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개문발차한 전남·광주 통합, 이제는 설계의 시간이다
조옥현 전남도의원
입력 : 2026. 03. 18(수)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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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옥현 전남도의원
전남-광주는 새로운 통합특별시로 출범하는 역사적 전환점에 서 있다. 두 지역은 오랜 시간 경제·산업·생활권을 공유해 온 공동체다. 이러한 맥락에서 행정통합은 단순한 행정구역 조정을 넘어 지역의 미래 발전 전략을 새롭게 설계하는 중요한 정책적 선택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두 지역이 하나의 행정체제로 통합된다는 점에서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존재한다. 지금까지 통합 논의는 아직 완성된 설계도라기보다 큰 방향만 제시된 단계에 가깝다. 통합을 추진하겠다는 정치적 합의는 이루어졌지만, 실제 통합 이후의 행정 구조와 제도, 운영 방식에 대한 구체적 설계는 이제 막 논의가 시작되는 수준이다. 말 그대로 ‘개문발차’에 가까운 상황이다.

통합의 성패는 통합을 선언하는 순간이 아니라, 그 이후 어떤 구조와 원칙으로 새로운 행정체계를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다. 통합은 단순한 행정 효율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권력 구조와 재정 체계, 산업 전략, 생활 기반을 다시 설계하는 지역 재구성의 과정이다. 설계가 정교하면 통합은 새로운 도약의 계기가 되지만, 설계가 미흡하면 통합은 또 다른 갈등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통합의 속도가 아니라 통합 이후의 제도를 얼마나 치밀하게 설계하느냐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다. 이를 위해 최소한 다음과 같은 과제들이 충분히 논의되어야 한다.

첫째, 권력 구조와 대표성의 설계다. 통합 이후 행정 권한과 정치적 대표성이 특정 지역에 과도하게 집중된다면 곧바로 지역 간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 통합특별시의 권력 구조는 지역 간 균형과 상호 견제를 전제로 설계되어야 한다. 권역별 부시장제 도입이나 시의회 의석 구조의 합리적 배분 등 정치적 대표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통합이 어느 한 지역의 확장으로 인식되는 순간 통합의 정당성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둘째, 재정 통합과 균형발전 장치다. 재정 격차는 통합 후 가장 현실적인 갈등 요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특별시 내부에 지역균형발전기금을 설치해 농어촌 지역과 중소도시에 대한 안정적인 투자 구조를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통합의 목적은 행정 규모의 확대가 아니라 지역 전체의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셋째, 행정 중심지 문제다. 수도권 집중의 폐해를 극복하고 국토 균형발전을 이루겠다는 통합의 취지는 전남·광주 통합특별시 내부에서도 구현되어야 한다. 행정 기능이 기존 중심도시에만 집중된다면 통합은 또 다른 내부 불균형을 낳게 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행정 중심지는 기존 중심도시에만 머무르기보다 상대적으로 낙후된 서남권에 주청사를 두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는 통합이 단순한 행정 결합을 넘어 지역 간 균형과 상생을 실현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 공공기관과 행정 기능의 분산 배치다. 행정 본청만이 중심이 되는 구조로는 통합의 효과를 지역 전체로 확산시키기 어렵다. 해양·수산, 농정, 관광, 에너지 등 기능별 행정기관과 공공기관을 권역별로 분산 배치한다면 통합은 행정 효율을 넘어 지역 발전의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통합의 성과가 특정 지역에 집중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설계가 필요하다.

다섯째, 산업 전략의 재설계다. 광주의 기술 기반과 전남의 산업·공간 기반이 결합될 때 비로소 통합의 경제적 의미가 현실화된다. 인공지능과 미래 모빌리티 산업, 해상풍력과 에너지 산업을 하나의 산업벨트로 연결하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통합은 단순히 행정 경계를 넓히는 일이 아니라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여섯째, 생활권 통합이다. 특별시민이 체감하는 통합은 행정 조직의 변화가 아니라 생활 환경의 변화에서 시작된다. 광역 교통망 확충과 통합 교통요금 체계, 의료와 교육 협력 시스템 등 생활 기반 통합이 병행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통합은 행정적 변화가 아니라 시민 삶의 질을 높이는 체감형 정책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일곱째, 통합T/F의 운영 방식이다. 행정 중심의 협의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지방의회, 전문가, 시민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다층적 논의 구조가 필요하다. 통합은 특정 기관의 정책 결정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 전체의 미래를 설계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통합은 단순한 행정 효율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지역의 권력 구조와 산업 전략, 생활 체계를 다시 설계하는 일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한 가지 원칙이다.

통합은 흡수가 아니라 균형 있는 재설계여야 한다는 점이다. 어느 한 지역의 확장이 아니라 두 지역이 함께 미래를 설계하는 과정이 될 때 통합은 비로소 성공할 수 있다. 지금 전남과 광주는 중요한 선택의 시점에 서 있다. 지금의 설계가 향후 수십 년 지역의 구조와 경쟁력을 좌우하게 될 것이다.

지금은 통합을 선언할 시간이 아니라, 통합을 제대로 설계해야 할 시간이다. 지금의 선택이 향후 수십 년 지역의 운명을 좌우할 것이다.
조옥현 gn@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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