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슬로건과 일상의 간극
김은지 산업부 기자
입력 : 2026. 05. 19(화)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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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지 산업부 기자
광주는 오래전부터 ‘AI 중심도시’를 미래 비전으로 내세우며 대한민국 인공지능 대전환(AX) 시대를 선도하겠다는 포부를 밝혀왔다. 도시 곳곳의 행정 슬로건에는 늘 ‘AI’라는 이름이 약속처럼 붙었고, 거시적 지표를 포장하는 수사들은 언제나 화려했다.

외형만 보면 광주는 이미 미래 산업의 중심에 선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지역민들이 체감하는 일상의 현실은 조금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최근 한국소비자원이 발표한 ‘AI 시대 소비생활 진단’ 보고서는 그동안 가려져 있던 괴리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조사 결과 광주·전남을 포함한 호남권의 AI 인지율은 전국 5대 광역권 중 가장 낮았고, 실제 삶 속에서 AI를 중요하게 활용한다는 응답 역시 전국 평균을 밑돌았다. 심지어 이미 보편화된 앱 기반 디지털 결제나 전자상거래 이용률마저 수도권과 큰 차이를 보이며 하위권에 머물렀다.

대한민국 AI 대표도시를 자처하는 곳에서, 정작 시민들은 가장 기본적인 디지털 서비스의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 통계가 가리키는 본질은 단순히 지역의 기술 수준이 뒤처졌다는 비판에 그치지 않는다. 그보다 시민들이 “AI가 내 삶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가”에 대한 실질적인 경험 자체를 못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그동안 우리의 AI 정책은 주로 산업과 기업, 즉 거시적인 공급자 중심으로 흘러왔다. 기업을 유치하고 인프라를 구축해 연구개발 성과를 내는 데는 많은 행정력이 집중됐지만, 정작 그 기술을 일상에서 누려야 할 시민들의 접근성이나 체감도는 상대적으로 시야에서 멀어져 있었다.

아무리 거창한 선언과 성과가 뒤따른다 한들, 그것이 시민의 생활 변화로 연결되지 못한다면 체감 온도는 낮을 수밖에 없다. 특히 고령층 비율이 높은 지역의 특성을 고려할 때, 이러한 디지털 격차는 단순한 불편을 넘어 삶의 질 격차로 이어지는 시스템의 공백을 의미하기도 한다.

외형적 숫자에만 몰두할 때 누군가의 소외는 당연한 것처럼 가려지기 쉽다. 기술 격차가 결국 지역 내 만족도의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현실이 되고 있다면, 이제는 우리가 지향해온 ‘AI 도시’의 방향을 다시 점검해봐야 한다.

지금 광주에 필요한 것은 기술의 화려함을 과시하는 또 다른 선언이 아니다. 거시적 성과만큼이나, 동네 주민센터에서 어르신들이 AI 행정서비스를 자연스럽게 누리고 골목길 소상공인이 디지털 도구를 통해 실제 일상의 변화를 체감하게 만드는 ‘생활 밀착형 전환’이 필요하다.

도시의 진짜 경쟁력은 화려한 구호가 아니라, 평범한 시민들의 일상이 얼마나 편리해졌는가에서 증명된다. 거창한 미래 비전보다 동네 골목길에서 먼저 체감되는 기술, 광주의 AI 정책이 마주한 과제는 이제 그리 멀지 않은 일상 속에 있다.
김은지 기자 eunzy@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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