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세평]문화예술교육 이데아-고립을 넘어 공동체 치유로
김홍석 G-Kunst연구소장
입력 : 2026. 05. 20(수)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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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석 G-Kunst연구소장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현실 세계를 본질인 ‘이데아(Idea)’의 그림자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그는 동굴 속에 갇힌 죄수들이 벽에 비친 그림자를 진실이라 믿듯, 인간이 감각에 의존해 본질을 놓치고 있음을 경계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은 어떠한가. 눈부신 경제 성장과 유례없는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지독한 고독과 세대 간의 갈등, 그리고 존재의 의미를 잃어가는 정신적 빈곤이 자리 잡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번영이라는 이름의 화려한 그림자에 갇혀, 인간다운 삶의 본질이라는 이데아를 잊고 사는 것은 아닐까. 이 지점에서 우리는 문화예술교육의 가치를 다시금 소환해야 한다. 과거 예술은 단순히 아름다움을 모방하거나 향유하는 유희적 측면에 머물렀으나, 현대적 의미의 문화예술교육은 그림자에 갇힌 우리를 일깨워 본질적인 삶의 가치로 인도하는 통로가 된다. 예술은 보이지 않는 인간의 내면을 가시화하고,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게 하며, 파편화된 개인을 다시금 공동체의 일원으로 묶어주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가 주목하는 예술의 힘이 전해준 사회적 치유의 실천 사례들은 많다.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사회적 난제를 해결하고 시민의 삶을 치유하려는 시도는 이미 세계적인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사례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 영국은 외로움이나 경증 우울증을 겪는 시민에게 약물 처방 대신 지역사회의 예술 활동을 연결해 주는 ‘사회적 처방’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차원을 넘어, 국가 전체의 의료비를 절감하고 시민의 자존감을 회복시키는 실질적인 정책으로 기능한다.
독일의 ‘쿠부스(KUBUS) 프로젝트’ 역시 주목할 만하다. 은퇴를 맞이한 고령층이 자신의 생애를 기록하고 이를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이 프로그램은 노년기를 ‘쇠퇴’나 ‘종말’이 아닌, 삶의 경험이 무르익어 완성되는 시기로 재정의한다. 또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El Sistema)’는 총 대신 악기를 쥐여줌으로써 빈민가 아이들을 범죄로부터 구출하고 지역 사회에 희망을 심어줬다. 이러한 사례들은 문화예술이 개인의 영혼을 어루만지는 것을 넘어, 병든 사회를 고치는 강력한 ‘사회적 치유’의 도구임을 증명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이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고 있다. 100세 시대의 노년은 더 이상 사회적 역할에서 물러나 휴식을 취하는 짧은 기간이 아니다. 그것은 인생의 전반전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자아를 발견해야 하는, 어쩌면 가장 긴 ‘제3의 인생’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의 고령층은 급격한 디지털화와 가족 해체 속에서 유례없는 소외와 고독사라는 위협 앞에 서 있다. 이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생애주기별 문화예술교육’이다. 교육은 학교 울타리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요람에서 무덤까지 인간의 전 생애에 걸쳐 지속돼야 한다.
특히 노년기의 예술 교육은 단순한 서예나 노래 교실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자신의 삶을 서사화하고, 이를 다양한 매체로 표현하며 사회와 소통하는 과정이 중심이 돼야 한다. 예술을 통해 노인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스스로 확인하고, 사회는 그들이 가진 삶의 지혜라는 이데아를 공유받게 된다.
예술은 논리적 언어보다 강력한 감정적 언어다. 오늘날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세대 갈등은 단순히 가치관의 차이를 넘어 서로에 대한 이해와 경험의 부재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함께 연극 무대를 꾸미거나, 청년이 노인의 인생 이야기를 듣고 이를 글이나 그림으로 옮기는 ‘세대 공감 프로그램’은 놀라운 마법을 부린다. 예술이라는 공통의 장 안에서 세대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인간으로서 느끼는 보편적인 감정과 ‘삶의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정서적 교류는 파편화된 개인들을 다시 공동체의 유대감으로 묶어주는 접착제가 된다. 내가 만든 노래가 이웃에게 닿고, 이웃의 춤이 나에게 위로가 될 때, 사회적 안전망은 국가의 복지 행정을 넘어 시민들 사이의 ‘정서적 연대’로 확장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꿈꾸는 건강한 공동체의 모습이다.
필자는 고등학교 1학년 초부터 음악가의 길을 걷고자 연습실에서 외롭게 나 자신과 싸우는 꿈많은 음악학도였다. 기나긴 학업 과정을 모두 마치고 1996년에 귀국해 독창회와 오페라 주역으로 데뷔했다. 연주자와 강단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며 꿈같은 시간들을 보냈지만 2009~2010년 정율성국제음악제 집행위원장과 조직위원장을 맡으면서 나를 깨운 단어는 ‘통섭(consilience)’이었다. 대학을 사직하고 문화예술 경영자가 되고자 했던 것도 이 단어가 안겨준 선물이었다. 15년 여정의 문화기관 퇴임 후 평소 꿈꿔왔던 문화예술교육에 관하여 현장에서 느꼈던 예술 활동과 문화예술행정을 접목하여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다. 교육을 수강하고 문화예술교육사 자격을 취득한 이들이 사회에 나가 문화예술교육의 전도자가 되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강단에 선다.
플라톤이 갈망했던 이상 국가의 이데아는 하늘 위가 아니라, 우리가 예술을 통해 서로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인간다운 품격을 회복하는 바로 그 현장에 존재한다.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관심은 우리가 맞이할 미래에 대한 가장 따뜻하고도 확실한 보장이다. 이제 국가와 사회가 함께 나서서 문화예술교육의 토양을 비옥하게 다져야 할 때다. 그 토양 위에서 피어날 수많은 삶의 이야기들이 우리 사회를 더욱 풍요롭고 아름답게 만들 것임을 확신한다.
세계가 주목하는 예술의 힘이 전해준 사회적 치유의 실천 사례들은 많다.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사회적 난제를 해결하고 시민의 삶을 치유하려는 시도는 이미 세계적인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사례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 영국은 외로움이나 경증 우울증을 겪는 시민에게 약물 처방 대신 지역사회의 예술 활동을 연결해 주는 ‘사회적 처방’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차원을 넘어, 국가 전체의 의료비를 절감하고 시민의 자존감을 회복시키는 실질적인 정책으로 기능한다.
독일의 ‘쿠부스(KUBUS) 프로젝트’ 역시 주목할 만하다. 은퇴를 맞이한 고령층이 자신의 생애를 기록하고 이를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이 프로그램은 노년기를 ‘쇠퇴’나 ‘종말’이 아닌, 삶의 경험이 무르익어 완성되는 시기로 재정의한다. 또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El Sistema)’는 총 대신 악기를 쥐여줌으로써 빈민가 아이들을 범죄로부터 구출하고 지역 사회에 희망을 심어줬다. 이러한 사례들은 문화예술이 개인의 영혼을 어루만지는 것을 넘어, 병든 사회를 고치는 강력한 ‘사회적 치유’의 도구임을 증명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이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고 있다. 100세 시대의 노년은 더 이상 사회적 역할에서 물러나 휴식을 취하는 짧은 기간이 아니다. 그것은 인생의 전반전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자아를 발견해야 하는, 어쩌면 가장 긴 ‘제3의 인생’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의 고령층은 급격한 디지털화와 가족 해체 속에서 유례없는 소외와 고독사라는 위협 앞에 서 있다. 이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생애주기별 문화예술교육’이다. 교육은 학교 울타리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요람에서 무덤까지 인간의 전 생애에 걸쳐 지속돼야 한다.
특히 노년기의 예술 교육은 단순한 서예나 노래 교실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자신의 삶을 서사화하고, 이를 다양한 매체로 표현하며 사회와 소통하는 과정이 중심이 돼야 한다. 예술을 통해 노인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스스로 확인하고, 사회는 그들이 가진 삶의 지혜라는 이데아를 공유받게 된다.
예술은 논리적 언어보다 강력한 감정적 언어다. 오늘날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세대 갈등은 단순히 가치관의 차이를 넘어 서로에 대한 이해와 경험의 부재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함께 연극 무대를 꾸미거나, 청년이 노인의 인생 이야기를 듣고 이를 글이나 그림으로 옮기는 ‘세대 공감 프로그램’은 놀라운 마법을 부린다. 예술이라는 공통의 장 안에서 세대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인간으로서 느끼는 보편적인 감정과 ‘삶의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정서적 교류는 파편화된 개인들을 다시 공동체의 유대감으로 묶어주는 접착제가 된다. 내가 만든 노래가 이웃에게 닿고, 이웃의 춤이 나에게 위로가 될 때, 사회적 안전망은 국가의 복지 행정을 넘어 시민들 사이의 ‘정서적 연대’로 확장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꿈꾸는 건강한 공동체의 모습이다.
필자는 고등학교 1학년 초부터 음악가의 길을 걷고자 연습실에서 외롭게 나 자신과 싸우는 꿈많은 음악학도였다. 기나긴 학업 과정을 모두 마치고 1996년에 귀국해 독창회와 오페라 주역으로 데뷔했다. 연주자와 강단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며 꿈같은 시간들을 보냈지만 2009~2010년 정율성국제음악제 집행위원장과 조직위원장을 맡으면서 나를 깨운 단어는 ‘통섭(consilience)’이었다. 대학을 사직하고 문화예술 경영자가 되고자 했던 것도 이 단어가 안겨준 선물이었다. 15년 여정의 문화기관 퇴임 후 평소 꿈꿔왔던 문화예술교육에 관하여 현장에서 느꼈던 예술 활동과 문화예술행정을 접목하여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다. 교육을 수강하고 문화예술교육사 자격을 취득한 이들이 사회에 나가 문화예술교육의 전도자가 되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강단에 선다.
플라톤이 갈망했던 이상 국가의 이데아는 하늘 위가 아니라, 우리가 예술을 통해 서로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인간다운 품격을 회복하는 바로 그 현장에 존재한다.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관심은 우리가 맞이할 미래에 대한 가장 따뜻하고도 확실한 보장이다. 이제 국가와 사회가 함께 나서서 문화예술교육의 토양을 비옥하게 다져야 할 때다. 그 토양 위에서 피어날 수많은 삶의 이야기들이 우리 사회를 더욱 풍요롭고 아름답게 만들 것임을 확신한다.
김홍석 gn@gwangnam.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