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장로 공실과 빈집의 생존을 위한 ‘오렌지 로드 근현대 생활역사 박물관’ 조성
박기복 영화감독
입력 : 2026. 01. 06(화)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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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복 영화감독
[문화산책]충장로는 근대 유산이다. 유산의 가치는 오랜 시간과 생활의 축적, 훼손되지 않은 원물 그대로 유지되고 있을 때 빛난다. 층장로 거리와 건축은 화려하지 않지만 강력한 흡인력을 지닌 이유는 일제강점기, 산업화 초입, 민주화 현장, 상권의 흥망성쇠의 스토리텔링이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충장로와 비슷하게 한때 번성했던 대표적인 근대 도심 거리로 군산, 목포, 인천, 대구, 포항, 나주 영산포를 들 수 있을 정도로 희소성과 관광 매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충장로는 시대변천과 광주 시민의 삶과 희망의 흔적들이 거리와 건물 공간 곳곳에 쌓여 있다. 새로 만든 거리나 인위적인 콘텐츠로 절대 흉내 낼 수 없다. 건물은 유물이 되고, 거리는 그곳을 찾는 사람들의 동선이 되며, 공실과 빈집에 전시된 근현대 생활 소품은 전시가 된다. 그러한 까닭에 충장로는 그 자체로 이미 완성된 박물관이다. 무궁무진한 문화예술관광 로드 존으로 가능성을 지녔다.

광주가 해야 할 일은 새로운 콘텐츠나 도시 재생으로 이벤트 축제를 펼치고 덧씌우는 일에 열과 성을 다할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시간과 기억을 읽어내고 드러내는 일이라 여겨진다.

그동안 충장로는 행정 정책 사업으로 ‘충장로 상권 르네상스’ ‘원도심 상권 활성화 사업’ ‘상권 경쟁력 강화 사업’ ‘도시 재생 연계 상권 활성화 사업’을 비롯해 문화 이벤트 사업으로 ‘충장 축제 연계 상권 활성화’ ‘충장로 문화관광형 거리 조성’ ‘청년문화·예술 상권 프로젝트’ ‘야간관광 특화 거리 조성’ ‘문화가 있는 충장로’ 등 생존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왔고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관광객은 이벤트 축제가 열릴 때나 반짝 찾아들 뿐 축제가 끝나면 적막이 감돈다. 프로젝트 명칭과 이벤트 축제의 이름은 계속 바뀌면서도 광주는 ‘왜 관광객 발길이 멈췄는가’에 대한 구조적 해답 또한 반복되고 있다. 사람을 불러모으는 일이 아니라 사람이 제 발로 찾아오는 거리를 만들기 위해서 무엇이 문제였고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를 깊이 고민해봐야 할 시간이다.

필자는 충장로와 재개발 직전의 빈집 동네에 ‘오렌지 로드 근현대 생활역사 박물관’ 조성을 제안한다. 충장로를 살리는 것은 새 건물이 아니라, 그 안에 쌓인 시간이다. 한마디로 기억과 추억을 파는 문화예술관광 거리를 꾸미자는 말이다. 버려지는 낡은 집과 생활 물건이 돈이 되고 지역경제를 부흥시키는 블루오션의 유망한 사업이라 믿는다.

옛날 살림살이, 부엌, 농기구, 병원, 학교 교실, 미용실, 목욕탕, 롤러스케이트장, 오락실, 방앗간, 자동차, 의복, 생활용품, 다방, 재봉틀, 레코드, 카메라, 교복, 연탄, 영화소품 및 의상, 서점, 게임방, 사진관, 극장, 빵집, 술집, 음식점, 문방구, 미술관 등 근현대 생활 소품으로 채워질 공실과 빈집은 최대한 원물 그대로를 유지한다면 대한민국 최대 흥미롭고 독특한 생활역사 박물관이 될 것이다.

공실과 빈집을 채울 생활 민속 소품은 필자의 영화 스태프가 70만 점 이상을 소장하고 있어 얼마든지 채우고도 남는다. 이러한 구상은 도시 재생, 환경, 관광, 문화, 상권을 동시에 묶는, 지금까지 충장로에서 시도되지 않았던 원물 보존형 생활역사 박물관이다. 충장로 맥락에 아주 정확히 맞는 대안이 될 것이라 믿는다. 대규모 자본이 들어가는 리모델링 없이도 버려질 생활 민속 원물을 손때 묻은 채 그대로 보존, 전시, 순환시키는 저자본, ESG, 탄소 중립 정책과 맥을 같이 하는 프로젝트다. 버리지 않는 것이 환경이고 추억과 기억을 지키는 일은 경제가 되는 사업이다. 건물과 거리 자체가 전시물이기 때문에 다른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 설사 실패를 해도 철거와 원상복구 부담이 거의 없다.

성공한다면, 주변에 숙박, 카페, 식당, 쇼핑이 늘어나면서 체류형 관광으로 전환된다. 많은 민간 투자가 몰릴 것이고 광주 원도심의 영광을 되찾을 것이다. 동시에 광주의 정체성인 민주주의 역사, 인물, 예술, 청년, 문화 이벤트와 결합하면 상권 활성화와 관광 자원화를 꾀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프로젝트를 이해하고 감행할 단체장의 문화예술관광에 대한 인식이다.

‘오렌지 로드 근현대 생활역사 박물관’은 단체장의 임기 이후에도 남는 사업이다. 문화 비전 없는 단체장은 광주의 미래를 남기지 못한다. 문화예술은 장식이 아니라 기반시설이다. 광주의 정신적 인프라다. 문화예술관광은 광주 시민의 기억과 자부심과 정주 의지를 만든다.

광주 시민이 당장 할 일은 이 프로젝트를 이해하고 수용할 만한 문화예술관광 행정을 아는 행정 전문가 단체장을 선택하는 일이다.
광남일보@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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