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고향을 잃은 시대, 우리는 어디에 살고 있는가
강나루 문학평론가
입력 : 2026. 03. 19(목)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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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나루 문학평론가
현대인은 누구보다 많은 공간을 지나며 살아간다. 집과 회사, 지하철과 카페, 쇼핑몰과 플랫폼 속 화면을 끊임없이 이동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는 점점 더 “어디에도 살고 있지 않다”는 감각에 사로잡힌다. 이동은 많아졌지만 머무름은 줄었고, 스쳐 가는 공간은 늘어났으나 자리 잡을 장소는 사라지고 있다.
공간이 물리적 좌표라면, 장소는 기억과 관계와 시간이 스며든 정신의 좌표이다. 한 사람이 오래 걸어 다닌 골목, 계절마다 빛의 방향이 달라지는 창가, 자주 앉던 의자의 감촉, 같은 얼굴들이 축적해 온 침묵과 인사가 장소를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누구나 그곳에서만 가능한 냄새와 표정과 말투가 나타나는 공간, 그것을 장소라고 말하고, 인간은 그 장소 안에서 자기 삶의 밀도를 여러 사연과 추억으로 진하게 농축한다. 이를테면 긴장을 풀 수 있는 정신의 고향이다.
문제는 오늘의 삶이 이 장소성을 급속히 소거하고 있다는 데 있다. 어디서나 비슷한 프랜차이즈, 잦은 이주를 강요하는 주거 현실, 속도만을 요구하는 이동 체계로 가득 찬 사회에서 정을 붙이고 삶을 뿌리내리기는 쉽지 않다. 우리는 편리한 공간 속에서 살지만, 정작 자기 존재를 붙들어 둘 자리 하나 갖지 못한다. 현대인은 고향을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일찍이 공간과 장소에 깊은 관심을 가진 지리학자 에드워드 렐프는 ‘내가 그 안에 속해 있다고 느끼는 삶의 자리’를 장소라고 정의한 바 있다. 이러한 장소의 상실은 곧 ‘나’의 상실로 이어진다. 사람의 내면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인간의 내부는 고요, 체류, 기억, 반복, 사유를 통해 형성된다. 그러나 오늘의 현대인은 쉬지 않고 반응하고 소비하느라 자신 안으로 침잠하여 경험과 추억을 내재화할 여유를 잃고 있다. 바쁘게 살아가는 수많은 타인의 속도에 맞춰 살아가는 동안 나의 내면 또한 타인에게 맞추느라 자기 목소리는 점점 희미해진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피곤함을 호소하면서도, 정작 무엇이 자신을 지치게 하는지 정확히 말하지 못한다. 우리의 외부에는 수많은 자극으로 가득 차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내면은 고요를 즐기지 못하고, 과거를 곱씹거나 추억할 여유를 갖지 못하기 때문에 참담할 정도로 황폐해져만 가고 있다.
이러한 시대이기에 더욱 문학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페이지 끄트머리를 잡아 넘기는 짧지 않은 순간, 독자는 효율과 타인에게서 벗어나 오롯이 자신을 위해 침잠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고 시를 감상하는 비효율의 시간은 사라져 가는 고향의 감각을 복원하고, 무너진 내면의 언어를 다시 세운다. 한 편의 소설과 시는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갈수록 희미해지는 고향의 감각을 보강함으로써 ‘나’는 도시를 효율적으로 작동시키기 위한 톱니바퀴가 아닌, 한 ‘사람’임을 확인하는 조력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좋은 문학은 언제나 인간을 어딘가에 다시 살게 한다. 그것은 잊힌 골목을 되살리고, 이름 없는 방을 기억의 장소로 바꾸며, 무심히 지나친 풍경 속에서 존재의 떨림을 발견하게 한다. 내가 글을 쓰고 읽는 순간은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를 떠올리고 속박됨으로써 미래에도 나로써 존재할 수 있는 강력한 근거를 마련해주는 때이다.
결국 오늘 우리는 한 뼘이라도 더 넓은 집을 얻으려 노력할 것이 아니라, 더 정겹고 편안해지는 ‘우리 동네’를 되찾아야 한다. ‘우리 동네’를 되찾는 일은 진부하디 진부한 지역을 사랑하자는 구호가 아니라, 나의 삶을 다시 나의 것으로 만들려는 실존의 노력이다. 내가 사랑할 우리 동네를 되찾았을 때, 비로소 나는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 재물에 집착하고 쉽게 절망하여 자신을 버리지 않는 강한 사람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 흔히들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이 가장 무섭다고 한다. 세계에서 손에 꼽게 안전한 거리라는 우리나라의 거리에서, 때론 섬짓함을 느끼고 불안을 느끼는 것은 자신조차 갖지 못하여 잃을 것이 없는 사람들이 배회하는 도시에 살기 때문인 것은 아닐까? 내가 있을 장소를 잃은 인간은 쉽게 흔들리지만, 자기 삶의 자리를 가진 인간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지금 우리 시대의 위기는 어쩌면 주거의 위기나 공동체의 위기 이전에, 인간 존재의 위기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위기 한복판에서 현대인은 자신의 내부를 함께 잃어가고 있다. 고향을 잃고 방황하는 시대에, ‘우리는 지금 어디를 지나고 있는가’의 답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대신, ‘우리는 지금 어디에서 살고 있는가’를 궁리하고 해결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
공간이 물리적 좌표라면, 장소는 기억과 관계와 시간이 스며든 정신의 좌표이다. 한 사람이 오래 걸어 다닌 골목, 계절마다 빛의 방향이 달라지는 창가, 자주 앉던 의자의 감촉, 같은 얼굴들이 축적해 온 침묵과 인사가 장소를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누구나 그곳에서만 가능한 냄새와 표정과 말투가 나타나는 공간, 그것을 장소라고 말하고, 인간은 그 장소 안에서 자기 삶의 밀도를 여러 사연과 추억으로 진하게 농축한다. 이를테면 긴장을 풀 수 있는 정신의 고향이다.
문제는 오늘의 삶이 이 장소성을 급속히 소거하고 있다는 데 있다. 어디서나 비슷한 프랜차이즈, 잦은 이주를 강요하는 주거 현실, 속도만을 요구하는 이동 체계로 가득 찬 사회에서 정을 붙이고 삶을 뿌리내리기는 쉽지 않다. 우리는 편리한 공간 속에서 살지만, 정작 자기 존재를 붙들어 둘 자리 하나 갖지 못한다. 현대인은 고향을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일찍이 공간과 장소에 깊은 관심을 가진 지리학자 에드워드 렐프는 ‘내가 그 안에 속해 있다고 느끼는 삶의 자리’를 장소라고 정의한 바 있다. 이러한 장소의 상실은 곧 ‘나’의 상실로 이어진다. 사람의 내면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인간의 내부는 고요, 체류, 기억, 반복, 사유를 통해 형성된다. 그러나 오늘의 현대인은 쉬지 않고 반응하고 소비하느라 자신 안으로 침잠하여 경험과 추억을 내재화할 여유를 잃고 있다. 바쁘게 살아가는 수많은 타인의 속도에 맞춰 살아가는 동안 나의 내면 또한 타인에게 맞추느라 자기 목소리는 점점 희미해진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피곤함을 호소하면서도, 정작 무엇이 자신을 지치게 하는지 정확히 말하지 못한다. 우리의 외부에는 수많은 자극으로 가득 차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내면은 고요를 즐기지 못하고, 과거를 곱씹거나 추억할 여유를 갖지 못하기 때문에 참담할 정도로 황폐해져만 가고 있다.
이러한 시대이기에 더욱 문학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페이지 끄트머리를 잡아 넘기는 짧지 않은 순간, 독자는 효율과 타인에게서 벗어나 오롯이 자신을 위해 침잠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고 시를 감상하는 비효율의 시간은 사라져 가는 고향의 감각을 복원하고, 무너진 내면의 언어를 다시 세운다. 한 편의 소설과 시는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갈수록 희미해지는 고향의 감각을 보강함으로써 ‘나’는 도시를 효율적으로 작동시키기 위한 톱니바퀴가 아닌, 한 ‘사람’임을 확인하는 조력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좋은 문학은 언제나 인간을 어딘가에 다시 살게 한다. 그것은 잊힌 골목을 되살리고, 이름 없는 방을 기억의 장소로 바꾸며, 무심히 지나친 풍경 속에서 존재의 떨림을 발견하게 한다. 내가 글을 쓰고 읽는 순간은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를 떠올리고 속박됨으로써 미래에도 나로써 존재할 수 있는 강력한 근거를 마련해주는 때이다.
결국 오늘 우리는 한 뼘이라도 더 넓은 집을 얻으려 노력할 것이 아니라, 더 정겹고 편안해지는 ‘우리 동네’를 되찾아야 한다. ‘우리 동네’를 되찾는 일은 진부하디 진부한 지역을 사랑하자는 구호가 아니라, 나의 삶을 다시 나의 것으로 만들려는 실존의 노력이다. 내가 사랑할 우리 동네를 되찾았을 때, 비로소 나는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 재물에 집착하고 쉽게 절망하여 자신을 버리지 않는 강한 사람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 흔히들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이 가장 무섭다고 한다. 세계에서 손에 꼽게 안전한 거리라는 우리나라의 거리에서, 때론 섬짓함을 느끼고 불안을 느끼는 것은 자신조차 갖지 못하여 잃을 것이 없는 사람들이 배회하는 도시에 살기 때문인 것은 아닐까? 내가 있을 장소를 잃은 인간은 쉽게 흔들리지만, 자기 삶의 자리를 가진 인간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지금 우리 시대의 위기는 어쩌면 주거의 위기나 공동체의 위기 이전에, 인간 존재의 위기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위기 한복판에서 현대인은 자신의 내부를 함께 잃어가고 있다. 고향을 잃고 방황하는 시대에, ‘우리는 지금 어디를 지나고 있는가’의 답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대신, ‘우리는 지금 어디에서 살고 있는가’를 궁리하고 해결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
강나루 gn@gwangnam.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