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그림 배우는 중…전통 초상화 기법 따라 해볼 것"
[남도예술인] ‘인물그림’ 천착 고미아 작가
대구 소재 대학에 진학 8년간 머물며 서양화 전공
조선대 대학원 진학 후 한국화로 장르 바꿔 작업
구상 선호…개인전 31일까지 광주예당 갤러리서
입력 : 2025. 12. 19(금)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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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개인전에 출품된 작품 옆에서 포즈를 취한 고미아 작가.
그의 동기들 중 상당수는 현재 창작자로서의 길을 걷지 않는다고 한다. 그가 동창으로 누구라고 딱 1명을 언급했을 뿐이다. 그 1명이 광주에서 꽤나 이름있는 화가여서 필자 역시 잘 아는 예술가였다. 그 1명은 교과서 수록작가이자 음식산수화로 명성이 자자한 하루.K(본명 김형진) 작가다. 하루.K는 광주예고 동기다. 광주예고 동기로 광주에서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는 자신을 포함해 두명뿐이라고 언급한다. 그만큼 창작자로서의 길을 간다는 것이 쉽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하는 셈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그 역시 대단한 창작자로서의 길을 걷는다고 표현할 수 밖에 없다. 창작을 하면서 할수록 손해만 본다면 예술가로서 걷는 길이 더더욱 망설여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그의 프로필을 보면 그에 대한 호기심이 더욱 배가된다.

호남 출신인 것 같은데 대학은 대구 소재 영남대를 졸업한 뒤 그곳에서 석사까지 마치고 광주로 돌아와 조선대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과정을 마쳤다. 그는 1999학번이다. 1999년부터 대구에 머물다 2007년에야 광주로 돌아왔다. 나중에 그로부터 어디 출신이라고 얘기 듣기 전까지는 굉장히 그의 행보가 여러모로 궁금해지는 게 사실이다 .

제5회 개인전이 진행 중인 광주예술의전당 갤러리 전시 전경.
토요일임에도 부득이하게 그때 밖에 시간이 나지 않아 지난 15일 오후 3시 전시가 열리고 있는 광주예술의전당 갤러리를 찾아갔다. 주인공은 이곳에서 지난 5일 개막, 오는 31일까지 다섯번째 개인전을 열고 있는 전남 고흥 출생 고미아 작가(남도수묵화협회 총무)다.

그는 고흥 출생이지만 광주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대구에 있는 영남대에 진학해 서양화를 전공했다. 그가 영남권으로 대학을 진학한데는 먼저 그곳으로 가 있던 언니들 덕분이었다. 언니가 결혼해 대구에서 거주하고 있었던데다 바로 위 언니 역시 대구 소재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해 그도 대구로 대학을 진학하게 됐다.

그는 “가정이지만 광주에서 대학을 갔다면 아마 전남대를 가지 않았을까 한다”고 밝혔다. “왜 대구로 대학을 갔냐”는 물음에 대한 보충적 답변이었던 듯하다.

특히 미술공부를 영남으로 간 것도 눈에 띄지만 대구에서는 서양화를 전공하고 8년 만에 광주로 돌아와서는 조선대 대학원 박사과정에 진학해 한국화로 전공을 바꿔 학업에 임했다.

전시장을 방문한 광주예고 한국화 학생들과 기념 촬영에 나선 고 작가(두번째줄 왼쪽에서 세번째).
빠른 시기가 아니라 꽤 늦게 전공을 바꿔 학업을 한 것 역시 독특해 보였다. 그는 서양화에서 한국화로 바꿔 전공을 하는 것에는 별로 개의치 않은 눈치다. 다만 서양화도 알고, 한국화도 알게 된 이점을 십분 활용하는 듯하다.

광주에서 여러 작가들에게 “미술을 언제 시작했냐”는 질문을 많이 해왔고, 그들로부터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제법 많이 들었다. 그래서 조기교육의 시발점을 초등학교로 알고 있는 필자에게 작가는 또 특이하게 다가왔다. 고등학교 진학하기 전 불과 3개월여 전에 미술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2∼3개월 해 가지고 당당히 광주예고에 들어간 것이다. 자기보다 훨씬 오랜동안 준비한 친구는 떨어지고 갓 시작한 자신은 붙었다고 귀띔한다. 그것도 고흥읍내 아동미술학원에 다니면서 일궈낸 결과였다. 그의 이런 행간을 헤아려보면 미술적 재능이 없지 않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당시 미술대회에 출전해 입상하는 등 두각을 보이기도 했다.

2024년 광주아트페어 출품 모습.
이렇게 해서 광주예고에 진학했지만 회화나 한국화 정원이 40명이었지만 순수하게 서양화 전공은 불과 15명 정도였는데 나머지는 디자인 조소 등으로 쪼개져 있었다고 기억했다. 그래서 한국화보다 외연이 작았고, 현재까지 창작현장에서 작가활동을 하는 동기들이 작은 이유를 우회적으로 상기시켰다.

어렵고 불리한 여건 속 대학을 진학했지만 추상 쪽이 강조되고 있었고, 주변의 효성가톨릭대 등은 구상이 강조되고 있었다는 전언이다. 그는 추상이 자신과 잘 맞지 않아 구상 쪽을 바라봤던 듯하다.

구상에 대한 선호는 다섯번째 개인전이 진행중인 전시장에서 보이는 인물 그림에서 예측할 수 있었다. 추상이 적성에 맞지 않았기 때문에 인물그림을 선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추상을 했다면 이번 개인전과 연결할 수 있는 지점은 없었을 것이다. 그의 화폭에는 모델이 누군지는 알 수 없지만 구상계열의 인물이 등장한다. 등장하는 인물들은 딱히 누구라고 생각을 하고 그리는 것이 아니라고 밝힌다. 다만 모두 꾸준하게 수집해온 자료들에 근거한 것들이다. 표정 등 자신의 감정을 계속 불어넣어 지금과 같은 인물상을 구현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자화상의 경우 어떻게 처리하는지 궁금하지만, 그것 역시 계속해서 자신의 혼을 불어넣는다는 입장이다.

‘춤-비상’
그의 인물그림에 대한 소신은 확고하다. ‘인물그림을 그리기 전에 다른 것을 그리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대해 꽃도 그리고, 정물도 그렸을 것 같지만 우선 중점을 둔 것은 인물이었다는 답이다.

“꽃 같은 것은 솔직히 흔하잖아요. 꽃을 그린 사람들은 많으니까 자아에 대한 느낌 또는 나 자신을 표현하고 싶은 욕망 때문에 항상 인물이 주였죠. 한국화를 전공하기 위해 대학원 박사 학위과정 전에 준비 과정으로 평생교육원에 먼저 입학해 민화와 불화, 수묵화, 서예 등을 배웠습니다. 그러던 무렵 주변의 선생님들이 조선대 대학원을 많이 추천해 주신 거죠.”

그는 한국화 전공을 하면서 먹을 다루기 어려워 그것을 적응하기 위해 인물을 수묵으로만 시작하게 된다. 나중에 그것을 확장하기 위해 민화적 요소 등을 투영했는데, 채색화 느낌을 내면서 공필화 같은 데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는 점 역시 잊지 않았다. 이를테면 신윤복의 ‘미인도’ 같은 그림으로부터 민화를 배우게 됐는데 그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이 자신에게 크게 다가왔다고도 한다. 그가 원활하게 한국화에 안착한데는 그 자신의 노력도 한몫했지만 민화에 김연수, 불화에 조주연, 수묵에 박문수 작가같은 선생님들을 잘 만난 것 역시 그가 빠르게 한국화에 안착한 비결이기도 하다.

소녀-기다림(왼쪽), ‘소녀-응시’(중앙·오른쪽)
이처럼 끊임없는 노력 속에 현재의 작업에 도달한 만큼 앞으로도 노력에 인색하지 않는 작가가 될 것임을 내비쳤다.

“저는 여전히 그림을 배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전통 초상화의 기법을 꼭 따라서 해보고 싶어요. 섭렵해보고 싶다는 이야깁니다. 예술가들이 고독감 같은 게 일반인들보다 더 있는 것 같고, 저도 고독감이 있어요. 인물그림에 약간 우울하고 차가운 느낌이 드는 것은 이 고독감 때문일 겁니다. 인물화에 주력하고 있으니까 아무래도 잘하고 싶죠. 인물 그림은 계속 해가면서 열심히 하는 작가 등 좋은 이미지로 남고 싶죠.”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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