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 국내 소개 ‘정기용’ 소장작 대거 전남에
원화랑 설립 ‘제1세대 화랑주’로 평가
도립미술관 3월 8일까지 6∼9전시장
원화랑 99·김영덕 10 등 총 109점 선봬
아카이브로 도록 24권과 삽화 10점도
도립미술관 3월 8일까지 6∼9전시장
원화랑 99·김영덕 10 등 총 109점 선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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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6. 01. 30(금)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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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용 컬렉션:플럭서스에서 모더니즘까지, 김영덕: 시대의 염원’ 전시 중 정기용 컬렉션전 전경.

이응노 작 ‘구성’
많은 관람객들을 유치하고 인지도를 쌓기 위해서는 이처럼 유명인의 방문도 그리 경계할 필요는 없었다. RM 같은 화제의 인물들의 방문을 통해 인지도를 쌓아야 미술계 역시 집중하기 때문이다. 현 ‘이지호 관장 체제’는 전남도립미술관의 서막을 탄탄하게 다져 도립미술관이 이른 시간에 그나마 빠르게 안착될 수 있었다는 평가다. 인지도가 어느 정도 오르다보니 유수의 전시들이 잇따라 열렸고, 좋은 작품들을 확보할 수도 있었다.
지난해 하반기 성사된 ‘정기용 컬렉션’ 역시 전남도립미술관이 이제 그저 신생미술관으로 전남 구석진 지역에 있는 미술관이 아니라는 점을 상기시켜준 대표적 사례로 읽혔다. ‘정기용 컬렉션’의 인천 출생 정기용 대표(1932∼2025)는 명동화랑과 동산방화랑 등 국내 3대 화랑 중 하나로 꼽히는 원화랑(서울 인사동)을 1978년 설립해 한국모더니즘을 재조명하는데 힘쓴 인물이다. 그래서 ‘제1세대 화랑주’로 불려왔다. 특히 그는 비디오아트 창시자인 백남준의 국내 첫 전시(1984.2)를 열어 알린 장본인이었다. 정 대표는 백남준이 1984년 신년에 펼쳐진 세계 최초의 위성중계 예술 프로젝트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 열릴 수 있도록 미리 2만 달러의 작품을 사주며 후원했다.
이런 지점 때문에 정기용 대표는 한국현대미술사에서 중요 인물 중 한명으로 거론된다.

마르크 샤갈 ‘드로잉 ‘탄생, 나의 생애’,

김중만 작 ‘제목미상’
평생 검소하게 살던 정기용 대표가 수집 소장했던 근현대 명작들이 아무런 연고도 없는 전남도립미술관에 소장되는 경사를 맞았다.
이런 사실이 대내외에 알려지게 된 계기는 2026년 기증작품전으로 마련된 ‘정기용 컬렉션’ 때문이었다. 이 전시는 ‘정기용 컬렉션:플럭서스에서 모더니즘까지, 김영덕: 시대의 염원’이라는 타이틀로 지난 23일 개막, 오는 3월 8일까지 6∼9전시장에서 열리고 있다. 전쟁과 분단, 인간 존엄의 문제를 평생 화두로 삼아온 한국 구상 회화의 대표 작가인 충남 서산 출생 김영덕 작가(1931∼2020)의 유작 뿐만 아니라 ‘색의 결, 획의 숨’이라는 타이틀로 진행 중인 전남 장흥 출생 김선두 작가(중앙대 명예교수, 2025.12.23∼3.22 1∼4전시실)의 기획초대전까지 이뤄지고 있어 짬을 내 전시관람을 할 경우 매우 유의미한 현대미술의 한 페이지를 숙지할 수 있는 기회다.
‘정기용 컬렉션’을 통해 드러나는 것은 작품도 작품이지만 삶의 자세인 듯하다. 그의 삶은 소탈함 그 자체로 알려져 있다. 전남도립미술관으로 작품들이 온데는 이지호 관장이 그의 아들로부터 들은 대화 한 토막에서 유추할 수 있다.
“미술계 사람들이 전남을 주라고 그랬대요. 이제 새로 생겼고 오래된 미술관들 가면 이렇게 노출되기도 힘드니까. 그냥 전남이 잘하고 있으니까 전남을 줘라. 이래 가지고 저한테 전화가 왔어요. 그래서 전화받고 ‘그럼 한번 오시라’고 했어요. 근데 아드님도 아버님이 그렇게 소탈하셨다고 하더군요.”
이렇게 해서 그의 아들이 미술관을 한번 다녀간 뒤, 기증은 급물살을 탔고 성사돼 이번 전시를 통해 소장작들 실체가 드러난 셈이다.
이 관장 또한 “퀄리티 높은 작품들을 기증받게 돼 영광”이라고 소회를 전했다
이번 정기용 컬렉션의 핵심은 99점 중 33점에 이르는 백남준, 요제프 보이스, 존 케이지 등 플럭서스 관련 예술가들로 꼽히고 있다. 이번 기증에 포함된 요제프 보이스와 존 케이지가 함께 제작한 ‘보이스 복스’(Good Morning, Mr. Orwell)로 명명된 작품과 백남준의 판화 20점은 이번 기증의 백미로 평가된다.

앙리 드툴루즈 로트레크 작 ‘Pessima from suite yvette guilbert’

박서보 작 ‘무제’
한국 추상작품들로는 현대미술사의 거장들인 고암 이응노(1904∼1989), 수화 김환기(1913∼1974), 박서보(1931∼2023)의 작품이 발길을 붙잡았으며, 문미애 차우희 황호섭 등 1980~90년대에 제작된 회화, 이형우 박종배 민균홍 최기석의 조각 작품, 강승희의 판화, 정현의 드로잉 등이다.
전시에는 원화랑에서 기증된 정기용 컬렉션 99점 외에 김영덕 작가의 작품 10점 등 총 109점을 만날 수 있다. 아카이브로 정기용 컬렉션의 도록(24권·기증 4권) 및 김영덕 작가의 삽화(10점)도 출품됐다. 5전시장에서는 리너스 반 데 벨데, 티안, 김창겸의 작품을 만날 수 볼 수 있는 ‘2025-2026 미디어소장품’전(2025.12.23∼3.22)도 진행되고 있다.
이번 기증작품들이 더해지면서 600여점을 소장하게 된 전남도립미술관의 수장고 역시 거의 채워지고 있어 또 다른 수장고를 확보해야 하는 시발점이 될 지 주목되고 있다.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