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명화의 가치와 시대의 무게 사이
정채경 문화체육부 차장 대우
입력 : 2026. 09. 25(금)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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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채경 문화체육부 차장 대우
국립아시아문화전당재단의 특별전 ‘인상파, 찬란한 순간들’이 지역사회의 뜨거운 화두로 떠올랐다. 모네와 르누아르, 반 고흐 등 거장들의 원화를 선보이는 대형 전시인 만큼 사전예매권이 4만여장 팔릴 정도로 관객들의 기대가 컸다. 전시가 명절 연휴 초입에 개막한 만큼, 추석 연휴 동안에도 많은 시민들이 전시장을 찾았다.

전시의 중심축인 인상주의의 미술사적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19세기 프랑스에서 아카데미즘의 권위적 형식에 맞서 화실 밖으로 나가 빛과 일상을 담아낸 인상파는 기존 질서에 균열을 낸 위대한 도전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 사조는 민주와 인권의 가치를 품은 광주에서 소개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예술적 유산이다.

논란은 작품 그 자체보다 전시를 둘러싼 맥락에서 비롯됐다. 이번 전시는 예루살렘 이스라엘 박물관의 소장품으로 꾸려졌고, 주한 이스라엘대사관이 후원 기관으로 참여했다. 가자지구의 비극을 향한 국제사회의 우려가 깊어지는 가운데 시민사회와 5·18 단체들이 예술을 통한 이미지 관리 가능성을 우려하며 목소리를 높인 이유다.

물론 전시가 2년 전부터 준비된 국제전이라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작품 대여와 계약, 운송, 보험, 예산 등 수많은 절차가 필요한 장기 기획의 특성상, 준비 당시와 개막 시점 사이에 달라진 국제정세를 곧바로 반영하기란 쉽지 않다. 세계적 명화를 지역 관객에게 선보이려 했던 기관의 기획 의도와 노력 자체를 가볍게 볼 일은 아니다.

다만 전시는 기획될 때와 문을 열 때의 시간적 간극을 갖는다. 그 사이 사회적 맥락이 달라졌다면, 공공 문화기관은 그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설명할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 이는 특정 기관의 잘잘못만을 따지는 문제가 아니라, 국제 교류 전시가 오늘의 정치·외교적 현실과 만날 때 피하기 어려운 과제에 가깝다.

예술은 현실과 완전히 분리돼 존재하기 어렵다. 권력을 비판하고 시대의 아픔을 드러내는 것은 예술이 오랫동안 해온 역할이다. 반대로 외교적 이해관계나 국가 이미지와 맞물릴 때, 예술의 의미는 의도와 다르게 읽힐 수 있다. 이 미묘한 경계를 살피는 일은 공공 문화기관과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몫이다.

이번 논란을 단순한 찬반의 이분법으로 가를 수는 없다. 작품의 미학적 가치와 공공의 책임은 함께 저울질돼야 한다. 광주라는 특수한 정체성을 지닌 도시에서 국제 전시는 단순히 좋은 작품을 들여오는 것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협력 기관의 성격, 전시가 열리는 시점, 시민사회가 제기한 우려에 귀 기울이며 답하는 과정까지 전시의 일부가 되기 때문이다.

예술을 정치에 종속시키자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예술의 진정한 자율성과 가치를 지키기 위해 더 투명한 원칙과 소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제 교류의 문을 닫아걸자는 게 아니라, 그 문을 어떤 기준과 태도로 열 것인지 함께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번 논란은 광주에서 국제 전시가 어떤 기준과 설명 속에서 열려야 하는지 되묻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좋은 작품을 들여오는 일과 시민사회가 제기한 우려에 답하는 일은 서로 충돌하는 과제가 아니다. 작품의 아름다움과 공공의 책임이 함께 논의될 때, 광주의 전시는 더 단단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정채경 기자 view2018@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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