국, 독일 등 다양한 국가에서 선교를 온 가톨릭 신부님들로부터 영어를 배우면서 그의 인생에서 영어는 가장 중요한 능력이자 인생의 동반자가 됐기 때문이다.

오씨는 “당시 일제가 한글을 못 배우게 해 영어를 배워야겠다는 일념으로 신부님 밑에서 복사직을 맡아 라틴어를 따라하면서 본격적으로 배우게 됐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렇게 배운 영어는 6·25 전쟁이 발발하고 학도병으로 지원해 춘천 보충대로 가면서 인생의 첫 번째 전환점을 만들어 줬다. 그곳에서 바로 1기 카투사에 뽑혔기 때문이다.

오씨는 그렇게 6·25 전쟁 기간을 미 40사단 소속으로 복무했다. 그리고 이것이 기회가 돼 장교로 임관, 통역장교 등 외국어 관련 업무를 하며 1975년 중령으로 제대했다.

전역 후에도 오씨는 영어와 관련된 일을 계속 하게 된다. 영어가 천직이었던 셈이다.

80년대 초까지 미 공군부대 통역으로 광주비행장에서 근무를 했고, 광주 동구 경찰서 인근 학원에선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외국어 강사로 활동했다.

이외에 북구청에서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외국어 교육부터 1995년에는 제 1회 광주비엔날레에서 관객과 기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통역 봉사를 맡기도 했다.

이런 오 할아버지의 문화관광해설사 활동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의 인생을 관통하는 ‘영어’와 ‘사람 만나는 것’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봉사활동이었기 때문이다.

오씨는 “군인으로 살 때는 세상이 참 좁다고 느끼며 권태로울 때도 있었는데, 전역 후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고 내 능력으로 봉사를 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며 “‘내가 하고자 하는 의욕이 삶을 살게 해준다’는 것으로 결국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 삶의 전부지 않나”라며 노령에 봉사활동을 시작한 이유를 밝혔다.

봉사활동을 하며 오씨의 하루의 시작은 공부로 시작하게 됐다.

문화관광해설사는 관광지의 유래부터 스토리 등 정확한 내용을 완벽하게 숙지하고 설명을 해야 하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매년 시험을 보고 일정한 점수 이상으로 합격을 해야 활동도 가능하다.

여기에 그는 평생을 사용한 외국어라도 쓰지 않으면 잊어 먹는다는 말한다. 일제시대에 배운 영어와 일본어를 아직도 잊지 않은 것은 바로 평생을 걸쳐 반복된 공부를 통한 노력의 결과라는 것이다.

그는 매일 아침 5시에 시작하는 EBS의 일본어 교육부터 6시 토플, 7시 40분 영어 프로그램을 통해 하루를 시작한다.

오 할아버지는 앞으로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은퇴계획이 없다고 말한다.

그는 “통역이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 외국인부터 해설에 감사하다고 손편지를 써서 건넨 어린아이까지 이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내 청춘이 예전으로 돌아온 느낌을 받는다”며 “여기가 내 인생의 완성이다”고 강조했다.
임진섭 기자 crusade52@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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