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생명력…평범하고 특이하게 그려보자 생각"
■전남도립미술관서 전시 열고 있는 김선두 화가
판소리나 남도 가락 일부러 찾아 들으며 작업
미술 외 문학과 영화 등 이웃장르와 교류 ‘활발’
현대회화는 깨달음…전통에 충실한 작가 밝혀
판소리나 남도 가락 일부러 찾아 들으며 작업
미술 외 문학과 영화 등 이웃장르와 교류 ‘활발’
현대회화는 깨달음…전통에 충실한 작가 밝혀
입력 : 2026. 02. 02(월)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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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그러운 폭죽’ 앞에서 작품을 설명하고 있는 김선두 작가
“땅이 가지고 있는 큰 생명력과 남도 가락을 드러내는 그림은 어떨까 생각을 했습니다. 원래 제가 판소리나 남도 가락을 좋아한 것도 있지만 일부러 찾아서 들으면서 작업할 때도 막 틀어 놓고 작업을 했죠. 또 긴 산들이 느리면서도 유장한 느낌, 그러면서 우리 묵은 김치나 젓갈도 맛있잖아요. 그러다보니 색깔은 그런 느낌으로 해서 황토를 표현했는데 한 450번 발랐던 것 같아요. 이걸로 평가를 받아서 석남미술상을 받았습니다. 사실은 그래서 전시도 했어요.”
전남 장흥 출생 김선두 작가(중앙대 명예교수·한국화)는 고향에 대한 기억과 남도의 자연 풍경에서 출발한 ‘남도 시리즈’를 포함해 ‘느린 풍경’ 등 70여점을 전남도립미술관에서 선보이고 있다. 전시는 지난해 12월 23일 개막, 오는 3월 22일까지 1∼4전시실에서 ‘색의 결, 획의 숨’이라는 타이틀로 열리고 있는 가운데 지난달 31일 아티스트 토크를 앞두고 김 작가를 전시장에서 만나 전시내용과 작품세계 등에 대해 들어봤다. 위 멘트는 남도적 화풍이나 색감, 선 등에 대한 설명 대목이다.
김 작가는 31년 정도 중앙대에서만 근무를 했는데 명예교수지만 현재는 강의를 나가고 있지는 않고 작업만 하고 있다면서 자신의 회화 작품 중 문학과 영화 관련 작업이나 깊은 인연을 들려줬다. 그는 소설가들과 만남을 지속적으로 가져 온 가운데 이청준 소설가나 정채봉 동화작가, 김영남 시인, 이승우 소설가, 그리고 존재 위백규까지 언급하며 회고했다. 다만 그는 남도로 스케치를 와서 느끼는 단상을 잊지 않았다.
“남도에 스케치를 와 보면 풍경이 다 다르고 산도 정말 좋은 게 많아요. 사는 사람들은 모르지만 설악산이나 강원도에 가면 산이 다 막고 있습니다. 만약 설악산이 있다면 앞에 산들이 모두 막고 있어서 안에 들어가서 봐야 하지만 우리 호남의 산들은 뿌리부터 보이잖아요. 남도의 산들은 높아봐야 해발이 700∼900m죠. 천관산도 그렇고, 월출산도 보면 마치 금강전도를 보는 것 같아요. 그 밑에서부터 다 보이니까요. 그런데 설악산을 들어가면 한참 들어가야 되지만, 여기서는 영암으로 가는 도로를 타고 가다 보면 월출산이 싹 다 보이잖아요.”
이처럼 자연 산수의 차이를 설명한 그는 유년 시절 부친이 좋은 전시들을 소개해줘 작품들을 본 기억을 호출하면서 거기서 맺은 인연이나 교류를 잊지 않고 언급했다.
소설가 한승원 선생이 전라도 사람들 기질을 샘터엔가 썼었는데 그것을 전라도 사람들에 빗대 썼다. 산들을 닮아서 굉장히 힘도 세고 멋있는 사람이지만 수가 틀리면 엎어버리는 것을 예로 들며 그것을 전라도 사람의 성향의 하나로 소개했다. 또 순천 출생 정채봉 선생과 30여년 동안 교류를 했다. 당시 샘터주간를 맡고 있을 무렵 “이청준 선생의 삽화를 좀 그려달라”고 해서 이청준 선생과도 인연이 닿았다고 했다. 여기다 같은 동향의 김영남 시인은 중앙대 교직원으로 재직해 그와도 교류를 해갔다고 했다. 김 작가는 문학분야 거목들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연유를 빠뜨리지 않았다.
또 전시장에서는 그가 영화 분야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대목을 목도할 수 있었다.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에서 오원 장승업 대역을 맡아 열연했기 때문이다. 극중에서 그렸던 그림이 ‘노안도’였다. 현재 전시에 선보이고 있는 ‘노안도’만 보더라도 그가 이웃 장르와 얼마만큼 폭넓게 교유하며 작업활동을 펼쳤는가를 직감할 수 있다. 그는 남도에 중학생 무렵까지밖에 머물지 않았지만 그의 회화정신의 모태는 남도와 남도산수를 빼놓고는 이야기가 어려울 정도다. 교사 출신 아버지는 남종화의 거목 중 한 사람인 소천 김천두 선생으로, 예술적 끼를 물려받은데다 남농 허건과 월전 장우성을 사사했다. 이뿐 아니라 김 작가 외에 아우 선일, 서울대에서 한국화를 전공한 손자 김중일까지 이어지는 대표 화맥 집안을 이루고 있는데 그의 회화의 면면한 흐름을 엿볼 수 있는 상징이었다.
“제가 재수할 때 아버님이 동산방에서 아주 좋은 전시가 열리고 있으니 가봐라 해서 봤는데 일랑 이종상 선생님의 첫 개인전이었어요. 진경전이 열리고 있었는데 그 전시를 보면서 아버님 화집이나 이 전시를 통해 옛날 동영상도 많이 봤죠. 그리고 저한테 그 두 분 큰 스승님이 계셨고 그 다음에 미술 전공은 아니지만은 장흥 출신의 위대한 소설가 이청준 선생님 하고 인연을 맺었었죠.”
그러나 이청준 선생하고 같은 고향이지만 자신과 만난 고향 장흥과는 결이 달랐음을 술회했다. 자신은 조금 개구지고 천성이 놀기를 좋아해 어디 붙어 있지를 못했다는 전언이다. 그리고 막 남의 일도 도와주고 그랬는데 기억 속 고향은 약간 천국 같은 그런 느낌이 있었지만 서울에 가서는 적응을 못해 고생을 했다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해방정국과 6·25 등 힘든 시절을 많이 겪은 이청준 선생과 자신이 생각하는 고향이 많이 다르게 된 이유로 풀이했다.
특히 풍경 안에 또 다른 이야기가 좋았다는 그는 풍경에 다시 생각하는 계기를 가졌고, 그렇게 해서 ‘느린 풍경’에 천착하게 됐는데 대학 때는 산수, 대학원 때는 인물에 집중했다. 데뷔 무렵에는 너무 스승님들과 그림이 닮아 있어 변화를 시도하기도 했다.
“피맛골 포장마차를 그려 중앙미전을 통해 데뷔하고 그 무렵 서커스가 들어와 서커스 시리즈를 하게 됐죠. 제 그림에 쭉 흐르고 있는 것은 어떤 강한 생명력에 감동을 많이 받게 되죠. 금강산이나 설악산, 월출산 같은 화려한 산수는 아니지만 어떤 화가도 그리지 않은 평범한 땅을 저는 좀 비범하게 그려보자 마음 먹었죠. 그러니까 원근법을 적용해서 그렸는데 그것이 참 신선했습니다. 저는 좀 평범하고 특이하게 그려보자 생각했어요. 인물도 그렇구요.”
그는 마지막으로 현대회화는 정서가 아니라 깨달음이라면서 자신만큼 전통에 충실한 작가도 없을 것이라고 들려주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전남 장흥 출생 김선두 작가(중앙대 명예교수·한국화)는 고향에 대한 기억과 남도의 자연 풍경에서 출발한 ‘남도 시리즈’를 포함해 ‘느린 풍경’ 등 70여점을 전남도립미술관에서 선보이고 있다. 전시는 지난해 12월 23일 개막, 오는 3월 22일까지 1∼4전시실에서 ‘색의 결, 획의 숨’이라는 타이틀로 열리고 있는 가운데 지난달 31일 아티스트 토크를 앞두고 김 작가를 전시장에서 만나 전시내용과 작품세계 등에 대해 들어봤다. 위 멘트는 남도적 화풍이나 색감, 선 등에 대한 설명 대목이다.
김 작가는 31년 정도 중앙대에서만 근무를 했는데 명예교수지만 현재는 강의를 나가고 있지는 않고 작업만 하고 있다면서 자신의 회화 작품 중 문학과 영화 관련 작업이나 깊은 인연을 들려줬다. 그는 소설가들과 만남을 지속적으로 가져 온 가운데 이청준 소설가나 정채봉 동화작가, 김영남 시인, 이승우 소설가, 그리고 존재 위백규까지 언급하며 회고했다. 다만 그는 남도로 스케치를 와서 느끼는 단상을 잊지 않았다.
“남도에 스케치를 와 보면 풍경이 다 다르고 산도 정말 좋은 게 많아요. 사는 사람들은 모르지만 설악산이나 강원도에 가면 산이 다 막고 있습니다. 만약 설악산이 있다면 앞에 산들이 모두 막고 있어서 안에 들어가서 봐야 하지만 우리 호남의 산들은 뿌리부터 보이잖아요. 남도의 산들은 높아봐야 해발이 700∼900m죠. 천관산도 그렇고, 월출산도 보면 마치 금강전도를 보는 것 같아요. 그 밑에서부터 다 보이니까요. 그런데 설악산을 들어가면 한참 들어가야 되지만, 여기서는 영암으로 가는 도로를 타고 가다 보면 월출산이 싹 다 보이잖아요.”
이처럼 자연 산수의 차이를 설명한 그는 유년 시절 부친이 좋은 전시들을 소개해줘 작품들을 본 기억을 호출하면서 거기서 맺은 인연이나 교류를 잊지 않고 언급했다.
소설가 한승원 선생이 전라도 사람들 기질을 샘터엔가 썼었는데 그것을 전라도 사람들에 빗대 썼다. 산들을 닮아서 굉장히 힘도 세고 멋있는 사람이지만 수가 틀리면 엎어버리는 것을 예로 들며 그것을 전라도 사람의 성향의 하나로 소개했다. 또 순천 출생 정채봉 선생과 30여년 동안 교류를 했다. 당시 샘터주간를 맡고 있을 무렵 “이청준 선생의 삽화를 좀 그려달라”고 해서 이청준 선생과도 인연이 닿았다고 했다. 여기다 같은 동향의 김영남 시인은 중앙대 교직원으로 재직해 그와도 교류를 해갔다고 했다. 김 작가는 문학분야 거목들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연유를 빠뜨리지 않았다.

“제가 재수할 때 아버님이 동산방에서 아주 좋은 전시가 열리고 있으니 가봐라 해서 봤는데 일랑 이종상 선생님의 첫 개인전이었어요. 진경전이 열리고 있었는데 그 전시를 보면서 아버님 화집이나 이 전시를 통해 옛날 동영상도 많이 봤죠. 그리고 저한테 그 두 분 큰 스승님이 계셨고 그 다음에 미술 전공은 아니지만은 장흥 출신의 위대한 소설가 이청준 선생님 하고 인연을 맺었었죠.”
그러나 이청준 선생하고 같은 고향이지만 자신과 만난 고향 장흥과는 결이 달랐음을 술회했다. 자신은 조금 개구지고 천성이 놀기를 좋아해 어디 붙어 있지를 못했다는 전언이다. 그리고 막 남의 일도 도와주고 그랬는데 기억 속 고향은 약간 천국 같은 그런 느낌이 있었지만 서울에 가서는 적응을 못해 고생을 했다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해방정국과 6·25 등 힘든 시절을 많이 겪은 이청준 선생과 자신이 생각하는 고향이 많이 다르게 된 이유로 풀이했다.
특히 풍경 안에 또 다른 이야기가 좋았다는 그는 풍경에 다시 생각하는 계기를 가졌고, 그렇게 해서 ‘느린 풍경’에 천착하게 됐는데 대학 때는 산수, 대학원 때는 인물에 집중했다. 데뷔 무렵에는 너무 스승님들과 그림이 닮아 있어 변화를 시도하기도 했다.
“피맛골 포장마차를 그려 중앙미전을 통해 데뷔하고 그 무렵 서커스가 들어와 서커스 시리즈를 하게 됐죠. 제 그림에 쭉 흐르고 있는 것은 어떤 강한 생명력에 감동을 많이 받게 되죠. 금강산이나 설악산, 월출산 같은 화려한 산수는 아니지만 어떤 화가도 그리지 않은 평범한 땅을 저는 좀 비범하게 그려보자 마음 먹었죠. 그러니까 원근법을 적용해서 그렸는데 그것이 참 신선했습니다. 저는 좀 평범하고 특이하게 그려보자 생각했어요. 인물도 그렇구요.”
그는 마지막으로 현대회화는 정서가 아니라 깨달음이라면서 자신만큼 전통에 충실한 작가도 없을 것이라고 들려주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