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 넘어 '지혜와 평온에 이르는 길' 시각화
신창운 개인전 12월 14일까지 드영미술관서
내면의 투쟁…인간 욕망의 파괴적 속성 탐구
입력 : 2025. 11. 16(일)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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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창운 개인전 전시전경.
연작 ‘지식의 풍경’(Knowledgescape)
사유와 조형 언어의 긴밀한 결합을 통해 동시대의 모순과 허무, 그리고 초월에 대한 인간의 열망을 시각화해온 신창운 작가의 개인전이 지난 10월 29일 개막, 오는 12월 14일까지 광주드영미술관에서 ‘지식의 풍경’(Knowledgescape)이라는 주제로 진행된다.

앞서 언급했듯 작가가 꾸준히 탐구해온 화두는 ‘욕망’으로, 이번 전시에 강렬한 색채 위에 집요하게 새겨진 반야심경 그리고 도덕경의 경구와 파스텔 톤의 부드러운 화면 위에 각인된 문구를 통해 욕망과 번민, 성찰과 평온이라는 인간 내면의 대조적 풍경을 시각화한 작품들을 출품했다.

특히 이번 전시는 지식과 욕망의 굴레를 넘어 지혜와 평온에 이르는 길을 제시하는 작가는 욕망의 그림자 너머에서 배려와 존중, 그리고 삶의 본질을 끊임없이 길어 올리며, 우리가 욕망을 통해 무엇을 얻고 잃어왔는지를 조용히 되묻고 있는 가운데 예술을 통해 지식과 욕망, 존재와 무(無)의 경계를 성찰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이번 전시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사회적·정신적 현실과 삶의 무게를 예술로 비추며, 작가가 오랜 탐구와 성실한 실천을 통해 확립해 온 조형 세계를 선보인다.

2008년 인도 유학을 계기로 그의 작업은 전환점을 맞이했다. 인도 체류 시절, 작가는 신화와 신적 상징을 매개로 인간 욕망의 양면성과 순환 구조를 탐구했고, 귀국 이후에는 빛·뿔·화폐·종교도상 등 다양한 상징을 통해 왜곡된 욕망의 허무와 소비의 본질을 드러내며 인간 내면의 근원적 갈망에 대한 사유를 심화시켜왔다.

주제인 ‘지식의 경계’(Knowledgescape)는 지식(knowledge)과 경관 및 조망(scape)의 결합어로 ‘scape’를 ‘escape’(탈주)로 치환해 지식을 권력화하려는 욕망에서 벗어나려는 인간의 내적 열망을 함의한다.

작가는 2019년 ‘소진된 욕망’전으로부터 상징적 이미지로 등장한 ‘물거품’을 중심에 두고, 불교 경전 ‘반야심경’의 구절을 캔버스 위에 병치, 욕망과 초월, 번뇌와 해탈 사이의 긴장을 시각적으로 탐색해왔다.

연작 ‘지식의 풍경’(Knowledgescape)
연작 ‘지식의 풍경’(Knowledgescape)
이번 전시는 ‘지식의 경계’를 세 공간으로 나눠 접근한다. 1전시실에서는 연작을 통해 인간 내면의 치열한 투쟁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화면을 가득 채운 ‘반야심경’의 경구는 집요할 만큼 반복돼 새겨지며, 인간이 축적해온 지식과 그것이 낳은 집착, 그리고 욕망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몸짓을 상징한다.

또 2전시실에서는 연작의 또 다른 국면을 보여준다. 고요하고 투명한 명상적 풍경 속에서 전시의 흐름은 욕망의 격랑을 지나 차분하고 정제된 평온의 상태로 이동한다. 단순화된 형태와 은은한 색채로 표현된 물거품은 더 이상 욕망의 소용돌이를 상징하지 않는다. 캔버스 위에 새겨진 ‘반야심경’의 글귀는 화면을 가득 채우는 대신 얕은 부조로 각인돼 있다. 이는 지식과 욕망의 굴레를 벗어나 성찰과 해탈의 가르침을 내면화한 흔적을 암시한다.

이어 3전시실에서는 1·2전시실의 서사의 출발점이 되는 프롤로그적 공간으로, 인간 욕망의 파괴적 속성을 탐구한다. 불꽃과 용암이 요동치는 화면은 인간 내면의 결핍에서 비롯된 욕망의 폭발을 드러내며, 그 에너지는 스스로를 소진하면서도 다시 타오른다. 붉은빛과 검은빛의 충돌은 욕망의 상처와 허무, 그리고 잔열 속에서 되살아나는 욕망의 불씨를 암시한다. 이 공간은 인간을 지배하는 욕망의 불길이 남긴 잔해를 응시하며, 존재의 근원적 공허와 무상함을 드러낸다. 3전시실은 욕망의 발화와 소멸을 통해 전시 전체의 사유적 여정을 여는 서문이자, 인간 존재의 불안정한 기원을 비추는 공간으로 기능한다.

작가는 “혼란하고 살벌한 세상 속에서 그나마 정신을 가다듬을 수 있는 것은 고행과 성찰을 통해 길어 올린 성현들의 가르침 때문이다. 불교의 ‘반야심경’과 노자의 ‘도덕경’은 삶에 지친 마음을 다독인다”고 말했다.

변기숙 드영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은 “그의 치열한 탐구와 수행적 태도에서 비롯된 세상을 향한 관조는, 지식의 권력화와 인간성의 소외가 심화되는 오늘의 현실 속에서 예술이 여전히 ‘존재의 근원’을 탐색할 수 있는 힘의 원천임을 일깨운다”면서 “인간 내면의 욕망과 번뇌의 흔적을 거쳐, 궁극적으로 성찰과 평온의 상태에 이르는 미적 체험을 경험하게 된다”고 평했다.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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