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help you? (인공위기 음악)
박성언 음악감독
입력 : 2026. 01. 29(목)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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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언 음악감독
[문화산책]ai 가 뮤지션들의 작품활동이나 창작에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작년에 광주의 한 가요제에서 일을 한 적이 있었는데 심사에서 논쟁이 되었던 부분이 ai를 통해서 만들어지고 출품된 음원들은 어떻게 점수를 배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부분이었다. 물론 곡을 출품한 뮤지션들 중 본인이 작품을 ai로 제작했다는 것을 밝히는 작가는 없었다. 어쨌든 작년에는 그렇게 크게 부각되지 않아 심사위원들의 권한으로 넘기고 부드럽게 진행되었는데 불과 1년도 안 지났지만 이제는 그런 부분들이 단순하게만 생각할 부분이 아니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주변에서도 Suno, Udio, Soundful, Mureka 등의 대표적인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가사를 생성하고 음원까지 제작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실제로 결과물이 그렇게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아직은 좀 어색한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런 속도라면 이런 약간의 버그들은 금방 수정되고 ai가 더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만들어 내리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는 컴퓨터를 그렇게 잘 다루는 편이 아니고 고질적인 귀차니즘이 자리 잡고 있어서 아직은 헤매고 있지만 나 또한 분명 ai와의 동행은 필연적일 것이다. ai는 클라이언트의 질문에 대한 답을 도출해 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수많은 학습을 통해 미리 공유된 수많은 정보들을 데이터와 하고 최적의 값을 도출해내다 보니 인간의 속도는 그것을 따라잡을 수 없다. 여기에서 나름 화두로 떠오르는 것이 주문이다. 그렇다면 ai에게 어떻게 질문하고 주문할 것인가? 주문이 구체적이고 똑똑할수록 답도 구체적이고 정확할 것이다.
예술가들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많은 고민과 생각 그리고 고통을 동반한 노력을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위대한 여정에 박수를 보내고 결과물을 경이롭게 생각하는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 미켈란젤로가 그린 시스티나 성당의 천정화를 보고 있으면 이게 인간의 작품인지 신의 작품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이다. 인간의 고통과 성찰과 노력을 통해 만들어지는 작품들은 ai로 생성하지 못하는 인체로부터 발산되는 영혼적인 에너지 즉 아우라를 갖게 된다. 어쩌면 ai 세상은 진짜 노력하는 아티스트와 적당히 흉내 내는 아티스트들 사이의 경계를 더 명확히 해줄 것이다. 나에게 요즘 가장 큰 화두는 나름 복잡하지만 청년들의 일자리와도 무관하지 않다. 청년들이 어떤 분야에서 열심히 자신을 발전시키고 일해야 할 때 ai는 벌써 그 자리를 많이 대체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어른들의 만들어 놓은 세상에서 부족한 경험이지만 극복하고 이겨내고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에게 ai는 분명 반갑지 만은 않은 존재일 것이다. 기후위기처럼 인공위기가 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언제나 희망이 있다. 고통, 슬픔, 사랑, 아픔, 시련, 기쁨, 상처, 웃음, 연민, 희망 등 듣기만 해도 가슴 떨리고 아름다운 이 감정들은 ai가 넘볼 수 없는 영역이다. 언젠가는 수많은 데이터의 학습과 기술의 발전으로 슬픈 이야기를 하면 눈물을 흘려주고 기쁠 때는 웃음을 지어주는 로봇이 개발되겠지만 그 어찌 사람이 사람의 손을 잡고 함께 고통을 나눠주고 함께 기쁨을 나눠주는 것에 비할 수 있겠는가. 어쩌면 우리 인간은 ai를 습득하고 기술을 익히는 것과 동시에 인간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기술도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무한경쟁시대, 각자도생시대라는 단어들이 청년들의 앞을 가로 막고 있다. 어쩌면 좀 더 경험이 많고 시간을 지나온 노하우를 갖고 있는 어른들이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경험이 부족하고 실수할 수 있는 미래세대에게 경험을 공유하고 힘을 실어 주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인간은 영원히 살지 못한다. 살아서 무엇이 더 가치 있는 일인가에 대한 물음과 성찰은 인간을 항상 깨어나게 한다. 부족하기에 아름답고 아프고 다치기에 찬란하다. ai와 함께 살아가는 세상 또한 아름답게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어쩌면 그 세상에서는 인간다운 것, 조금 느린 것, 더 정확하지 않을 것이 더 가치 있어 질 것이다. 1999년에서 2000년에 들어설 때 밀레니엄 버그로 세계가 떠들썩했지만 우리는 그것을 잘 컨트롤했고 벌써 2026년을 살아가고 있다. 우리의 미래 청년들도 분명 잘 해낼 것이다. 오늘도 열심히 살아가는 아름다운 인간을 응원합니다.
작년에 광주의 한 가요제에서 일을 한 적이 있었는데 심사에서 논쟁이 되었던 부분이 ai를 통해서 만들어지고 출품된 음원들은 어떻게 점수를 배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부분이었다. 물론 곡을 출품한 뮤지션들 중 본인이 작품을 ai로 제작했다는 것을 밝히는 작가는 없었다. 어쨌든 작년에는 그렇게 크게 부각되지 않아 심사위원들의 권한으로 넘기고 부드럽게 진행되었는데 불과 1년도 안 지났지만 이제는 그런 부분들이 단순하게만 생각할 부분이 아니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주변에서도 Suno, Udio, Soundful, Mureka 등의 대표적인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가사를 생성하고 음원까지 제작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실제로 결과물이 그렇게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아직은 좀 어색한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런 속도라면 이런 약간의 버그들은 금방 수정되고 ai가 더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만들어 내리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는 컴퓨터를 그렇게 잘 다루는 편이 아니고 고질적인 귀차니즘이 자리 잡고 있어서 아직은 헤매고 있지만 나 또한 분명 ai와의 동행은 필연적일 것이다. ai는 클라이언트의 질문에 대한 답을 도출해 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수많은 학습을 통해 미리 공유된 수많은 정보들을 데이터와 하고 최적의 값을 도출해내다 보니 인간의 속도는 그것을 따라잡을 수 없다. 여기에서 나름 화두로 떠오르는 것이 주문이다. 그렇다면 ai에게 어떻게 질문하고 주문할 것인가? 주문이 구체적이고 똑똑할수록 답도 구체적이고 정확할 것이다.
예술가들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많은 고민과 생각 그리고 고통을 동반한 노력을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위대한 여정에 박수를 보내고 결과물을 경이롭게 생각하는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 미켈란젤로가 그린 시스티나 성당의 천정화를 보고 있으면 이게 인간의 작품인지 신의 작품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이다. 인간의 고통과 성찰과 노력을 통해 만들어지는 작품들은 ai로 생성하지 못하는 인체로부터 발산되는 영혼적인 에너지 즉 아우라를 갖게 된다. 어쩌면 ai 세상은 진짜 노력하는 아티스트와 적당히 흉내 내는 아티스트들 사이의 경계를 더 명확히 해줄 것이다. 나에게 요즘 가장 큰 화두는 나름 복잡하지만 청년들의 일자리와도 무관하지 않다. 청년들이 어떤 분야에서 열심히 자신을 발전시키고 일해야 할 때 ai는 벌써 그 자리를 많이 대체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어른들의 만들어 놓은 세상에서 부족한 경험이지만 극복하고 이겨내고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에게 ai는 분명 반갑지 만은 않은 존재일 것이다. 기후위기처럼 인공위기가 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언제나 희망이 있다. 고통, 슬픔, 사랑, 아픔, 시련, 기쁨, 상처, 웃음, 연민, 희망 등 듣기만 해도 가슴 떨리고 아름다운 이 감정들은 ai가 넘볼 수 없는 영역이다. 언젠가는 수많은 데이터의 학습과 기술의 발전으로 슬픈 이야기를 하면 눈물을 흘려주고 기쁠 때는 웃음을 지어주는 로봇이 개발되겠지만 그 어찌 사람이 사람의 손을 잡고 함께 고통을 나눠주고 함께 기쁨을 나눠주는 것에 비할 수 있겠는가. 어쩌면 우리 인간은 ai를 습득하고 기술을 익히는 것과 동시에 인간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기술도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무한경쟁시대, 각자도생시대라는 단어들이 청년들의 앞을 가로 막고 있다. 어쩌면 좀 더 경험이 많고 시간을 지나온 노하우를 갖고 있는 어른들이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경험이 부족하고 실수할 수 있는 미래세대에게 경험을 공유하고 힘을 실어 주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인간은 영원히 살지 못한다. 살아서 무엇이 더 가치 있는 일인가에 대한 물음과 성찰은 인간을 항상 깨어나게 한다. 부족하기에 아름답고 아프고 다치기에 찬란하다. ai와 함께 살아가는 세상 또한 아름답게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어쩌면 그 세상에서는 인간다운 것, 조금 느린 것, 더 정확하지 않을 것이 더 가치 있어 질 것이다. 1999년에서 2000년에 들어설 때 밀레니엄 버그로 세계가 떠들썩했지만 우리는 그것을 잘 컨트롤했고 벌써 2026년을 살아가고 있다. 우리의 미래 청년들도 분명 잘 해낼 것이다. 오늘도 열심히 살아가는 아름다운 인간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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