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남평주조장, 한 사람의 집념이 빚은 품격
조미은 한국학호남진흥원 기획연구부장
입력 : 2025. 12. 15(월)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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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은 한국학호남진흥원 기획연구부장
7년 만에 남평주조장을 다시 찾았다. 이곳은 한국학호남진흥원이 기증·기탁 사업을 시작하던 초기에 근현대 문서를 비롯하여 사진과 생활자료 등 2,300여 점을 선뜻 내어주어 큰 힘을 보태준 기탁처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종가?고택?문중 고문서 수집과 연구에 집중하느라 정작 먼저 기탁해 준 남평주조장에는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 핑계를 대자면 전통시대에 생산된 종가와 문중 자료의 방대한 수량, 연구 인력의 편중, 근현대 자료 및 근대 유산에 대한 연구 여건 부족 등이 겹친 결과였다.
그 사이 남평주조장은 크게 달라져 있었다. 주조(酒造) 기능별 공간과 설비는 잘 정돈되어 있었고, 곳곳에 정성이 배어 있었다. 무엇보다 그간 밝혀지지 않았던 설립과 운영의 역사가 하나둘 밝혀지면서 남평주조장의 위상이 더욱 또렷해지고 있었다. 3년 전, 주조장의 복원에 전념하고자 고향인 남평으로 돌아온 제7대 윤태석 대표의 집념 덕분이었다. 기탁 자료도 제대로 연구하지 못한 기관의 일원으로서 미안함이 새삼스레 밀려왔다.
모처럼 마주한 윤태석 대표는 이제 주조 전문가라고 해도 좋을 만큼 달라져 있었다. “술과 미생물을 모르면 주조장을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10년 전부터 직접 술을 빚어왔고, 틈틈이 주조 관련 연수를 받으며 일제강점기 자료와 조선총독부 관보 등을 뒤져가며 숨은 역사를 찾아내고 있었다. 지난 9월, 복원된 주조장의 누룩곰팡이로 빚은 청주(淸酒)에는 나주의 깊은 역사가 다채로운 풍미로 잘 발효되어 있었다.
여느 고택이 그렇듯 남평주조장 역시 관리와 유지는 대단히 고단한 과업이다. 더구나 삶과 종교 등 사람과 직접 관계가 있는 고택이나 사찰의 장엄함과는 거리가 멀뿐더러, 건축자재와 공법도 정착되지 못한 시기에 지어졌기에 관리의 어려움은 충분히 짐작되고도 남음직했다.
그럼에도 그간의 변화상을 자세히 설명해주던 윤 대표의 입과 눈은 발효조(槽)에서 내뿜는 탄산의 기포처럼 활력에 차 있었다. 한발 더 나아가 그의 열정은 탄산가스를 타고 술독 밖으로 퍼지는 주향(酒香)처럼 고향 남평까지 아우르고 있었다.
그는 문체부 주관 ‘2025년 박물관미술관박람회’에서 17세기 초 광해군 때 남평에서 우리 민화(民畵) 문자도가 최초로 발원된 역사를 발굴하고, ‘나주품격(羅州品格)’ 문자도 전시를 기획하여 그 사실을 대외에 소개하기도 했다. 또한, 일제강점기 남평에서 살았거나 태어난 일본인들이 귀국 후 결성한 ‘남평회(南平會)’ 회원들을 찾아 공백으로 남은 남평의 암울했던 시기의 역사를 채워보겠다고도 했다. 한 사람의 노력과 집념이 지역문화 발전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그는 “복원이라는 명분에 가려 진정성까지 폐기된 문화유산 사례를 너무나 많이 보았습니다. 하나하나 배워가면서 서두르지 않고 직접 해보려 합니다. 결과보다는 그 과정에 의미를 두려 합니다.” 문화유산과 박물관학 전공자답게 그의 태도는 단단했고 의지는 결연했다.
지역의 문화적 기반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이제 진흥원과 남평주조장, 지역사회가 함께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협력 모델을 고민해야 할 때다. 우선 주조장이 보유한 근현대 자료와 생활문화 기록을 진흥원의 연구 역량과 연계해 학술 자료로 정리한다면 그 자체가 귀중한 지역 아카이브가 될 것이다. 복원 과정과 지역의 산업사를 엮은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 시민들이 향토문화의 의미를 직접 체감하도록 돕는 일도 중요하다. 더 넓게는 지역 공공기관과 대학, 청년단체가 함께하는 공동전시·답사 프로그램을 통해 남평의 기억과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공유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문화는 결국 사람이 만들어간다. 주조장의 복원 과정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기록하고, 이를 지역민과 나누는 작은 전시와 교육 프로그램부터 시작한다면 남평이라는 공간이 지닌 결은 더욱 선명해질 것이다. 진흥원이 동반자로 함께한다면 남평주조장은 근대 유산을 넘어 지역의 문화적 자존을 상징하는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돌아온 뒤 윤 대표께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술빚는 주조장 이야기 참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뜻하는 바를 꾸준히 실천하시는 모습이 존경스럽습니다. 머지않아 지역의 큰 어른으로 자리매김하시리라 생각됩니다.” 줄탁동시(?啄同時), 이제 진흥원도 함께할 방법을 찾아야 할 때다.
그 사이 남평주조장은 크게 달라져 있었다. 주조(酒造) 기능별 공간과 설비는 잘 정돈되어 있었고, 곳곳에 정성이 배어 있었다. 무엇보다 그간 밝혀지지 않았던 설립과 운영의 역사가 하나둘 밝혀지면서 남평주조장의 위상이 더욱 또렷해지고 있었다. 3년 전, 주조장의 복원에 전념하고자 고향인 남평으로 돌아온 제7대 윤태석 대표의 집념 덕분이었다. 기탁 자료도 제대로 연구하지 못한 기관의 일원으로서 미안함이 새삼스레 밀려왔다.
모처럼 마주한 윤태석 대표는 이제 주조 전문가라고 해도 좋을 만큼 달라져 있었다. “술과 미생물을 모르면 주조장을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10년 전부터 직접 술을 빚어왔고, 틈틈이 주조 관련 연수를 받으며 일제강점기 자료와 조선총독부 관보 등을 뒤져가며 숨은 역사를 찾아내고 있었다. 지난 9월, 복원된 주조장의 누룩곰팡이로 빚은 청주(淸酒)에는 나주의 깊은 역사가 다채로운 풍미로 잘 발효되어 있었다.
여느 고택이 그렇듯 남평주조장 역시 관리와 유지는 대단히 고단한 과업이다. 더구나 삶과 종교 등 사람과 직접 관계가 있는 고택이나 사찰의 장엄함과는 거리가 멀뿐더러, 건축자재와 공법도 정착되지 못한 시기에 지어졌기에 관리의 어려움은 충분히 짐작되고도 남음직했다.
그럼에도 그간의 변화상을 자세히 설명해주던 윤 대표의 입과 눈은 발효조(槽)에서 내뿜는 탄산의 기포처럼 활력에 차 있었다. 한발 더 나아가 그의 열정은 탄산가스를 타고 술독 밖으로 퍼지는 주향(酒香)처럼 고향 남평까지 아우르고 있었다.
그는 문체부 주관 ‘2025년 박물관미술관박람회’에서 17세기 초 광해군 때 남평에서 우리 민화(民畵) 문자도가 최초로 발원된 역사를 발굴하고, ‘나주품격(羅州品格)’ 문자도 전시를 기획하여 그 사실을 대외에 소개하기도 했다. 또한, 일제강점기 남평에서 살았거나 태어난 일본인들이 귀국 후 결성한 ‘남평회(南平會)’ 회원들을 찾아 공백으로 남은 남평의 암울했던 시기의 역사를 채워보겠다고도 했다. 한 사람의 노력과 집념이 지역문화 발전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그는 “복원이라는 명분에 가려 진정성까지 폐기된 문화유산 사례를 너무나 많이 보았습니다. 하나하나 배워가면서 서두르지 않고 직접 해보려 합니다. 결과보다는 그 과정에 의미를 두려 합니다.” 문화유산과 박물관학 전공자답게 그의 태도는 단단했고 의지는 결연했다.
지역의 문화적 기반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이제 진흥원과 남평주조장, 지역사회가 함께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협력 모델을 고민해야 할 때다. 우선 주조장이 보유한 근현대 자료와 생활문화 기록을 진흥원의 연구 역량과 연계해 학술 자료로 정리한다면 그 자체가 귀중한 지역 아카이브가 될 것이다. 복원 과정과 지역의 산업사를 엮은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 시민들이 향토문화의 의미를 직접 체감하도록 돕는 일도 중요하다. 더 넓게는 지역 공공기관과 대학, 청년단체가 함께하는 공동전시·답사 프로그램을 통해 남평의 기억과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공유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문화는 결국 사람이 만들어간다. 주조장의 복원 과정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기록하고, 이를 지역민과 나누는 작은 전시와 교육 프로그램부터 시작한다면 남평이라는 공간이 지닌 결은 더욱 선명해질 것이다. 진흥원이 동반자로 함께한다면 남평주조장은 근대 유산을 넘어 지역의 문화적 자존을 상징하는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돌아온 뒤 윤 대표께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술빚는 주조장 이야기 참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뜻하는 바를 꾸준히 실천하시는 모습이 존경스럽습니다. 머지않아 지역의 큰 어른으로 자리매김하시리라 생각됩니다.” 줄탁동시(?啄同時), 이제 진흥원도 함께할 방법을 찾아야 할 때다.
광남일보@gwangnam.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